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융쏘 Nov 21. 2022

자유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아인 랜드(Ayn Rand)의 ≪파운틴헤드(Fountainhead)≫


아인 랜드(Ayn Rand)는 미국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가이자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그녀는 가장 사랑받고 가장 미움받는 미국인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로 ⟪파운틴헤드⟫를 언급해 이 책의 인기와 악명을 동시에 높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논란의 장면들(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강간'하는 장면, 남주인공이 임대주택 단지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파괴하는 장면 등)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악평을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가인 아인 랜드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기반한 객관주의(Objectivism)라는 자신의 사상을 소설을 통해 드러낸다.


그렇다고 ⟪파운틴헤드⟫가 지루하고 난해한, 소설의 가면을 쓴 철학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면 책의 첫 페이지를 펴는 순간부터 책을 덮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모든 논란과 복잡함을 넘어서 무엇보다 재미있다예상치 못한 스토리 전개가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당시 미국에서 너무나도 흔한 플롯이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원형적이며 평면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유로운 인간' 그 자체인 천재 건축가 하워드 로악(Howard Roark), 그와 맞먹을 정도로, 아니 심지어는 더욱 강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여성 도미니크 프랭컨(Dominique Francon), 로악을 선망하면서도 미워하는 피터 키팅(Peter Keating), 자아의 파괴와 이타심을 설파하는 로악의 적 엘스워스 투히(Ellsworth Toohey), 그리고 자유를 너무 오래 전 포기해버렸지만 그리워하는 가일 와이난드(Gail Wynand)인물이 많은 것도, 줄거리가 복잡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단 한 줄로 줄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고집스럽게 원형적인 나머지 한 명 한 명의 상징성이 강렬하다. 소설은 주인공인 로악의 세상과의 갈등이라는 단순하면서도 흥미진진한 플롯을 700페이지에 걸쳐 그려낸다. 



소설의 주인공이 참 현실에서 예쁨 받기 어려운 인물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 로아크는 누구에게도 연민, 공감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를 동정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 자신을 돕고자 하는 동료나 연인의 어떠한 도움도 거절하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고객의 요구에는 전혀 응하지 않아 가차없이 해고되기 일쑤이다. 단순히 말해 정말 '정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미워하는 적에 대해서도 그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으며, 심지어 적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는다.


Toohey가 Roark에게: (...) 이제 나에 대한 자네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보는 게 어떻겠나? 어떤 말이던 괜찮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으니 말이야. (...) 

(Why don't you tell me what you think of me? No one will hear us.)


H. Roark: 하지만 난 당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데요. (But I don't think of you.)


로아크가 소설 속 인물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랜드는 로아크를 "The man who was"라고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 인간,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를 영위하는 개인이다.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자유를 시기하는 자들의 화살을 견뎌내는, 아니 심지어 이에 무던할 수 있는 힘을 지녀야 한다. 현실에서 상상하기 힘들지만 분명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로아크와 비슷한 현실의 인물들,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를 동경하며 멀리서 응원하는 이유도 자유라는 우리의 본성이 내는 목소리일 것이다. 


소설에 담긴 수많은 주제 중 사랑에 대한 랜드의 철학이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나는 너를 사랑해" 라는 말을 내뱉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말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To say "I love you" one must know first how to say the "I".)


로아크는 도미니크를 정말 이기적으로 사랑한다. 그의 사랑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닌 완전히 자신의 자유에 의한 것이다. 그는 도미니크의 도움도, 조언도 모두 거부하며, 그녀가 자신을 떠날 때 붙잡지도 않는다. 사랑이 가장 이타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데에 반해 랜드는 사랑을 가장 이기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나'가 존재하지 않으면 '너'를 사랑하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 '너'를 사랑하기에 '나'를 포기해버리면, "I love you"라는 문장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주의는 로아크의 친구 와이난드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오로지 나일 뿐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I'm only myself. I could die for you. But I couldn't live for you.



개인적으로 랜드는 사상가보다는 소설가일 때 더욱 빛나는 것 같다. 그녀의 이론서에 나타난 철학에는 여러 모순이 나타나지만, 그녀가 창조해낸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 그녀의 '자유'에 대한 사랑은 분명 많은 생각할거리를 던져준다. 


산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유롭고 이기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은 그리해서도 안되며 그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로악을 통해 지적하고자 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며 끊임없이 되묻게 된다.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 번역불가한 단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