We are singking!.. (우리는 가라앉고 있다)-
sink, 침몰하다. 재난 영화나 실제 선박 조난 상황에서 무전으로나 칠 법한 대사를 내가 어디서 보게 됐냐면, 지나가다 익숙한 나라의 이름이 들려서 보게 된 뉴스에서다. 외무장관이라는 사람이 멀쩡하게 인터뷰를 하다가 드론이 뒤로 날아 화면을 비추니까 양복을 걷어 올리고 바다 위에서 자신들의 국가가 가라앉고 있다고 외치는 모습. 그런 건 처음 보기도 했고 잊을 수도 없는 인터뷰다.
2020년도 즈음에는 화물을 실으러 푸나푸티에 정말 많이 갔었다. 한국 통영항에서 출항해서 15일이 걸렸던 푸나푸티섬. 투발루 군도국가를 이루고 있는 9개의 섬 중 가장 큰 섬이면서 투발루의 수도. 갈 때마다 그저 "바다가 너무 맑고 예쁘다" 그리고 "사람들이 엄청 덩치가 크고 맨발로 다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네, 종아리가 엄청 엄청 굵다 "하는 생각뿐이지 설마 가라앉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동료선원들이 말하길 투발루에 가면 산호로 이루어진 바다를 잔뜩 볼 수 있다고 했고, 또 수도인 푸나푸티에 가게 되면 길게 늘어진 섬을 기준으로 한쪽은 산호군도의 잔잔한 바다와 다른 한쪽은 남태평양의 시원시원한 파도를 즐길 수 있다고 들었었다. 가보니까 정말 예쁜 섬나라였고 맑은 바닷물과 그에 어울리는 적도의 햇빛에 잘 그을려져 거뭇하고 예쁘게 웃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투발루는 나처럼 배를 타고 들어온 이들의 선박회사에게 세금을 받거나, 어업권을 판매하거나, 아니면 그 배들에 국민들이 승선해서 외화를 벌어오는 형태의 수입이 주 수입원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있던 수출품목인 코코넛마저 운송비 타산이 맞지 않아서 더 이상 수출하지 않다. 나머진 자급자족.
죽은 산호가 떠밀려와 육지와 흙을 만들고, 그곳에 쉬러 온 새들이 소화되지 않은 다른 열매를 배설해 다양한 식물이 생기고, 어디선가 코코넛 열매가 궂은 소금물을 이겨내 산호섬에 떠내려와 열매를 맺었으며, 그 코코넛 나무를 발견한 난파선 선원들이 잎으로 집을 만들고 이후엔 정착해서 살아왔다는 이 섬.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자급자족의 상징. 한 때는 이 섬을 보면 누구나 잠시 머무르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그런 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비행기 활주로마저도 바닷물이 찔금 찔금 튀어나와 골치를 앓고 있는, 하다못해 나라를 떠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그저 바닷물이 차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며 등 떠밀리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떠밀려온 산호와 코코넛으로 시작된 이 작고 아름다운 섬은 그야말로 바다가 생명줄 같은 존재였는데, 이제는 그 바다가 태도를 바꾸어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해안가에 직접 침범해서 위협하고 있다. 모든 걸 제공해 주던 자비로움도 이제 존재하지 않고, 투발루 사람들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매년 나라의 흙을 되가져간다. 뒤늦게 나무 제방을 쌓고 콘크리트 방벽을 치면 그게 바닷물을 막을 수 있을까. 부랴부랴 선진국들이 2050년 탄소 중립을 외치면서 여러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이미 바뀌어버린 바다의 태도를 말릴 수 있을까.
투발루 외무장관이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 요구한 바는 다음과 같다.
-영토가 없어져도 국가로 인정해 줄 것이냐.
-사라진 영토 대신 해양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겠다.
-선진국이 야기한 기후환경 문제로 인한 "기후 이동성"을 고려하고 있느냐.
그저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던 이 섬에 기후변화로 인한 책임을 다 넘길 수 있을까. 아니면 탄소중립을 하겠다며 2050년까지의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게 이 섬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걸까. 기후 이동성이나 해수면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다녀왔던 적도의 예쁜 투발루 군도가 곧 잠겨 없어질거라고, 이미 9개의 섬 중에 두개는 없어져버렸다고 하니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겨우 내가 할 수 있는건 분리수거를 잘 하고, 환경정책에 관심을 가지는 기업의 제품을 사용하는 정도일 뿐이라. 그 동안의 호의적이고 베풀어주던 모습에서 정반대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바다를 우리가 이길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섬나라 사람들을 위한 정책과 방법이 꾸준히 발견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