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얻을지에 대해
(지난 이야기에서는...)
첫 대외활동으로 드디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오디세이.
이제, 마케팅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보기 시작하는데...
"다른 사람 뽑으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네? 방금 뭐라고..."
"다른 사람을 찾아봐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찾으시는 사람이 다른 거 같아요."
내 인생의 첫 기업 면접에서, 난 정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난 내가 정말 일 하고 싶던 다른 곳에서 첫 인턴을 시작하게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냐고?
드리머즈마케팅스쿨을 마치고 어느덧 3학년이 된 나는, 이제 어떻게 진짜 마케터로 성장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아르바이트와 대외활동도 좋은 기회였겠지만, 내가 정말 해 보고 싶었던 건 마케팅 실무였다. 타이밍 좋게도, 이 때는 한국에서 스타트업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채용을 시작하던 때였다. 나도 새로운 기회를 찾는 와중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곳이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2016년 5월, 스타트업 인턴즈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페이스북에서 정말 우연하게 발견해서 지원했는데, 나에 대한 이해로 시작해 직무에 대해 이해하고, 희망하는 스타트업들과 매칭이 되는 식이었다. 전문적으로 상담을 맡는 코치님이 과정을 지도해주는 식이었고. 비록 바로 인턴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못 했지만, 내가 어떤 스타트업과 잘 맞는지, 스타트업 세계가 어떤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표님을 통해 백패커스그룹이라는, 미국에서 비빔밥을 팔며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희한한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여전히 인턴 기회를 잡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학교를 다니며 계속 인턴 자리를 알아보고, 머리를 싸매며 백패커스그룹 지원서를 작성하며 여름을 맞았다. 6월의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또 다른 프로그램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고, 난 주저 없이 참가 버튼을 눌렀다.
한창 더웠던 2016년 7월의 어느 날, 땀을 닦으며 행사장 입구에 선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한 손 가득한 경력기술서와 함께 자신을 어필하는 사람, 열정적으로 자기 서비스를 소개하는 스타트업 대표, 그 와중에 자기는 3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들려오는 말... 얼핏 들어보니, 하나같이 대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거나 굉장한 실력을 갖춘 프리랜서들 뿐이었다. 거기에 비해 나는 이력서에 꼴랑 대외활동 하나 적힌 24살이었고. 설명회장 입구에서, 딱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진짜 고민 많이 했다. 저 설명회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나보다 경험 하나라도 많았고, 더 똑똑해 보였으니까. 그래도, 어차피 잃을 것도 없고 나이도 어린데 일단 질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설명회장에 들어갔다. 인턴 자리 못 구해도 좋으니까 경험이라도 해 보자는, 나름대로의 결정을 한 셈이었다. 150여 명이 모인 곳에서 MC가 자기소개할 사람 세 명만 모신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뛰쳐나가서 나를 소개하기도 했고.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렇게 한 번 하고 나니, 그 이후에 스타트업 부스들을 돌며 나를 어필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한 스타트업에서는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명함을 먼저 건네주기도 했고.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한 스타트업과 면접 일정을 잡았다. 내가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 원하는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말을 남겨준 곳이었기에 굉장히 기대됐다. 아무런 경험도 없는데도 나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곳이어서 감사하기도 했고.
그러나 2차 면접에 참여하면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안내받은 건 심층면접을 거친 후, 근로조건을 조율해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면접장에서 뜬금없이 영어 면접이 추가되었고, 한 술 더 떠서 1개월 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에 인턴 채용을 결정하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면접을 어렵게 통과해도 1개월 프로젝트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난 다음 학기를 통째로 날려버린다는 것이었다. 아직 대학교 2학년이었고, 휴학할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면접의 하이라이트는, 이런 나의 사정을 설명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 스타트업 인턴 알아볼 정도면 굉장히 적극적인 친구일 텐데.
잘 안 돼도 한 학기 정도 늦어지는 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나요?
아니, 나에게는 충분히 걱정할 일이었다.
아니, 나는 한 학기라는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1도 없었다.
아니, 내가 걱정하고 말고는 그쪽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의도를 오해해서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고, 섣불리 대답하는 게 예의가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면접 담당자의 생각은 저 말 그대로였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면접을 본 날은 앞에서 언급한 백패커스그룹의 면접 결과 발표날이었고, 휴학 신청 마감 하루 전날이었다. 영어 면접을 앞두고 주어진 시간은 5분.
5분은 5초처럼 흘렀고, 영어 면접을 볼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영어로 '저희 회사가 왜 당신을 선택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내가 결정한 바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예의를 갖춰서, 단호하게.
다른 사람을 뽑으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진행 후 인턴 채용 결정을 하는 방식은, 제가 디캠프에서 안내받지 못했기에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인재를 알아봐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굉장히 당황해하는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면접장을 나왔다.
그리고 면접장을 나온 지 10분 후, 나는 백패커스그룹에서 합격을 축하하는 문자를 받았다.
그 다음날 아침에는 면접을 본 스타트업 대표에게서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았고,
그 날 오후에는 휴학 신청을 하고 백패커스그룹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 모든 게 12시간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 5분 동안, 내가 나를 위한 결정을 하지 못 했다면 어땠을까.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원한 것도 얻지 못하고, 한 학기를 허송세월 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면, 중요한 결단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아찔하고, 한편으로는 그때의 나에게 감사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결정을 내리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