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개 by 개

case by case

by 잡곡자매

개바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부를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고 얕은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단정하고, 판단한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개를 키워왔고, 결혼 전까지도 15년간 삐삐와 함께 살았기에 내심 [나 정도면 개에 대해서 알만큼 아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삐삐는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산책을 사랑하고, 털도 안 빠지고, 침대에 누워있는 내게 올려달라고 졸라 팔에 턱을 괴고 가만히 안겨 잠드는 순하디 순한 개였다. 천성이 천하태평이라 분리불안이며 짖음은 다른 세상 이야기였고, 미용을 하러 가거나 가끔 발바닥 습진, 귀 염증 정도로 병원에 다니는 것 외에는 별로 손 갈 일도 없는, 누구나 생각하는 개의 이상형에 가까웠다.

세상 모든 말티즈가 우리 삐삐 같은 줄 알고 살던 그 시절에는 [말티즈= 천사 개]라는 말도 안 되는 1차원적 이론을 펼치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보리와 콩이를 입양해서 키우면서 '얘네는 삐삐랑 다른 종의 동물인가?!'라고 생각할 만큼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그동안의 내 자신감은 와장창 무너졌다. 둘 다 한창 성격 형성이 되고 있던 6~7개월쯤에 만나서였는지, 그나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모습조차 자라면서 변해갔다. 어린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잠깐 만난 개나 사람의 성격,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고 변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삐삐와 보리 콩이가 다르다는 말은 [삐삐는 천사 개, 보리 콩이는 나쁜 개]라는 말이 아니다.

'case by case' 줄여서 '케바케'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경우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사례별로'라는 뜻. '원칙이 없이,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말이라고 한다.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개도 키워보니 정말 '개바개(개 by 개)'라는 말이다.




우리 집 개바개

보리는 자아가 강하고 예민하다. 눈치가 빠르고, 영특하고 애교가 많다.

내가 주는 새로운 음식의 1/3은 냄새만 맡고 먹지 않는다. 모든 개들이 다 환장한다는 간식을 사다 줘도 좋고 싫음의 취향이 확고했다. 집에 누군가 찾아오거나 문 밖에서 조금이라도 소리가 나면 맹렬하게 짖어대고, 손님이 오면 어깨에 한쪽 발을 올리고 서서 이리저리 킁킁대고 탐색하는 주제에 자기를 만지려고 하면 정색하거나 나지막이 으르렁댄다. 이건 그야말로 [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 마] 느낌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차가운 도도녀지만 가족들에게는 또 이런 애교쟁이가 따로 없다. 내가 화난 목소리로 얘기하면 그러지 말라며 내 손을 긁으며 온몸을 비비고 애교를 부린다. 애교를 부려도 내가 모른척하거나 불만이 있을 땐 소파 아래 내려가 울부짖듯이 짖으며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이 때는 아무리 구슬리고 간식을 줘도 나오지 않는다. 가끔은 정말 보리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면 안방 앞에서 멍멍! 짖기도 하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내가 나올 때까지 엎드려서 기다리고 있어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엄마 지금 대채 며씨애오?
화장실 가야대오? 그럼 보리 여기서 기다리깨오..

분명 집에 설치한 CCTV를 통해 낮 동안 거의 잠을 자거나 콩이와 장난치면서 지내고 있는 걸 봤는데, 신기하게 우리가 회사를 가거나 외출했다가 들어오는 길에 우리 집을 올려다보면 보리의 실루엣이 베란다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가 동네방네 반갑다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ㅁㅏ? 거기..엄ㅁㅏ애오..?!??!??

우리가 대충 올 때쯤 시간을 아는 건지, 아니면 우리의 차 소리를 알아보는 건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들어가면 이러다 허리가 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며, 어디서 동물학대로 신고 전화가 들어올 수도 있을 만큼 소리를 지르며 울며 반겨주는 애교까지 장착했다.


하지만 잠을 잘 때엔 건드리는 걸 싫어해서 우리가 몸에 닿는 것도, 콩이가 옆에 오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산책을 나가는 건 좋아하지만 옷도, 리드 줄도 너무 싫어 조금만 줄이 몸에 닿거나 당겨지면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버팅긴다. 옷과 하네스를 입기 싫어 소파 밑에 숨어 있다가 나와 콩이가 나가는 모습을 보면 슬쩍 끼여 후다닥 나오는 여우이기도 하다.



콩이는 놀라거나 흥분하면 앞뒤 안 보이는 멍청한 개지만, 사랑이 넘치고 다정하다.

하나밖에 모른다. 멀티 플레이가 안 되는 강아지다.

