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의 세계에서 몸의 세계로

몸이라는 모호함의 망망대해를 탐험하며 알게 된 것들

by 토토

나는 늘 빠르게 배우고,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몸은 그런 방식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느리고 비효율적인 시간 속에서야, 내 몸에도 나만의 속도와 문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photo-1620662831351-9f68f76d0b9a?fm=jpg&q=60&w=3000&ixlib=rb-4.1.0&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 필라테스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배울까 고민하던 나의 모습 ©unsplash

나는 어떤 과정 끝에 명확한 성과를 바라면서 살아왔다. 게다가 그 결과를 얻기까지 효율성도 추구했다. 시간과 비용에 있어서 말이다. 짧은 시간 안에 경제적인 비용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스스로를 닦달했다. 첫 직장을 컨설팅 펌에서 시작하며 그런 성향이 잘 맞았고 더 강화되기도 했다. 투입시간 대비 사업성과가 매우 중요했던 곳이라 그런 역량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얻어진 것도 많지만 얻기 어려웠던 것도 있다. 바로, 몸의 영역에서!


처음 필라테스를 배울 때도 효율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30회 정도 바짝 배우고 매트 필라테스 정도는 혼자 수련할 수 있을 정도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나 혼자 이런 목표를 세우면서, '왜 필라테스 학원에서는 회차별 목표를 세우지 않을까?' 답답해하기도 했다. 회사에서나 써먹는 '성과관리'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레슨 단가가 비싸니 그에 맞는 성과를 내기 위해 매 레슨을 최선을 다해서 배웠다. 취미로 배우는 거였음에도 배운 것을 집에서 복습하고 인터넷에서 올바른 자세를 학습하기까지 했다. 내가 결제한 횟수 가운데서 가장 최선의 결과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몸의 즐거움이나 변화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거의 입시 준비생처럼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전혀 즐겁지 않잖아!'라는 생각을 하며 권태기를 맞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 과로한 탓에 번아웃이 왔음에도 필라테스를 통해 내 몸의 성과를 내려고 아등바등하던 때였다. 내 몸이 억지로 동작에 끼워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자세를 성공시키기 못하면 좌절하며 집에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필라테스는 정말 억지스러운 운동이야!'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내 몸에 맞게 했으면 됐을 것을 혼자서 고행을 자처하며 외부로 탓을 돌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 필라테스 선생님으로부터 오래된 회원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무려 3년이나 꾸준히 배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움에 있어 몇 년 단위는 내 사전에 없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대학 빼고. 처음엔 '와... 돈 많이 썼네...'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즐겁게 천천히 쌓아가는 과정을 거쳤구나.'라고 생각한다. 그 자세가 부럽기도 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몸이 받아들여지도록 꾸준히 해온 시간들이 얼마나 값진지 알기 때문에.




필라테스, 그중에서도 클래식 필라테스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더욱 '효율'이라는 나의 가치관과 많이 갈등을 겪었다. 다른 필라테스 자격증과 다르게 클래식 필라테스는 기간도 길고 비용도 크다. 몸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선생님께 레슨도 오랜 시간 받아야 하고, 선생님의 레슨도 관찰해야 하며, 스스로 수련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만 원은 훌쩍 넘는 그 과정을 알아가면서 '이게 말이 돼?'라며 납득하지 못한 시간이 꽤 길었다. '이 업계는 돈에 눈이 멀었나', '강사가 되려는 사람을 봉으로 아나?' 등등의 비난들도 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된다. 몸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늘 함께 하는 내 몸도 미지의 세계이다. 그리고 어떤 체계가 있는 운동을 내 몸으로 습득하려 할 때는 단번에 '다운로드'가 되어 설치되지 않는다. 꾸준히 단련하며 기다려야 가능하다. 같은 자세라도 매번 다르고, 새로운 깊이를 찾아내게 된다. 어느 날은 되었다가 어느 날은 되지 않는 자세도 있다. 그동안 살아온 세계관과는 너무 다른 몸의 세계와 수많은 충돌을 겪고 나서야 알아간다. 머리로 내리는 명령과는 다른 '몸의 문법'이 있었다. 아주 더디고 일관성과는 거리가 멀지만 또 그 안에 깊이가 있는...


photo-1458312732998-763933ed4896?fm=jpg&q=60&w=3000&ixlib=rb-4.1.0&ixid=M3wxMjA3fDB8MHxwaG90by1wYWdlfHx8fGVufDB8fHx8fA%3D%3D 머리가 주인인 줄 알았지? 머리로는 안 되는 몸의 영역이 있다고! ©unsplash


목표지향의 마음을 조금 내려두니, 몸은 그저 어떤 자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질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꾸준한 시간이 쌓여야 한다는 걸 마음 깊이 인정하게 됐다. 특히, 그 과정을 도와주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도. 단지 어떤 자세를 안전하고 정확히 수행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를 통해 일상생활 움직임 그 이상의 몸의 잠재력과 기능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내 몸의 새로운 힘을 알아가는 건, 그 자체로 내 몸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가치로운 과정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것도 수긍한다.


이제야 30년 인생을 지배해 온 효율이라는 환상을 조금 더 내려놓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몸에 관심을 갖게 되고 운동에 빠져들었을 때, 이런 가치를 깨달으라는 신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헛똑똑이에게 쉽지 않은 몸의 세계를 알아가게 해 주려고. 비 효율적으로 천천히 내 몸과 함께 변화를 맛보면서, 아직도 내게 남은 '결과와 효율주의'를 조금씩 버려가면서.




작가의 이전글필라테스 자격증의 홍수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