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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Apr 29. 2024

맨발의 철판 해체공들

Ship breaking - 선박의 무덤  

말라카해협과 벵골만을 지나서 도착방글라데시 치타공.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대부분이 인도에 둘러싸여 있고 오른편엔 미얀마가 닿아있는 나라다.

치타공은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같은 도시인데 방글라데시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가난한 북부의

노동자들이 해운, 항만, 운송 관련 산업에 종사하러 몰려드는 엄청난 인구밀집 도시이다.


위 내용은 우리 배에 승선하고 있던 미얀마 선원들이 말해준 것인데 대충

"치타공 이즈 쌤쌤 부산, 투 머치 피플"

이라고 주절거리는 것을 나름의 해석과 공부로 도출해 낸결과다.

나도 그렇고 외국 선원들도 그렇고 업무적으로 쓰이는 영어 외에 간단한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다.

그래도 뭐 매일 보는 사이니까 표정, 몸짓, 발짓만 해도 다 알아듣게 되더라.


선박이 입항하게 되면 항만에 있는 검사관들이 올라와 우리 선원들의 여권을 일일이 검사하고 선박 관련서류들을 점검하는데 방글라데시의 검사관들은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온 건지 일단 라면부터 찾았다. 눈치 빠른 조리장은 얼른 검사관 머릿수대로 라면과 콜라를 준비해서 식당에 차려줬고 그들은 선장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라면에 들어가듯이 식사를 마치더니 대충 여권에 도장을 쾅쾅 찍어주고는 수속이 끝났다. 배에서 내릴 때 각자 챙겨 온 가방에 담배와 양주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고.


검사가 끝나자 배의 화물칸이 열리고 이번에 인도로 가져갈 곡물 화물들이 비포장(bulk) 상태로 실리는데

배가 온통 흩날리는 곡물가루로 뒤덮이고, 밀려 올라오는 잡상인들로 식당은 북새통이 됐다. 잡상인들은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라오곤 했는데 식당에서 밥도 먹고 물건도 팔고 유심칩도 팔았다. 9.11 테러로 인해 만들어진 ISPS code(선박보안에 관한 규정)따윈 치타공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항구 바깥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치타공의 모습을 일과가 끝나고 둘러볼 수 있었다.

치타공은 전 세계 선박의 절반이 해체되는 선박들의 무덤이자 철판이 새로 탄생하는 곳이다.

"개발도상국에는 값싼 임금의 노동력이 풍부하게 있습니다"

이 말, 학교에서 많이 배운 문장이다. 이걸 먼 나라의 항구도시에 들렀다가 선박해체장에서 피부로 느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던 무슨 ship breaking이라고 쓰여있는 선박해체 사업장 앞을 지났다. 외벽 안에는 까맣게 타서 맨발로 걸어 다니는 노동자들이 기름에 잔뜩 절여져서 겨우 헬멧 하나를 든 채 멀리 갯벌에 떠있는 배에서 떼어온 온갖 가구, 가전, 변기, 철판 등을 나르고 있었다.(헬멧을 착용했다지만 얇은 셔츠 한 장에 청바지, 갯벌의 뻘이 잔뜩 묻은 온몸을 봐선 안전한 작업의 형태는 아니었다). 중학생이나 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용접호스를 들고 어디가 불편한지 뒤뚱거리며 걸어가고 쇠사슬을 줄지어 끌고 가는 모습 등등.


대부분의 선박은 태어난 곳과 국적이 다르다. 한국, 중국, 일본처럼 조선업이 발달한 국가에서 태어나서 선박을 필요로 하는 나라와 회사의 국적깃발을 달고 대략 30년 정도를 바다를 돌며 항해하다가 수 십, 수만 톤의 무게를 견디던 선박의 척추, 용골(keel) 등이 망가지고 삐걱거릴 때가 되면 해체를 하게 된다. 내가 타던 퀸호도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남미의 파나마의 국적을 가졌었다. 국제항해가 가능한 선박의 숫자는 7만 대에서 10만대로 집계되는데, 만약 치타공 같은 선박 해체 도시가 없다면 이 많은 선박들은 전부 타이타닉처럼 바다에 묻혀야 할지도 모른다.


방글라데시의 선박해체공들은 폐선을 알라의 선물이라고 믿는다. 철판을 잘라 새로 만들어 돈을 벌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어서 그게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저 바다가 예쁘고 넓고 멋져서 좋아했던 나와 다르게 이들이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는 가족을 위한 삶이고 살아내기 위한 생존이었다. 철가루를 하도 먹어서 몸에 자석이 붙을 정도라고 농담하던 그들이 일하는 곳에는 매년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수십 명이 죽어 나간다고 한다. 선박해체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산업이라고 알려져 있고, 우수한 작업환경을 갖춘 우리나라에서도 부상, 사망자가 꾸준히 나오는 산업이다.


치타공의 바다에는 해체를 기다리는 수백 척의 배가 마지막 전력을 다 할 준비를 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의 연료만 남기고 마지막 날이 오게 되면, 지구를 수 백 바퀴 돌았을 프로펠러를 겨우 돌려 갯벌에 배를 안착시킨다. 선원들이 내리게 되면 해체공들이 낡은 연장을 들고 몰려 올라가 돈 될만한 각종 의장품을 다 떼어내고 거대한 배를 절단 낸다. 그 철판들은 방글라데시의 중요한 산업소재가 되어 재탄생한다.

우리 주변에는 조선소와 해체소, 상수도와 하수도, 제철소와 고철상 같은 시작과 끝이 서로 이어지고 대립되는 과정들이 모여있다.  

       


치타공의 모습을 기억하며 떠올린 내가 좋아하는 밴드 쏜애플의 앨범글.

"멸종"을 통해 우리는 진화의 새로운 단계에 발을 디딥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변화와 성장을 알리는 시작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며 미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순간,
 우리는 사라진 것들의 뒤를 이어 새로운 길을 걷게 됩니다.
 
 -쏜애플 3집, 멸종-

우리 돈으로 70만 원정도를 모아서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5년째 형과 철판을 자르며 지낸다는 그 친구는 또 5년이 지난 지금 과연 꿈을 이루었을까. 뭐가됐든 그들이 믿는 알라신 안에서 안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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