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다고 다 가질수는 없는거였다
"이 과정을 왜 하시려고 하는데요?"
"필라테스 운동 시스템을 알고 싶어요."
"강사세요?"
"아니요. 클래식 필라테스를 취미로 배우고 있어요."
"강사도 아닌데 왜 시스템을 알려고 하세요? 그냥 강사를 믿고 운동하면 안되나요?"
"!!!"
강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지도자 과정에 문의를 했을 때 나눈 대화였다. 전화를 끊고나서 꽤 당황스러웠다. 사실 지금까지 삶에서 무언가 배우려고 할 때 길이 막혔던 적은 없기 떄문이다. 대학때나 회사원일때나 필요한 정보와 강의들은 언제든지 접근가능했다. 심지어 아이비리그의 강의도 들을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데 클래식 필라테스는 뭔가 거대한 비밀이 꽁꽁 싸매져서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클래식 필라테스는 조셉 필라테스에게 직접 운동을 배우던 몇 제자들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오는 운동이다. 조셉 필라테스는 운동법을 정리한 저작물이나 전승할 수제자를 지명하지 않은채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와 함께 운동하던 고객이자 제자들이 자신이 배운 방식대로 체계화하여 전승되어왔다. 때문에 스승과 제자라는 도제식 관계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런 문화를 이해하기 전에 저 대화를 했던 터라 오해를 했던 것 같다. 강사를 왜 믿지 못하냐고 묻는 건 이미 내게 스승이 있는데 왜 따르지 않고 직접 배우려 하는지를 묻는게 아니었나 싶다.
이 세계는 배우고 싶다고 해서 유명한 스승한테 곧바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저 과정 말고도 다른 곳에 문의 했을 때도 "강사세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강사도 아닌데 왜 클래식 필라테스를?' 하며 의아한 눈치였다. 또한 본 과정에 입학하기 전에 사전레슨이라는 그 스승에게 직접 배운 제자에게 미리 레슨을 받는 것이 필수 과정으로 되어있었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회원은 이 운동 시스템을 알면 안된다는거야?’ 그러니까 더 알고 싶어졌다. 그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분이 졸업한 과정을 알아봤다. 미국에 있는 어떤 과정이었는데 조셉 필라테스의 얼마 안되는 직계 제자중 한 분이 운영하는 거라고 했다. 홈페이지를 보니 온라인 과정도 있었다. '오호라!' 이걸 발견한 내가 너무 대견스러웠다. 과정 신청을 하려고 보니 메일로 먼저 문의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신청 메일을 썼다. 몇 일 후 답장이 왔다.
나에게 필라테스 이력을 알려달라고 했다. 'Pilates history?' 갸우뚱 했지만 그간 했던 동작을 정리한 엑셀표가 있으니 그걸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맙소사..) 자랑스럽게 엑셀표를 첨부해서 답장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어렴풋 하게 이해했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걸. 후에 알았다. 그 과정은 필라테스 강사를 오래 한 분들이 심화 교육을 위해 가는 대학원 같은 과정이라는 것과 그 과정을 듣기 위해서는 클래식 필라테스 전통을 이어받은 스승을 통해서 꾸준히 배워와야 한다는 걸.
오지 않는 답장에서 처음으로 이 세계의 깊이를 직면했다. 클래식 필라테스의 세계는 너무나 결이 달랐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배움이 열리는 곳이 아니었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듣는 질문은 “강사세요?” 였다. 어제까지 회사원이었던 나는 그 질문을 들을 수록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뭔가 이 세계에 오래 있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구역 같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멈출수가 없었다. 매일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모던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교육과정은 많아도 클래식 필라테스는 별로 없었다. 해외에 가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과정도 있고 해외 브랜드로 국내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크고 작은 필라테스 샵에서 원장님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르치는 곳도 있었다. 하나 하나 연락을 해가며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상담을 받고 체험 수업을 들으면 들을 수록 혼란에 더 빠져들었다. 공통적으로 교육기관에서는 클래식 필라테스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오리지널이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은 곳은 없었다. 레슨을 받을 때도 여전히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비교를 해야하는지도 알수 없었다. 그저 레슨 후에 내 몸이 나아졌는지 기분이 좋은지 밖에 판단할 근거가 없었다. 그렇게 모호한 기준들 가운데 가장 크고도 명확한 것은 비용이었기에 거기에 매달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의 교육과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클래식 필라테스는 모던 필라테스와 달리 교육비가 천만원 단위가 기본이었다. 대학원을 간다면 모를까 이런 비용을 필라테스를 배우는데 들인다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굳이 내가 이 시스템을 알겠다고 이 비용을 들여야 하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SNS 피드는 온통 클래식 필라테스 태그를 팔로우 하고 있고 찾아보는 영상들도 클래식 필라테스 동작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또 집에서도 필라테스를 연습하기 위해서 몇 십만원이나 되는 전용 매트를 구매하기도 했다. (일반 매트와 다르게 클래식 필라테스 매트에는 핸들과 스트랩이 있다.)
아무리 마음을 비워도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곳을 전전하며 상담을 받고 체험레슨을 경험하면서 비용에도 익숙해져 어디서 어떤 가격을 말해도 의심이 없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용에 익숙해지자 결국 남는 것은 내 느낌 뿐이었다. 그런데 살면서 그 느낌이라는 걸 믿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그걸 기준으로 삼기란 위험해 보였다. 낯설고, 두려웠다.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몸이 대답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그땐 잘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