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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가득한 딸과 민감한 아빠 사이에서

알래스카 시골섬에서, 서로 다른 기질로 엮어가는 우리 가족의 성장기

by voyager 은애


사랑하는 나의 딸 J는 올해 13살, 중학교 1학년이다.

무엇에든 열심히 하고 열정이 가득한 아이여서 늘 다양한 일에 흥미를 보인다.

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알래스카 시골 섬에는 아이가 어떤 활동을 하려면 무조건 부모가 라이드(차 태워주기)를 해줘야 한다.

섬 가장자리를 따라 난 메인 도로 한 군데로 버스가 다니긴 한다.

하지만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운전이 불가능하거나 면허 정지 상태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어른들도 버스를 이용하는 데는 약간의 부담이 있다.

한국처럼 학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마다 여러 가지 스포츠 활동들을 신청해 참여할 수 있다.

일주일 스케줄에 축구, 소프트볼, 태권도 등이 나눠 있어서 매번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다시 데려와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처음엔 이 생활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냥 이곳의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생긴다.

활동적이고 열정 많은 딸의 스케줄을 따라가는 것이 민감하고 내향적인 성향의 아빠에게는 때때로 벅찬 일이 된다.

딸의 에너지와 끊임없는 요청은 아빠에게 때로는 너무 벅차고, 피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낀 나는 어떻게 이 관계를 도와야 할지 고민하던 중, '위드유치료 교육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기질 검사를 받게 되었다.

기질 검사를 통해 우리 가족의 기질 유형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선택적 연대형 교감 기질', 나는 '선택적 연대형 포용 기질', 딸은 '다양한 행동형 관용 기질', 아들은' 다양한 행동형 몰입 기질'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처음에는 복잡하고 어려운 말처럼 들렸지만, 강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 가족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아빠와 엄마는 선택적 연대형이고 두 아이는 다양한 행동형이라는 것이다.

이 검사는 특히 아이들을 양육할 때, 각자의 기질을 이해하고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다.

기질 양육이란 자신의 결(강점)을 선하게 발현하도록 키우며, 약점을 훈련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의 기질뿐만 아니라 어른의 기질을 파악해 보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아빠 : 선택적 연대형 교감 기질


남편은 자신이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이다.

선택적이라는 단어가 알려주듯이 소수의 깊은 관계를 중시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고, 감정의 깊이가 매우 깊다.

그래서 외부 활동이 많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상황에서는 쉽게 지치거나 감정적으로 소진된다.

교감 기질은 진실한 사랑과 관계를 추구한다고 한다.

이런 기질의 남편에게 딸의 활동을 따라가고, 일정을 다 소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남편의 민감성과 섬세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곳 현지 사람들도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한꺼번에 하는 것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의 성향은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딸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 운전해 주고 싶다.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딸 : 다양한 행동형 관용 기질


딸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완벽을 추구하고, 성실하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향이다. 또한 주변을 세심하게 돌보는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겐 관대하지 못해, 완벽하지 못한 결과에 쉽게 상심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실제로 이 아이 덕분에 우리는 이곳에 온 첫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스펠링 비 대회, 배틀 오브 더 북스 학교 대항전,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들 : 다양한 행동형 몰입 기질


11살 아들은 딸과는 다르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경향이고, 싫어하는 것엔 좀처럼 관심을 주지 않는다. 좋아하는 활동 하나에 푹 빠져 몰입하고, 그것에서 성취와 만족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강사님은 이런 기질의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활동 하나만큼은 무리를 해서라도 꼭 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하나가 아이의 삶에서 매우 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의 몰입을 존중하고, 자율성과 주체성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엄마인 나 : 선택적 연대형 포용 기질


나는 신뢰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에너지를 얻는다.

갈등이나 복잡한 관계는 피곤하게 느껴지고, 그런 상황에선 휴식과 현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린다. 무언가를 배우는 걸 좋아하고, 늘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지만, 깊이 있게 한 우물을 파는 스타일은 아니다. 늘 다양한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나의 성향을 남편이 버거워할 때가 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모두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다.


많은 걸 하고 싶고, 잘하고 싶어 하는 딸.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은 아빠.

한 가지에 몰입하는 아들.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기질 검사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딸의 에너지를 따라가기 힘든 아빠의 고충을, 나는 이제야 조금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빠의 감정과 부담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건 선택된 연대자인 나의 몫이다.


이 알래스카 시골 섬에서, 우리는 서로의 기질을 날마다 경험하며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도와가며,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열정 가득한 딸 덕분에 우리 가족은 늘 새로운 도전과 활기를 경험하고, 몰입형 아들 덕분에 깊이 있는 집중의 순간도 누릴 수 있다.

서로 다르기에 더 배울 수 있고, 서로 다르기에 더 사랑할 수 있다.

이렇게 각자의 기질 덕분에 우리는 이곳에서 더욱 깊이 있는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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