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나를 이루는 것들 | 단어 에세이

by 최소소
나는 내가 가재 같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탈피를 하지 않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그런 가재였다.


<'탈피'의 사전적 의미>

1.낡은 습관이나 양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감.
2.동물 파충류나 곤충류 따위가 성장함에 따라 허물이나 표피(表皮)를 벗음.


가재는 탈피를 해야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껍질을 벗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가재는 몸이 점점 자라면서 딱딱한 껍질이 몸에 꽉 끼는 불편함을 경험한다. 그러한 불편함이 생기려면, 우선 껍질을 꽉 채울 만큼 충분히 성장해야 하고,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탈피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탈피가 낡은 것을 벗고, 새것을 입는 것처럼 가재의 탈피와도 비슷하다.


알고 보면 인생도 여러 번의 탈피를 견디는 과정일지 모른다. 탈피과정에서 불편함은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다. 불편함을 피하고자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편함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채 성장도 하기 전에 무리하게 탈피부터 해버리면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가재든 사람이든 탈피를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성장하고 나서야, 진정한 탈피가 가능해진다. 만약 지금의 상태가 불편하다면 그건 탈피를 향해 부지런히 나를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집에 키우던 꽃게가 얼마 전에 탈피를 했다.

탈피 후, 벗어놓은 그 껍질모양과 꽃게의 모습이 일치했다. 어찌나 꼼꼼하게 껍질을 잘 벗어두었는지 어딘가 깨지거나 망가지지도 않아
마치 외출했다가 돌아와 옷을 허물처럼 그대로 벗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희한한 것은 탈피를 한 몸체가 눈에 띄게 커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전과 별로 변한 게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탈피를 했다는 것은 이전보다 좀 더 성장했기 때문이겠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사람도 눈에 띄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몇 번째 탈피를 하고 있는 걸까. 세대별로 탈피를 하는 것이라면
10대, 20대를 지나 30대의 끝 무렵,
나는 세 번째 탈피를 준비 중이겠지.
만약 1년에 한 번씩 탈피를 하는 것이라면 나는 아마 탈피하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탈피의 횟수가 다른 것이라면 아직 충분한 탈피를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단 생각도 든다. 충분히 자라지 못했거나 탈피를 할 용기조차 없어서 여전히 꽉 낀 껍질 속에 속절없이
갇혀 사는 것이다.


껍질을 벗는 것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새 껍질이 단단히 자리 잡기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사람도 양질의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고 그것들이 적절한 양분이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을 보호해 줄 단단한 껍질로 변화하는 것이다. 뭐, 운 좋게 껍질을 무사히 벗었다고 해도 그 이후는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편한 감정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반가워해야 하는 일이다. 왜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각자가 겪어내야 하는 탈피의 시기와 그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지금 내 성장이 더디게 느껴진다면,
내 껍질은 남들보다 좀 더 큰 것일 수도 있다. 혹여 너무 두꺼워 벗기가 힘들다면, 그만큼 나를 둘러싼 껍질이 단단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탈피가 힘겹고, 새로운 껍질이 자리 잡기까지 힘겨울수록 자랑스럽게 여겨보자.

순리대로 당연함을 깨닫는 순간이 오 듯, 불편함과 기다림의 시간을 가재와 꽃게처럼 겸허히
받아들이는 날들이 내게도 오기를 바란다.

자랑스러움이 당연하게 다가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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