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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은애 May 24. 2024

처음으로 No!라고 말한 날


나는 no라는 말을 잘 못한다.

아니! 잘 못한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노라고 말했을 때, 상대방이 힘들어할까 봐 거절하지 못하는 내 성격은...학창 시절에 나를 정말 힘들게 했지만…그래도 그게 나였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친구와 신호등앞에 서 있었는데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이 친구에게도 예스. 다른 친구와의 약속도 예스.

그러다 늘 시간이 촉박하게 약속 장소로 옮기다 보니 기다리는 친구도 화가 나고, 이 친구와는 빨리 헤어져야 하는데 그러지는 못하고...그래서 안절부절 못하는

바로 그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중학생인 내가 보인다.


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친구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자기는 사탕 먹기 싫다고 안 받겠다고 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남는지...

나는 먹기 싫어도 친구가 주는 것은 무조건 그냥 받았다. 사실 필요 없는 것이었는데도...

그렇게 소심한, 우유부단한 나였다. 그래서 한 때 스스로 지어준 별명이 '부단이'이다. 우유부단의 줄임말.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생각했지만 이곳에 와서도 여전했다.




알래스카에 온지 석달쯤 지난 어느 날, "주방 정리를 하다가 혹시 네가 이거 필요한가 해서 들고 왔어. 필요해?"라고 지인이 물었다.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pause상태가 되었다. 사실 딱히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의 부단이가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내 성격을 아는 그분이 괜찮다고 필요 없으면 노 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내가 사는 곳은 듀플렉스다. 우리는 1층, 방이 두 칸이다. 2층은 우리 집보다 훨씬 넓다. 여기 이사 오고 나서한 달쯤 지났었나...윗집과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윗집은 매주 화요일마다 과일을 팔았기에 큰 트럭이 한 대 있었고 본인들 각자 차와 보트가 있었다. 당연히 주차 공간은 늘 가득 찼다. 우리는 차가 한대.


어느 날 케냐사람인 윗집 아저씨가 트럭을 빼다가 옆에 있는 우리 차 운전석 문을 박았다. 남편을 불렀고 나가봤더니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윗집 아저씨가 작은 편편한 나무 막대기를 끼워넣어서 문을 연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난 차문을 나무 막대기로 여는 거 싫은데, 이미 벌어진 일이다.

그러고 나서 그걸로 끝!!

문을 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물론 미세한 소리였지만 우리는 거기에 민감했다.

아무래도 앞 문을 수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윗집 아저씨가 엄청 화를 내면서, 왜 수리를 하냐고. 한마디로 말하면 네 차가 똥차인데 왜 돈을 들여서 수리를 하냐는 거였다. 그 말에 더 기가 막혔다.

한국 같았음 그냥 바로 보험처리하면 되는데, 본인이 소유한 차가 많으니 본인 보험료가 올라간다고 펄쩍펄쩍 뛰는 것이었다.


-중간 생략-


몇 주 만에 이 일이 일단락 종료가 되었고, 그 후에 윗집 아줌마도 관계가 좀 풀어졌다고 생각했는지

해가 늦게까지 떠 있던 어느 여름저녁에 문자가 왔다. 같이 걷겠냐고... 운동할 상대가 필요했던 거다. 나는 이미 아이들과 산책하러 나가는 중이었다. 걸으면서 영어로 구구절절 문자 보내는 것도 쉽지 않았고, 그래도 급히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no!라고 문자를 썼다. 사실 그렇게 no라고 먼저 쓰면 안 되고 앞에 설명을 하면서 그렇게 못할 거 같아요...라고 얘길 했어야 했지만, 급한 마음에 no라고 쓰고 몇 마디 덧붙여 문자를 보냈다. 사실 no라고 쓰면서도 고민했다. 그런데 그렇게 문자를 보냈는데, 한편으론 너무 기뻤다. 드디어 내가 no라고 했구나~~

마음 한편엔 약간 불편한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너무 시원했다.

이제 드디어 나도 no라고 말할 줄 알게 되었구나!! 그래, 뭐 어때! no라고 말하면 되지!

그날 이후로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자유함을 얻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거절을 할 때가 있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에서 변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사람이 변한다는 게...

하지만 너무 신기한 것은 그렇게 배워갈수록, 훈련할수록 나 자신이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때로는 우리 삶에 변화가 필요한 순간,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라면 40년을 살았든 50년을 살았든

아님 60세가 넘었든, 나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변한다는 건... 내가 더 자유해지고 건강해진다는 신호임을 잊지 말자.

오늘도 나는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본다.

때론 실패하고 실수해도 나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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