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것들 | 단어 에세이
‘틈만 나면’, ‘빈틈투성이’ 같은 말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온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틈은 곧 결핍이고, 미처 채우지 못한 흠집이며, 나약함의 증거라고.
<'틈'의 사전적 의미>
1.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2. 모여 있는 사람의 속.
3.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내 삶을 돌아보면, 1월부터 4월까지가 늘 그런
‘틈’ 같은 시기였다. 나는 그 시기를 '동굴'이라고 표현해 본다.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몸은 잦은 병에 시달리며, 마음도 좀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에 비해 5월부터 12월까지는 무언가에 쫓기듯 앞으로 나아가곤 했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움츠러드는 것이다.
그 절정은 늘 1월이었다. 그렇게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의 나의 시간은 방향을 잃은 듯,
멈춰진 듯 그대로 흩어졌다.
주변에선 열심히 지내서 번아웃 온 것 일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나를 달래주었고, 나 스스로도 겨울잠 잔다고 생각하지 뭐- 하며 우스갯소리로 넘긴 적도 있다. 그러나 몸은 그때마다 무기력한 나를 기억해 냈다. 어김없이 동굴로 끌고 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나는 왜 이리도 나약한가,
왜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가.
몸뚱이 하나조차 내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 마음들로
그 시간을 어지럽게 채웠다.
최근에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 시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늘 그런 편인 것 같다고 지인에게 스치듯 고민을 호소한 적이 있다. 지인은 아주 담백하게 대답했다.
"자기는 그냥 일조량이 부족하면 힘든 사람인 거 아닐까? 북유럽 사람들처럼 말이야."
그 한마디가 '너는 문제없어, 햇빛이 좀 부족했을 뿐이야.'하고 나를 어루만졌다.
*계절성 우울증(우울감)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특히 해가 짧아지는 가을·겨울에 나타남.
주요 증상은 무기력하고 기운이 없음.
집중이 잘 안 됨.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함.
평소보다 많이 먹거나(특히 탄수화물) 많이 잠.
검색을 해보니 내가 겪던 그 증상들과 비슷했다.
햇빛을 적게 받으면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겨서 겪는 현상이라고.
그냥 충분한 햇빛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나를 미워한 시간들이 왠지 억울하고 허탈해졌다.
나는 그저 나를 지키기 위한 틈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에게 틈은 더 이상 단순한 약점이나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때로는 새싹이 움트기 위한 균열이 필요하니까.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도 결국 작은 틈이 있기에 거기서 풀 한 포기가 자라난다. 겨울의 땅도 갈라지고 무너져야 그 사이로 봄의 생명이 올라온다.
틈은 허약함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스며드는 자리였다. 그저 그 틈에 필요한 건 충분한 햇빛이 잘 들어와 주는 것.
나의 동굴은 결핍이나 무력한 공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기야말로 내가 더 단단해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마음이 움츠러든 만큼 다시 펴기 위한 힘을 모으는 시기였다. 나는 그 틈을 통해 빛을 맞이하고, 다시 달려갈 힘을 얻는 것이다.
틈은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쉼표 같다.
멈춤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며, 공백은 곧 새로운 문장을 위한 숨 고르기가 아닐까. 틈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숨이 막히지만, 틈을 인정하고 품어낼 때, 싹이 트고 비로소 꽃이 핀다.
나는 다시 다가올 1월이 두렵지 않다. 동굴에 갇힐까 두려워하기보다 충분한 햇빛을 찾아낼 것이기에. 그렇게 나를 미워하지 않고 기다려 보려 한다. 그 틈 사이로 또다시 빛이 스며들고, 봄의 기운이 올라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