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명을 고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보리 콩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여러 보호소나 동물보호센터를 알게 되었고, 덕분에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꾸준히 관련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많은 경로와 계정을 통해 셀 수도 없이 많은 유기동물들의 사연이 올라오고, 그중 어느 하나 마음 아프지 않은 글이 없다.
너무 어려서 누군가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어린 강아지들, 학대를 당하거나 사고를 당해 하루 바삐 치료가 필요한 개들, 함께 하던 가족이 한순간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 개들, 10년을 넘게 가족으로 살다가 몸이 아파 버려진 늙은 개들도 있다.
삐삐에게는 미안하지만 삐삐가 떠난 후 저런 소식을 접할 때면 '친정집에 한 자리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삐삐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기도 하고, 부모님께서도 두 마리는 부담스러워하셔서 우리 집은 늘 한 마리의 개만 키웠었는데 이제 티오(?)가 났달까? 그 공석을 꼭 채워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삐삐인 듯 삐삐 아닌 삐삐 같은 너
사실 삐삐가 떠난 후 엄마는 더 이상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내 개가 노견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힘들기도 했고, 아무래도 개를 키우며 생기는 모든 일들은 엄마 차지가 되었던 것이 내심 힘에 부치셨던 모양이었다. 나도 보리 콩이를 키우고 나서야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 다 엄마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알게 되었기에 그런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갔다.
반면 아빠는 입양에 적극 찬성이셨다. 워낙 삐삐를 애지중지하며 사셨기에 그 빈자리가 크기도 했고, 아빠가 일하시는 동안 혼자 집에 계실 엄마가 마음이 쓰이시는 모양이었다.
나는 삐삐를 닮은 말티즈 사연이 올라올 때마다 수시로 가족방에 보냈다.
"얘는 내일까지 입양 안되면 안락사 대상이래요", "얘는 봉사자들만 보면 이렇게 운다네. 눈물자국 봐"
최대한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입양하게 하려는 나의 전략이었다.
처음에는 반대의견이었던 엄마도 계속 불쌍한 아이들의 사연을 보자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어느새 입양으로 마음이 기우신 듯했다. 부모님은 삐삐와 같은 종의 강아지이되, 조금 작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삐삐는 말티즈 치고는 조금 덩치가 있는 편이었고(5kg 정도), 눈코입은 정삼각형으로 얼마나 예쁘게 배치되었던지 나는 말티즈 중에 우리 삐삐가 가장 미견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고를 찾아보다 보니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한 말티즈들이 정말 다 다르게 생긴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눈이 조금 크고 작고, 눈 사이가 조금 멀고 좁고, 코가 조금 크고 작고, 턱이 조금만 나오고에 따라 모두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삐삐를 닮은 아이를 찾는 일은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한 번은 드디어 엄마 아빠의 마음에 드는 말티즈 아이의 영상을 보내고 오케이를 받아 연락했으나, 사상 초유의 경우로 빠르게 입양이 되었다고 한다. (거의 게시물을 보자마자 메시지를 드렸으나 선착순에서 밀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진이 아닌 동영상 게시물이었어서 여러 사람의 마음이 동했던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꼬질꼬질한 와중에도 미모가 돋보였다고나 할까? 누가 봐도 이쁜 얼굴의 말티즈여서였던 것 같다.
유기견 보호소에서도 큰 믹스견들은 몇 년 동안 입양 문의 한 건이 없지만, 이쁘고 작은 품종견은 줄을 서서 입양한다고 하던데 정말이었다. 어쩌면 이 녀석들은 한국땅에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생명을 고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내가 키우는 아이를 찾는 것이라면 오히려 덜 신경 쓰였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면 엄마 아빠께는 좀 더 편안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아이를 찾아드리고 싶었다.
보리 콩이만큼 털이 빠지는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힘들었다. 젊은 나도 청소를 힘들어하는데 예순이 넘은 엄마 아빠는 더 힘드실 테고, 더더욱이 나처럼 적당히 포기한 채 지저분하게 살지 않으실 테니 스트레스도 엄청나게 받으실 게 분명했다. 보리 콩이가 수시로 짖어 나와 남편이 힘듦을 겪어보고 나니 헛짖음도 없는 아이였으면 좋겠고, 삐삐처럼 순한 아이를 키워보셨으니 이왕이면 순둥이 녀석으로 "짜잔-! 우리 삐삐처럼 착하지?" 하면서 데려다 드리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하루에도 이렇게 수많은 유기견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이쁘고 작은 아이를 찾는다는 것이 참 이율배반적이기도 하고 무언가 모를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사람아이는 성별, 외모, 성격 어느것 하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없이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면서, 저 작은 생명들의 성별, 외모, 성격.. 모든 것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고르고 있었다.
생명의 무게
그 후, 또 한 마리의 말티즈를 발견했다. 아직 1~2살밖에 되지 않았고, 4.1kg의 삐삐보다 아담한 아이였다.
보호소에 들어온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티즈 특유의 긴 털이 많이 길어 어느새 눈을 덮어서 길에서 만나면 두 달 전 그 아이인 줄 못 알아볼 정도로 털이 지저분하게 길어 있었다. 분명히 미용하고 목욕하면 너무나도 이뻐질 아이였고, 특히나 사람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기쁜 마음에 바로 가족방에 공유했다.
"4킬로 넘으면 좀 크지~~" 엄마가 답을 보냈다.
