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자국을 더 나아가느냐, 멈추느냐의 차이
"진수 님 시간 괜찮으실 때 커피라도 한 잔 하면 좋겠습니다."
"... 네? (급당황)"
0. 찜기 안에 들어간 물만두처럼 땀이 나던 6월의 마지막 날,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사람을 만나게 됐다. 예전부터 팔로우하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의 창업자이자 디렉터인 분이, 내 글을 잘 읽고 있다며 한 번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페친이 되고 메신저로 연락은 했지만,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은 전혀 몰랐다.
1. '세상에, 패션 브랜드 디렉터를 만난다고?'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채로 홍대 거리 카페로 갔다. 그리고 그 디자이너 분과 패션에 대해서만 3시간을 이야기했다.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지금 가장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 각자가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한 생각들까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과의 만남 이어서일까,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던 게 기억난다. 그 디렉터 분과는 지금까지도 패션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곤 한다.
예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이, 요즘 몇 년 사이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플루언서,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만나는 사람도 다양해지고 있다.
2. 정확히 언제라고 콕 집어서 말 하기는 힘들지만, 이렇게 '우연한 만남'이 시작된 건 내가 대외활동을 하면서 SNS (특히 페이스북)를 보다 활발하게 하기 시작한 때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장해두기는 애매하고 기억은 해야 할 것 같은 마케팅 관련 기사들을 공유하는 걸로 시작했다. 그렇게 공유하는 글들이 의외로 반응도 좋고 팔로워도 늘자,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내가 공유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3. 친구가 되면 내가 배우는 것도 더 많고, 나의 '친구'들에게도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사실 처음 친구 추가 신청 버튼을 누를 때만 해도 걱정을 좀 했었다. 워낙에 쿠크다스 멘탈이기도 하고, 너무 다짜고짜 친구 신청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결론부터 말하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됐다. 그동안 공유해 둔 글들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팔로워가 몇 천 명인 마케터도, 스타트업 업계에서 유명한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내 친구 신청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약간... 이렇게 쉽게 받아줄 이유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이어지는 게 나는 신기하고 좋았다.
그런 과정이 계속 이어져서, 지금은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있다.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온라인 편집샵 마케터부터 인플루언서, 발표 전문가, 나의 최애 가방 브랜드 CEO까지. 최근에는 과외를 가르쳐주다가 지금은 그만둔 학생과도 거의 친구 먹고 지내고 있다. 본의 아니게 요즘(?) 10대 트렌드를 알음알음 알게 되는 건 덤이다.
결국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손짓 몇 번이면 가볍게 사라지는 연기와 같은 것이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다.
4. 직장에 들어가면 친구 만들기 힘들 거라는 말이 있다. 이제 어엿한(?) 취준생 입장이기도 하고, 인턴 생활을 하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어렴풋이는 알기에 흘려들을 수 만은 없는 말이 되었다. 나는 특히나 말수도 (정말) 없고 성격이 활달한 것도 아니어서, 사회생활 하기 힘들겠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어서 더 그렇다.
그러나 요즘, 특히 그 디자이너 분을 만난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활달한 사람들은 활달한 대로, 말수 없고 조용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름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는 언제든지 있으니까. 그걸 알기에 더 이상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못할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마음의 짐을 하나 더 내려놓아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