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의 빛의 세계
무형의 존재 가운데 빛만큼 매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빛은 '빛'이라는 찰나의 어감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불가해함 때문에 오히려 더 신성한 느낌을 띈다. 그리고 나는 이 눈부신 신비를 포착하여 예술로 승화시키는 아티스트에게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우리는 보통 ‘디자인’이라고 하면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떠올린다. 의자, 조명, 건축물, 혹은 한 장의 포스터. 하지만 제임스 터렐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디자인한다. 아니,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보지 못했던 것, 그는 '빛'을 디자인한다.
터렐의 작업은 ‘공기를 빛으로 채우는 일’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Skyspace> 시리즈를 마주하게 되면, 그저 천장에 뚫린 단순한 구멍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할 만큼 마음이 평온해지고, 묘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늘 지나치던 하늘이라는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빛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존재감이 없지만, 퍼렐의 공간 속에서는 빛이 주인공이 된다. 벽에 스며들고, 천장을 가로지르고, 관람자의 몸을 감싸며 시간마저 천천히 흐르게 하는 듯한 마법을 보여준다. 그 안에 들어선 우리는 더 이상 빛을 통해 무언가를 ‘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경험하는’ 존재로 바뀐다.
1943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제임스 터렐은 1960년대 중반부터 빛을 매체로 평생에 걸친 실험을 해오고 있다. 심리학과 수학을 전공했고, 항공기 조종사 자격도 가진 이색적인 이력의 소유자인 그의 디자인은,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감각의 확장을 탐구하는 철학적 실험에 가까워보인다. 그는 빛, 공간, 시간이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재료 삼아 인간 내면의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인 <Skyspace> 시리즈는 전 세계 80곳이 넘는 장소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미술관(de Young Museum)에 있는 <Three Gems>는 그의 철학을 오롯이 담고 있는 작업이다. 그가 만든 공간은 관람객이 인공 언덕에 뚫린 터널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작동한다. 마지막에 다다른 원형 공간에 이르면 사람들은 천장에 뚫린 동그란 하나의 구멍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햇빛의 기울기와 하늘색의 변화, 구름의 흐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다시 보기’는 곧 ‘다시 존재하기’와 연결된다. 침묵, 명상, 시간의 느려짐—그 모든 것이 이 빛의 방 안에서 재생되는 것이다.
또한 애리조나 주 북부, 페인티드 사막에는 오래된 화산 분화구 내부를 거대한 빛의 관측소로 바꾸는 퍼렐의 또 다른 작업이 진행 중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Roden Crater>라 불리는 이 작업은, 크레이터 안에 설계된 천문학적 정렬과 자연광을 반영한 방들을 통해 인간이 우주적 리듬과 다시 연결되길 꿈꾸고 있다. 이곳은 아직 대중에 완전히 개방되지는 않았지만, ‘빛으로 만든 성지’로 불리며 전 세계 예술가와 철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터렐의 '디자인'이란, 형태나 기능의 문제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것은 존재에 관한 질문이며, 인식에 대한 실험이고,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조용히 닿는 위로이다. 그가 말하듯, "빛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서 보는 방식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의 공간에 들어선 우리는 더 이상 ‘관람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 공간의 일부가 되고, 빛과 함께 숨 쉬며, 비로소 지금 여기 존재하게 된다. 가끔은 이렇게 물질 없는 디자인이 마음을 가장 깊숙이 어루만지곤 한다. 이것이 제임스 터렐이 우리에게 전하는 ‘빛의 위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