"삐삐도 4킬로 넘었었어. 삐삐보다 좀 작긴 한 거 같아 4.1kg이면"
"(삐삐는) 너무 무거웠어~~ 한라봉이 왔네"
주말 제주 여행에서 부모님 댁으로 보낸 한라봉 이야기였다. 이미 엄마는 내가 보낸 아이의 몸무게를 보고 관심이 없으신듯했다.
회사에서 들떠 카톡을 보내다가 갑자기 너무나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했다.
'4.1kg의 아이가 무겁다니.. 101g만 가벼웠으면 3kg 대니까 괜찮은 건가.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자기가 알아서 걸어 다니고, 스스로의 네다리에 의지해 뛰어다닐 아이의 무게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저 아이는 이 더위에 저렇게 털 갑옷을 입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왜 고작 몇 그램에 저 아이는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저 아이가 나에게 쏟을 무한 사랑의 무게에 비하면 저 아이의 무게는 너무나도 가볍다.
울컥하는 마음에 "됐어요. 그냥 개 키우지 마세요.."라고 답장을 썼다가 지운다.
나도 거두지 못하는 생명을 다른 사람이 거두지 안 한다고 내가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걸 깨달으니 괜히 또 눈물이 났다.
뜻밖의 입양 진행
한 달에 한번 정도 동물병원에 방문해 보리 콩이의 심장사상충, 인플루엔자 등 예방접종을 한다.
보리를 입양했던 곳으로, 살고 있는 지역의 유기동물들을 보호/입양 보내는 병원이다.
개들이 진찰받는 동안 갑자기 '지금 여기에 공고 중인 애들은 누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포인 핸드 어플을 켜보았다. 세 마리 정도의 말티즈가 등록되어있다고 뜬다. 그중 한 마리는 사진을 머리 위에서 찍었는지 눈과 얼굴이 잘 안보였는데, 그 사진이 삐삐와 너무나 비슷했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삐삐를 쓰다듬을 때 바라보면 딱 이런 얼굴이었다. 날 바라보려고 고개를 들면 삐삐일 것만 같았다.
카운터에 계시는 직원분께 이 아이를 한번 볼 수 있을까 문의드렸다.
아이는 사진과 다르게 깔끔하게 미용이 되어있었다. 조금이라도 입양이 수월하라고, 혹은 아이가 더위에 좀 더 편안하라고, 혹은 둘 다일지 모르지만 병원에 계시는 직원분들이 개들을 아껴주시는 게 분명했다.
아이는 털이 길 때는 삐삐와 비슷했지만 미용한 모습이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일단 부모님께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고, 몇 번의 대화 끝에(사실은 아빠의 강력한 찬성 의견으로) 일사천리로 입양 신청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가오는 주말에 병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기로 했다.
대망의 그날
드디어 오늘이었다.
철장 안에 있을 녀석이 마음에 쓰여 진작에 우리 집에 같이 데리고 싶었는데, 괜히 두 번이나 환경 적응을 하는 것이 더 힘들지는 않을까, 우리가 집에 다 같이 있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보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건 아닐까(그리고 보리가 스트레스받을까 봐도..)하는 걱정에 일주일을 꾹 참고 기다렸다.
그 날 아침, 꿈을 꾸었다.
(입양한 강아지를 데리고 친정에 갔고, 강아지는 불안해하는데 온 가족은 자기 할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낯선 곳에 멀리 와 불안해하는 이 아이를 보살펴주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는데 온 가족이 티비를 보고, 각자 핸드폰을 보고 전화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그렇게 잠이 깼다. 나도 모르게 굉장히 신경 쓰고 긴장을 했었던 모양이었다.
친정집에 없는 몇 가지 강아지 물품을 챙기고, 보리 콩이의 간식과 껌을 나누어 담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아빠는 이번 주에만 몇 번이나 전화를 하셔서는 '마음이 이상하다, 최대한 빨리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되풀이하셨고, 나도 병원에서 입양 절차를 밟고 바로 친정으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병원에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이런저런 진료환자들이 와있어 조금 기다렸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보리나 콩이를 데리러 갔을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랐다.
"왜 이렇게 떨리지? "
"떨려? ㅎㅎ 왜 떨리지??"
내가 직접 키울 강아지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어쩌면 보리 콩이와는 다르게 다 큰 아이를 데려오는 것이었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을 성격이나 가지고 있는 병력에 대한 걱정일지도 몰랐다.
'짖으면 어쩌지, 분리불안이 있으면 어쩌지,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 보리처럼 가끔 물기도 하는 건 아닐까.'
사실 내가 키우면 오히려 이런 문제들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천사 같은 삐삐만 키웠던 우리 가족들이 키우기 버거워할 만한 아이는 아닐지.. 그리고 그걸 모두 포용해 주지 못할 가족을 만나는 건 아닌지.. 기쁜 마음이 앞서야 하는데 가족을 생각해도 이 아이를 생각해도 묵직한 부담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콧물과 기침, 눈곱 등 증상이 있기도 했고, 접종이 되어있는지도 몰라 몇 가지 검사를 하느라 2시간을 또 기다려 드디어 입양 절차를 끝냈다. 아직 이름은 정하지 못해 입양신청서에 삐삐라고 적었다.
이 녀석은 우리와 있는 동안 병원에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 아는 척을 하고, 짖지도 않았다. 다행히 검사할 때도 순했다고 했다.
목욕까지 한 모습을 보니 털도 새하얗고 이도 깨끗한 것이 아직 나이도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친정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이동을 해야하는데, 차를 타본 경험이 좀 있는건지 멀미도 하지 않고 내 무릎에서 꼼짝도 않고 얌전히 잘 앉아있었다.
무슨 복으로 이렇게 이쁘고 순한 녀석이 우리 가족이 된 건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