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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은애 May 25. 2024

알래스카에서 차린 식탁


한국에 살 때는 요리를 많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맛있는 식당들이 많이 있었고, 직접 만드는 것보다 반찬을 사 먹는 것이 때론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더 절약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서 살다 보니 한국 음식점이 없는 이곳에서는 내가 요리를 하지 않으면 한국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루 세끼 매일 요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들고 온 미역으로 열심히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이곳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두부, 계란, 감자로 두부구이, 계란구이, 감자볶음 같은 음식들을 해 먹었다. 이곳 현지 친구들을 초대해서는 비빔밥을 제일 많이 대접했던 것 같다.


매일 메뉴는 거의 비슷했다. 미역국, 계란국, 두부구이, 계란 프라이 등




 이곳에 온 지 5개월 만에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다. 장을 보러 나갈 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려고 해도 딱히 살 수 있는 재료가 한정적이었기에 장을 본다는 게 큰 의미가 없었다.

코로나로 고생할 때도 메뉴는 똑같았다.

미역국과 두부구이...

코로나가 우리 가족을 한번 휩쓸고 간 뒤에 정신을 차리고선 이렇게 먹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튜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큰 맘먹고 인스턴트 팟을 샀다. 그 이후로 시도한 요리들은 유튜브에 나와있는 '인스턴트 팟으로 만들 수 있는 메뉴들'이었다. 감자탕, 소고깃국, 카레, 장조림, 수육, 뼈다귀 해장국, 구운 계란, 찜닭 마지막으로 갈비탕까지 시도했다.

한국에서는 그냥 식당 가서 사 먹든지 배달시키면 되는데 이것을 직접 만들다니...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코로나 걸리기 전과 후, 인스턴트 팟을 사기 전과 후를 나눠서 요리가 완전히 업그레이드 되었다.

요리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었다.


 한동안 새로운 요리를 먹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지루해진다. 그래서 또 다른 요리들을 검색해서 시도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유튜브에 나와있는 대로만 잘 따라 하면 맛도 있고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처럼 비주얼도 괜찮아졌다.


여기서는 불고기나 제육볶음을 하려면 고기를 덩어리째 사서 직접 칼로 잘라야 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코로나 전까지 한 번도 제육볶음을 만든 적이 없다. 나는 불량 엄마였다.

유튜브를 검색해 봤더니 커팅칼을 사는 게 좋고 아니면 고기를 냉동실에 살짝 얼렸다가 직접 다 잘라야 했다. 물론 커팅칼도 내가 직접 자르는 거긴 하지만 그냥 칼을 쓰는 것보다는 수월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눈이 충혈될 정도로 열심히 검색해서 드디어 커팅칼을 구매했다.

요리는 장비발인가! 그 이후로 불고기, 제육볶음을 아이들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조리 기구를 사면 그에 맞춰서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요리도 늘어났다. 그렇게 나의 요리 실력은 점점 향상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아쉬운 건 정말 요리하기 싫을 때, 재료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내가 한 음식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도 예슬이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안일을 하면 용돈을 주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예슬이는 청소보다는 요리를 선택했다.

유튜브를 검색하기 시작하더니 정말 다양한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실력이 날로 향상되어서 언제부턴가 나보다 요리 실력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예슬이는 내가 선택한 요리가 아닌 본인이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요리들을 뚝딱뚝딱 시도하며 만들었다. 어떤 요리는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것인데도 도전해 보는 모습이 기특했다.

나 같으면 귀챦아서 안 할 텐데... 딸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딸이라고 다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기에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는 딸이어서 나는 정말 행운 맘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은 예슬이가 만들어 준 음식들을 늘 감탄하며 먹었다. 게다가 베이킹까지 시작한 예슬이는 가족들 생일에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주었다.

사실 예슬이가 요리를 좋아해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물어보았더니, 본인이 요리를 하는 이유는 학교 다녀와서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이고(참고로 여기는 학원이 없다), 청소는 하기 싫고 차라리 요리가 낫다는 것이었다.

약간 충격이었지만 이유야 어떻든 요리를 한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이제는 온 가족이 요리에 참여한다.

일단 나와 예슬이는 기본적으로 늘 요리를 하고 있었고, 남편도 본인이 만들 수 있는 아니 만들고 싶고 시도해보고 싶은 메뉴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라고 권했다. 남편이 주로 담당하는 메뉴는 김치볶음밥, 연어스테이크, 미역국 등이다.

어느 날 남편은 연어 김치찌개를 만들어 보겠다며 새로운 요리를 시도했다. 맛이 꽤 괜찮았다. 참고로 이곳은 연어의 고향이기에 집 앞 바닷가에 연어가 뛰어오른다.

둘째 은철이에게도 권했다.

네가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 하는데(은철이는 이 말을 엄청 싫어했다;;^^) 그때는 네가 요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두 가지 정도는 요리를 해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남자의 cook유튜브에서 평생 써먹는 레시피 순두부찌개를 몇 번 따라 하더니 이제는 곧잘 만들게 되었다. 이곳에는 순두부가 없기에 우리는 두부찌개라고 부른다.

아마 한국에서 살았으면 우리 아이들은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와 내가 해주는 저녁을 먹으며 요리라는 건 아예 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어쨌든 한국보다는 불편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요리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은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변함없이 요리를 한다.

성경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동적으로 고민이 되는 때가 많다.

그럼에도 생존하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요리에 내 마음을 담아...

오늘도 즐겁게 먹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예슬이가 만든 요리들


예슬이의 베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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