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없는 유용을 설계하는 일

사유하는 도시의 시인, 안드레아 브란치

by 베리누나

도시는 완벽한 직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콘크리트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이름 없는 풀처럼, 기능과 구조 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우연한 감정과 사유들이 있다.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는 바로 이러한 틈새에 주목했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평탄한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비정형의 에너지를 포착하는 것, 그것이 그의 창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브란치는 1960년대 후반, 당대의 상식을 뒤흔들었던 실험적 디자인 그룹인 '아르키줌 아소시아티(Archizoom Associati)'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그들의 작업은 ‘반(反)디자인’이라 불릴 만큼 기존의 미적 기준과 기능 중심주의를 거부했다. 이들은 아름다움이 꼭 조화롭고 정제된 형태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조화와 아이러니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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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브란치,〈No-Stop City(무한 도시)〉작업들 중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No-Stop City(무한 도시)〉다. 이 작업은 미래 도시의 모델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무차별한 팽창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다. 도시를 기능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의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바라본 이 작업은, 공간이 단지 물리적인 경계로만 정의되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도시를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인간의 삶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동적인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는 늘 본질에 관심을 가졌다. “앉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거실은 왜 지금과 같은 구조를 갖게 되었을까?”, “우리는 정말 우리의 공간을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가구를 만들고, 방을 꾸미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관계 맺고, 기억을 쌓아가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탐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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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브란치,〈Animali Domestici〉 시리즈


〈Animali Domestici〉 시리즈에서 그는 나뭇가지와 금속 프레임을 조합해 식탁과 의자를 만들었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이 가구는 ‘살아 있는 듯한 오브제’라는 새로운 감각을 제안했다. 또 다른 작업인 <Tree> 시리즈는 금속 구조물과 거친 나무 가지를 결합해, 일상적인 오브제와 자연 요소가 공존하는 공간을 창조한다. 브란치는 이를 통해 도시 생활에서 소외된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20250422_134959.png 안드레아 브란치, <Tree 1>(2010), 자작나무와 파티네 알루미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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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브란치, <Tree> 시리즈


그의 창작물은 겉보기에 단정하지만, 그 속엔 늘 질문이 흐른다. 도구적인 목적만을 좇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감각을 흔들고, 인식의 틀을 뒤엎는 장치로서 작동한다. 익숙한 형태를 통해 낯선 감정을 건드리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곤 하는 사물에 깊은 이야기를 심어 넣는 방식으로, 말없는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브란치가 평생 탐구한 것은 디자인의 형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다. 그는 ‘태도’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무엇을 만드는가보다, 어떤 정신으로 만드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의 작업은 결국 하나의 제안이다. 공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새로운 제안.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도시와 자연, 이성과 감성, 기능과 무용한 시(詩)적 아름다움은 서로 대립해야만 하는가? 브란치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의 큰 조화 속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의 디자인은 실용적 기능을 넘어 우리 삶에 시적 순간을 선사하는 오브제가 된다.


안드레아 브란치는 2023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차가운 도시의 한복판에서 따뜻한 자연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의 작품은 영원한 위로가 될 것이다. 마치 콘크리트 틈 사이로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 1938–2023)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산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다. 급진적 디자인 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인물로, 디자인의 경계를 넓히고 철학을 심은 사상가이기도 하다. 디자인을 사물의 형태로만 보지 않고, 사회와 인간, 자연을 관통하는 담론의 장으로 끌어올린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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