머릿속엔 먹을 생각뿐이라 간식을 보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밖에 나가면 새끼 강아지한테도 겁을 먹고 기어 다니면서, 먹을 것 앞에선 세상 용감한 쫄보로 변신해 성격 있는 보리에게도 눈감고 주먹 휘두르듯 무모하게 덤빈다


내가 간식을 들고 무언가 가르치려고 하면 흥분해서 정신을 못 차리면서 보리가 하는 건 얼마나 스펀지 같은 습득력으로 잘 빨아들이는지 모른다. 근데 뭔가 조금씩 나사 빠진 것처럼 허술하다. 처음에 짖을 줄도 모르더니 보리에게 짖는 법을 배워 이제는 누구보다 우렁차게 "워우워어-!!" 하면서 새벽의 시골개들처럼 짖고, 보리가 나한테 애교를 부리는 걸 보고 배우더니 아무 때나 와서 만져달라고 등 돌려 앉아서 안 만지냐고 쳐다본다. 보리가 산책에서 집에 안 들어오려고 버팅기는 걸 보더니 지도 같이 괜히 한번 버팅겨보기도 한다.

언니가 하는건 다 멋이써보여오. 이로캐 땡기먼 대나?


눈치는 어디 갔다 팔아먹었는지 보리가 기분이 안 좋을 때 눈치 없이 계속 집적대다가 크게 혼나고, 막상 보리가 놀자고 할 땐 이상한 방법으로 놀기 일쑤다.(잡기 놀이할 때 혼자 빙빙 돌기, 터그 놀이할 때 장난감 물고 혼자 도망가서 놀기 등)

언니 기분 안조아? 그럼 나랑 놀자


매일 보는 아기가 무서워 매일 아침 만날 때마다 짖어서 아기를 놀라게 하고, 오밤중에 갑자기 짖어서 나가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짐볼, 선풍기 등이 무서워 떨고 있는 바보다. 벗어놓은 양말이나 아기 장난감이 없어졌다 싶으면 콩이가 물고 가서 씹고 있다.

킁킁킁킁!! 아빠 발냄새 맡으니까 조아서 다리애 힘풀러오

그래도 콩이는, 그 자체로 사랑이라고 부를만큼 다정하고 사랑이 가득한 아이다.

반길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우리에게 몸을 치대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보리가 몸 닿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면 매일 보리 품에 안겨서 잠을 잤을 거다.


눈치 안 봐도 되는 일엔 눈치를 엄청 보면서 말썽 부려서 혼내면 혼나는 것도 모르고 더 신나서 손가락질하는 내 손을 깨물깨물하며 더 신나한다.

그래도 보는 사람만 조금 답답하고 웃길 뿐이지 스스로는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히 사는 개가 아닐까 싶다.

소파 위 고라니 한마리



기질을 알면 육아가 쉬워진다

요즘 유행하는 육아 서적에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내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고, 인정하라]라는 말이다.

성격이 다른 개들을 키워보니, 개 육아도 사람 육아랑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들도 참 내 생각 같지 않고, 내 맘대로 절대 자라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개들을 보며 나도 참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


그래서 이제는 개들을 내가 원하는 성격으로 만들려는 노력보다는, 개들의 기질을 파악하고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순한 기질의 콩이는 상대적으로 신경 쓸 일이 적지만, 워낙 겁이 많아 새로운 것을 할 때에는 억지로 이끌기보다는 최대한 천천히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콩이는 이제는 무서워하던 "손"도 덥석덥석 쥐어주고 산책은 못해서 안달 난 애처럼 뛰어다니며,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자길 귀여워해 줄 것을 기대하고 꼬리부터 흔드는 '조금은 용감한' 개가 되었다.


까다로운 기질의 보리는 아무래도 콩이보다 더 많이 신경 쓰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보리가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을 보리의 취향으로 인정하고, 집에 온 손님에게도 알려주려고 한다. 까다로운 취향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아이러니하지만 예전에 집에서 내가 보리를 부르는 별명은 "순둥이"였다. 제발 순둥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불렀던 별명이다. 네가 싫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 많이 표현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보리도 이젠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 때 참고 기다려주는 것 같다. 산책 다녀와서 발을 닦을 때 이빨이 자기도 모르게 들썩이지만 이전처럼 손을 물지 않고, 100%는 아니지만 미친 듯이 짖다가도 내가 부르면 멈추거나 조금은 작게 "멍!" 데시벨을 낮춰 짖기도 한다.


그래도 육아는 쉽지가 않지만 마음가짐을 바꾸고느니 부모로서 내가 성숙해지고, 이전보다 마음이 평화로워진 것 같다.


너희의 마음을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길, 우리와 함께하는 생활이 너희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길, 애쓰고 있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길-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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