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질문은 어디갔을까?

성장의 최전선에서

by 토토

기자 지망생 시절 퀵서비스 기사님의 하루를 담은 르포기사를 쓰고 싶어 남대문으로 취재를 갔다. 하필 그날은 샛노란 병아리 색 핸드메이드 코트를 입고 갔는데 기사 아저씨들의 점퍼는 너무 검고 투박했다. 그 앞에서 차마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생의 최전선에 있었고 난 애송이 같았다.


“이 물건들은 어디로 주로 운반되나요?”라는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그 앞을 서성이며 해가 질 때까지 망설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상상으로 르포를 지어냈다. 질문을 못해 찌질했다. 두려운 건 “네가 뭔데”라는 답이 왔을 때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게요..‘


그때 직업이나 소속이 질문할 권한을 주는 건 특권이라는 걸 느꼈다. 특히 나같이 호기심은 넘치지만 질문을 못하는 소심쟁이에게는 더. 질문이 일이면서 정당성이니 말이다. 네가 뭔데라는 질문을 받으면 제가 하는 일이 질문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거다.


대신 어찌어찌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컨설턴트가 어떤 직업인지 조금씩 나름 정의해 나가다가 퇴사를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돌이켜보면 컨설턴트는 질문하는 사람이고, 질문의 특권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이 컨설턴트를 찾는다. 회사에서는 1-2년 차 때부터 스타트업 멘토링이 맡겨졌다. 대체 창업을 안 해본 내가 어떻게 문제에 해결책을 줄 수 있을지 막막하고 암담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멘토링을 맡기는지 원망스럽기도 해서, 항의를 가장한 질문으로 대표님께 물었다. “대체 제가 스타트업 대표님께 해줄 수 있는 건 뭐죠?”


대표님 말씀이 컨설턴트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거였다.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문제를 다양하게 생각하게 하는 역할. 문제만 제대로 알면 솔루션은 알아서 찾아지기에. 고객은 그 관점에서 가치를 느낀다. 나중에 나름 질문에 능해졌을 때 알게 된 건 문제를 제대로만 알면 솔루션도 거의 고객이 만들어간다는 거였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뭘 해야 할지 아는데 그걸 주고받을 카운터파트너가 필요할 뿐이다.


컨설턴트는 질문의 권한을 공식적으로 고객에게 부여받는다.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와 맥락에 대해 질문하고 듣는다. 사실 고객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컨설턴트는 질문 덕분에 성장의 최전선에 서게된다. 사업 과정의 수많은 우연한 계기와 의도, 관계, 의사결정, 우여곡절을 이렇게 가까이서 질문하고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 것이다.


난 그 시절에 질문이라는 도구로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기가 너무나 어렵고 힘들었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누군가의 생각과 동기에 맞닿아서 다양한 변수가운데 상황을 진단하는 정보들을 연결 짓고 다시 질문하면서. 다른 세계와의 만남과 충돌로 깨지고 배우고 성장했던 시간이었다.


이젠 질문을 못해 찌질한 것이 아니라 알기 싫은 귀찮은 어른이 되어가는 거 같다. 저때만큼 성장하는 기분을 또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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