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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yager 은애 May 15. 2024

알래스카 시골섬에서 집구하기


한국과는 다른 이곳의 렌트 시스템. 한국은 전세가 있지만 여기는 월세 밖에 없다.

월세는 정말 사악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출을 해서라도 집을 사나보다;;


섬의 특성상, 집이 한정적이다. 그리고 엄청나게 오래된 집들이 대부분… 게다가 이곳은 일년에 거의 300일 비가 오는곳이기에...집 상태...아마 말하지 않아도 예상될 것이다.





                          vacation rental




2021. 5월5일 어린이날,

이곳, 알래스카 캐치캔에 도착해서 이 섬 북쪽에 있는 vacation rental에 두 달간 머물렀다.

그리고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렌트할 수 있는 집이 나오지 않았다.


이곳은 여름이면 크루즈가 제일 처음 도착하는 섬이다.

그래서 여름 시즌에만 다른 지역에서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집주인은 그들에게 렌트비를 비싸게 받고 집을 렌트해준다. 그러기에 현지에 사는 사람들은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어떤 사람들은 집을 못 구해서 보트에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차에서 몇달을 살기도 한다.




드디어 렌트할 수 있는 집이 한군데 나왔다. 

정확히 어딘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당시 차가 없었기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그 집 근처를 찾아갔다.

충격이었다.

비까번쩍 화려한 집에 살려고 하는 마음은 애당초 아예 없었고 어떤 곳이든 괜챦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가 밖에서 본 그 집은...영화에 나오는...거의 빈민촌 수준의...그런 집이었다.

그래! 가난한 나라에서는 뭐 그런 집에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괜챦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가막히는 건 그런 집의 월세가 150만원이라는 것이다. 그 비싼 돈을 주고 다 허물어져가는...영화에 나올법한 그런 집에서 산다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모르겠다. 그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운전해 주신 분도 기가 막혔던지...들어가보지도 않고 차를 돌렸다.




또 다른 집이 나왔다. 이번엔 이 섬에 있는 유일한 아파트 같은 곳이다. 사실 난 아파트도 상관없었다. 한국에서는 아파트에 사는게 사실 더 좋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선 반대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아주 저소득층? 그런 분위기 인것 같다.

아파트가 한국과는 당연히 다르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딱 한동이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창문이 한켠에만 있었고, 세탁기와 건조기는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공용으로 지하에 비치되어 있었다. 여자는 위험해서 혼자 갈 수 없기에 남편이 항상 빨래를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안내해주신 분은 혼자 사는 할머니셨다. 본인은 집안에 빨래를 말린다고 했다. 그분은 혼자지만 우리는 4인 가족이라...그렇게 하는게 좋은 방법일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열심히 신문과 인터넷을 계속 뒤졌다. 며칠 뒤에 한군데 더 발견했다. 지난번 아파트보다 훨씬 낫다. 여기는 3층 정도 되는 건물인데 그 아파트보다 작은 숫자의 사람들이 살았고, 세탁실은 여전히 지하였지만 그래도 괜챦다고 생각했다.

대신 창문앞이 도로변 주차장이라, 항상 커튼을 쳐놓고 지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집상태는 음...더러웠다. 남자분이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만큼 깨끗하게 할지는 의문이다.

어쨋든 이 집이 가장 괜챦은 집이었다. 바로 계약서를 쓰려고 하다가 하루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인을 통해 렌트할수 있는 집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본 곳은 이 섬 중심에 있는 다운타운이었고 이 집은 남쪽에 있었다. 

이 집에 딱 들어가는 순간...벽난로를 제거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본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무조건 이 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지 이제 한달째라 여기서 쌓아놓은 신용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똑같은 조건에 렌트하려고 할 때 순위에서 밀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집주인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 내외가 영국에서 우리와 같은 선교단체 소속으로 일했다고 한다. 그것으로 신용 백프로 먹고 들어갔다.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집을 구했고 이곳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5살까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사를 엄청 많이 다녔다. 열심히 돈을 모으신 부모님은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그 집에서 거의 25년을 살았다.


 대학 졸업 후 선교단체에서 일하면서 합숙을 했다. 주로 대학생들을 훈련했기에 거의 6개월에 한번씩 이사를 다녔다. 20년 넘게 한 집에서만 살았기에 매번 이삿짐을 싸는 것은 또 다른 훈련이었다.

 결혼을 하고 거의 2년마다 여러 도시를 이동하며 이사를 다녔다. 매번 집을 알아보는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늘 딱 맞는 집이 예비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이사할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있지만, 믿음이 있다. 이곳에서도 그렇게 우리에게 딱 맞는 집을 찾게 되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앞으로 이 집에서 살면서 일어난 일은 개봉박두 짜자잔!!


              -알래스카 리빌라기게도 섬, 캐치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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