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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도행전 그리고 알래스카

by voyager 은애


우리 가족이 알래스카 시골섬으로 이사오기 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은 전라남도 여수였다.

경상도 부산, 충청도 청주, 경기도 분당, 전라남도 여수를 거쳐 온 삶의 여정이다.

여수로 가게 된 이유는 남편이 MTI(Missionary Training Institute)에서 1년간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여수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집에서 조금만 가면 멋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노을은 얼마나 예쁜지...

게다가 전라도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가!!

한 번도 여수에 살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내가 계획하지 않았어도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흘러간다.


여수에서 알래스카로 와서 정말 비슷하다고 느꼈던 것중에 하나가 바로, 바다... 그리고 부둣가에 배, 보트를언제든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수 주변에는 많은 섬들이 있었는데, 이곳에도 내가 사는 섬 주변에 많은 섬들이 있다.


<낙도행전>


박정욱 원장님의 낙도행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낙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는 일을 하고 계신 분이다.

여수에 살 때 근처 섬에 배를 타고 다녀왔던 적이 있다.정기 여객선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섬에 사시는 분이 개인 자가용처럼 몰고 다니는 작은 배였다. 정기여객선은 다니지 않는 작은 섬이었다.

섬이 주는 특별한 공기가 있다. 잔잔함, 고요함,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삶의 혹독함, 어르신들, 풍성한 식탁, 고즈넉한 풍경들, 그들만의 유대감이다.

낙도행전을 읽으니 마치 내가 그 섬에 함께 간 것처럼 그 분위기들이 느껴졌다.


저자는...


고래처럼 생긴 비견도

장보고의 군마를 사육한 고마도

깨끗하고 하얀 순백의 섬, 백일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게 한 금일도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얼굴을 한 생일도

게 모양을 닮은 넙도

호리병 모양의 소안도

띠가 많아 띠섬이라고도 불리는 대모도

슬픈 기독교 역사를 간직한 추자도

말을 닮은 마삭도와 비둘기를 닮은 구도

미술관이 있는 예술의 섬, 연홍도

이순신 장군이 식량을 얻은 득량도

은혜의 섬, 서넙도



비견도


<낙도행전> 중...


이 섬들을 다니며 만났던 사람들과 느꼈던 것을 책에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힘들지만 지금도 여전히 낙도에 갈 수 있는 이유는...

급성 대장 출혈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 후 다시 인생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했던 저자의 고백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시 주어진 삶,
내가 사는 것이 아닌,
내 안의 그리스도가 사시는 삶,

세상에 쓸려가는 것이 아닌,
세상을 밝히고 어루만지는 삶.

단 하루도 헛되지 않도록
매일을 성실하고
아름다운 은혜의 시간으로 채우며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삶

나에게 주신 은사를 나누는 삶
소외된 자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섬기고 돕는 에제르의 삶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 삶
이러한 삶으로 주님이 나를 초대하셨다.

매일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아마도 인생은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브런치 <알래스카를 맛보다> 매거진에 "50살에 나의 모습은"...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voyager2024/14


<50살의 나의 모습은>



그때 내가 꾸게 된 새로운 꿈에 관해 말했는데 <낙도행전>은 다시금 그 꿈을 되새기게 하는 책이었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도 없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많은 섬에서 혹독한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안아주고 위로해 주고 소망을 불어넣어주고 싶은 것이 작다면 작은, 크다면 큰 꿈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것이 또 하나의 소망이다.





리빌라기기도 섬(내가 사는 곳이다.)


에드미럴티


치차고프


프린스 오브 웨일즈


쿠아우
에번스


세브리


슈악(Shuyak)


Grindall


운가
폭스
에널래스카


Amchitka(암치트카)


베러노프


아다크


쉠야


세인트 매튜




알래스카에 있는 섬들을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기에 구글을 참조하여 사진을 올려보았다. 언젠가는 내가 직접 찍은 사진들로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데 이런 꿈을 가졌다고 해서 내가 굉장히 용감하다거나 모험심이 강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천성적으로 나는 안정을 추구하는 안정형이다. 그러하기에 내가 이런 도전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내 생각일 수가 없다.

알래스카에 있는 섬들 중에서는 경비행기나 소형배로만 갈 수 있는 곳들이 종종 있다.


케이크(Kake)라는 섬에서 16년 넘게 살고 있는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알래스카 원주민 종족중에 클링깃부족들이 사는 곳이다.

이름이 케이크여서 얼마나 기억하기가 쉬운지^^ 케이크를 가려면 주노라는 알래스카 행정 수도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거나 배로 가는 방법이 있는데, 배도 매일 있는 것이 아니다. 1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경비행기로 가면 2~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알래스카의 혹독한 날씨는 우리에게 늘 도전이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곳이기에 경비행기를 타고 케이크 섬으로 이동하던 의사와 간호사가 경비행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 두려움이 몰려온다.




2023년 12월, 알래스카에서 제일 큰 도시인 앵커리지를 방문했다. 내가 사는 섬, 리빌라기기도(캐치캔)에서 비행기로 5시간이 걸린다. 이유는 직항이 없고 가는 곳곳마다 섬에 들리기 때문이다. 앵커리지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 그 전날부터 강풍주의보가 핸드폰에서 계속 울렸다.


앵커리지-주노-피더스버그-랭글-캐치캔 코스인데, 주노까지는 괜찮았지만 주노에서 피더스버그로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하늘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겁이 많아서 놀이기구조차 타지 않는데 내릴 수도 없고,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다음 도착 섬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애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부탁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비행기 안,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을 감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름 평안한 표정이었다. 이것 또한 놀랄 일이었다.

결국 피더스버그에 착륙했을 때 승무원에게 "이 상황에서 비행기가 캐치캔까지 갈 수 있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승무원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기장은 베테랑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살짝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강풍은 사그라들 생각조차 없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롤러 코스트를 타면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일단 회개기도부터 시작해서, 알래스카 이 무시무시한 바다 위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유언장을 좀 더 수정했어야 하는데... 아이들은 더 이상 못 보는 것인가... 내가 없으면 남편은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엄청난 비바람을 뚫고 드디어 캐치캔 공항에 착륙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다 박수를 쳤다. 이건 뭐지? 처음 겪는 이 분위기!

승무원 말이 맞았다. 기장은 베테랑이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정말 감사하다고 당신은 정말 베테랑이라고 인사하고선 공항 밖으로 나왔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 어디를 이동할 때마다 어쩌면 생사를 건 도전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내 안에 붙여진 작은 불씨가 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알래스카 지도를 마음에 품고 책상 위에 붙여놓은 경비행기 사진을 보며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비록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두려움이 나의 꿈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꿈꾸는 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미래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2025년 1월 1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맞이한다.


알래스카 캐치캔에서~

To be cou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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