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두 얼굴의 그녀
가족들은 임시 삐삐에게 '또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 었다. 똘똘해 보이는 이미지와 어울리기도 하고 이것저것 불러보다가 입에 잘 붙어서 결정했다.
병원에서 사료는 안 먹고 통조림만 먹었다길래 사료와 통조림을 모두 사서 갔는데, 친정으로 오는 차 안에서 방귀를 뀌었는지 경악할 정도의 악취가 났다. 태어나 처음으로 맡아볼 정도의 심한 냄새여서 솔직히 말하면 어디 아픈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공고기간 내내 사료는 안 먹고 통조림만 먹어서였던것 같다.
순하고 밝았던 녀석이 집에 오니 가족들에게 경계를 하고, 망부석처럼 서서 꼼짝을 않았다. 병원에서 직원분들, 손님들을 반기고 아는 척하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가족들이 조심스럽게 만져주려고 하면 나지막이 으르렁하기까지 했다.
고새 나한테 정을 붙였는지 나만 졸졸 쫓아다녔다.
"응..? 이상하네? 병원에서는 안 그랬는데.. 조금만 있으면 괜찮겠지. 기다려보자"
태연한 척했지만 가족들 사이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또리를 혼자 두고 곧 떠나야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초조했다. 내가 소파에 눕자 그제야 내 무릎에 올라와 엎드리기도 하고 손길을 느끼며 잠도 잤다.
그날 결국 또리와 가족들이 친해진 모습은 보지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야 했다. 병원에서 본모습만으로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가족들과 친해지겠구나' 했던 내 기대는 와장창 무너졌다.
그리고 또리는 그 이후에도 며칠 동안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첫날은 낯을 가려도 하루 이틀이면 적응하고 정을 붙일 줄 알았는데,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자 걱정되면서도 놀라웠다. 주말까지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친정을 방문해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되나 싶었다.
엄마 아빠가 보내주시는 사진을 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발매트에만 웅크리고 있거나, 여전히 온몸이 긴장한 채로 가만히 서있기만 해서 나도 가족들도 애타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약 방석에 누워 있으면 몸이라도 따뜻하게 있구나 할 텐데, 꼭 미용한 몸으로 현관 앞에 있는 얇은 발매트에 웅크리고 있는 데다 사료까지 먹지 않는다고 하니 회사에서도 또리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우선 가족들에게는 억지로 다가가지 않고 또리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평소처럼 지내 달라고 부탁했다.
두 얼굴의 그녀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또리가 낑낑 울면서 엄마를 엄청나게 반겼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그 날을 시작으로 또리는 가족들에게 살갑게 굴기 시작했다. 며칠간 이 가족들에게 내가 마음을 줘도 될지 한참 눈치를 보고 고민했던 모양이었다.
적응 기간이 끝난 후 파악한 또리의 성격은 삐삐와는 전혀 달랐고, 내가 본 첫인상과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료를 남기지 않고 잘 먹기 시작했고, 여느 개들과 같이 간식이나 과일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난리가 났다. 산책을 좋아하고, '손'과 '앉아'도 이전 주인에게 배웠는지 이미 할 줄 아는 똑똑이 었다.
양말이나 공 물어오기를 정말 너무너무 너무 좋아하는 장난꾸러기였고, 가족들이 나갔다 들어오면 온 동네방네 반갑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반면 가족들이 나갈 준비를 하면 졸졸 쫒았다니며 불안해하고, 혼자 집에 남겨지고 나면 계속해서 짖어대는 분리불안 증세도 있었다. 간식을 먹고 있거나 장난감을 뺏으려고 하면 잇몸을 드러내고 사나운 맹수로 변신했다. 동생이 발 밑에 누워 자는 또리를 잠결에 건드렸다가 물려서 잠이 깨기도 했다고 한다. 엄마도 또리를 만지시다가 몇 번이나 손을 물려 피를 보기도 했다.
또리의 근황
이전 편에서 이야기했듯 수많은 개들을 비교하고 고르는 과정을 다 겪고 나서 입양했던 또리는 분리불안, 입질, 짖음 3종 세트를 다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눈에 띄게 많이 좋아졌고, 지금은 가족들 역시 또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파악하고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3종 세트의 빈도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귀여운 막내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해피엔딩이다.
4kg가 겨우 넘고 야리야리했던 또리는 아빠가 간식을 너무 많이 준 덕분에 이제는 털을 밀어도 오동통한 몸매가 되었다. 굳이 몸무게를 재보지 않아도 이전 삐삐와 비슷하게 묵직해졌다.
장난감 공이나 양말에 간식을 넣어주면 드러누워서 발길질을 마구 해대며 사방팔방 쑤시고 다녀 온 가족을 깔깔 웃겨준다.
아직도 약간의 분리불안이 있지만 그래도 간식이 든 양말을 던져주고 나가면 혼자 제법 잘 놀며 있는다. 너무 혼자 오래 두면 침대 한가운데나 소파 위에 쉬를 갈겨놓기도 한다.
모든 가족을 다 잘 따르지만 특히 또리의 일순위는 아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쉬는 날마다 또리와 함께 산책하고 목욕시켜주고, 눈이나 귀를 찌르는 털을 가위로 잘라주고, 노곤할 때쯤엔 맛있는 간식을 잔뜩 주니 아빠를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집에서도 얼마나 이뻐해 주시는지 누가 보면 늦둥이 막냇동생으로 착각할 만큼 카톡 가족방에는 엄마 아빠가 보낸 또리 사진이 가득하다.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우리 가족들은 또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고, 인정해주었다. 입양을 준비할 때 했던 내 걱정이 미안하고 무색할 정도였다.
또리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지 않도록 서로 스케줄을 조정하고, 또리가 미끄러지지 않게 거실에 회색의 요가 매트를 깔고 지내며, 가족 중에 누가 손을 물려도 "또리가 싫어하면 하지 말라니까" 하고 또리 편을 들기도 한다.
삐삐 누나 그리고 또리 언니
한 달에 한 번 정도 친정을 방문하는데, 신기하게도 또리는 나와 남편을 유난히도 좋아하고 반긴다.
사실 우리 역시 또리가 처음 만난 사람들일 텐데 우리가 만났던 첫날, 그리고 또리를 데려다 놓고 한 달 후에야 다시 만났던 날, 산후조리를 위해 오랜만에 친정에 갔을 때에도 또리는 나와 남편을 다시 만난 주인처럼 반겨주었고, 가족들이 질투할 만큼 우리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다.
처음 만나 내 품에 안겨있던 그 짧은 시간 동안
또리는 어쩌면 우리를 새로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정을 준 것은 아닐까
15년간 삐삐의 누나였던 나는 이제 또리의 언니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나는 마음만 먹으면 또리의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원할 때 언제든 보러 갈 수도 있다.
또리를 입양시키는 과정을 겪으면서 유기견들을 임시 보호하며 다른 가정으로, 특히 해외로 입양 보내는 분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날을 함께 하며 정을 붙이고,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를 말로 설명해 줄 수 없는 아이들을 낯선 곳으로 보내야 하는 그 마음, 입양 보낸 후에도 내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곳에서 막연히 '잘 지내겠지, 혹시라도 미움받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다잡아야 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지 않고 입양하기를, 내 마음이 조금 아프더라도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손길을 망설이지 않기를.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잡곡자매 인스타그램 : @vorrrrry_k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