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떴다 비행기

05년 3월 27일(목)_지금 이 순간을 하늘에 띄우듯

by 브야

아내가 잠시 나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좀 읽자”는 마음으로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 근처 도서관은 좌석은 별로 없지만, 창밖의 푸릇한 공원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소파 같은 의자가 있고, 다리를 올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스툴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나는 그중 한 자리에 앉아 요즘 읽고 있는 《니체와 함께 산책을》이라는 책을 펼쳤다. 읽기 쉽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하나둘씩 늘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아내가 부탁한 책도 함께 빌려 옆에 놓아두었다. 창밖으로는 하얗게 핀 목련이 봄의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예전 동네에서는, 봄을 알리는 산책길에 핀 목련을 보면 온 동네가 축제처럼 흰색으로 물들곤 했다. 그 목련을 오랜만에 마주하니 반갑고, 잠시 후에 만나기로 한 아내가 목련 너머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 가족을 반겼다.


공원 중앙에 있는 축구장에는 오늘 경기가 없었는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관중석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하늘 높이 비행기가 지나가자, 딸아이 빈이가 “비행기다!” 하며 소리쳤다. 나는 비행기를 검지와 엄지로 잡아 빈이에게 건네는 시늉을 하자, 빈이는 조심스럽게 그걸 주머니에 넣으며 미소 지었다.

하늘에 별도, 달도 따주고 싶은 아빠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렇게 비행기와 헬기를 따라 웃음으로 축구장을 가득 채웠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고 다짐하면서도, 아이들과의 시간을 종종 몸으로만 흉내 내듯 지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오늘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된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잊히지 않을 풍경으로 남을 것 같다.

순수함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책 속에서는 “얼마나 투명하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문장을 읽었다. 오늘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투명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가톨릭 신부 앤서니 드 멜로는 ‘경험이 투명해질 정도로 집중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는 식기를 닦는 예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식기를 닦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식기를 깨끗하게 하려는 목적만으로 닦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닦는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닦는 것이다. 전자는 죽어 있는 것이다. 몸이 식기를 닦는 동안 마음은 목적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는 살아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와 함께 산책을》 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잘 키우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함께 있는 그 순간 자체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의 나를 참 다정하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