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나를 이루는 것들 | 단어 에세이

by 최소소
추억은 삶의 무늬와도 같다.


각자 삶의 추억이 다르고 같은 사건도 다르게 기억되듯 저마다의 무늬가 존재한다.


<'추억'의 사전적 의미>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또는 그런 생각이나 일.


지나간 일은 결국 추억이 된다.우리는 그 순간을 지나 보아야 어떤 형태의 무늬가 남는지 알게 되고

또 추억하게 된다.


아이가 6살 때, 코로나 후유증으로 급성폐렴에 걸려 일주일 입원한 적이 있다.


그 흔한 감기 한번 앓은 적 없이 자라준 아이였기에 일주일이란 시간은 아이와 내 삶에 상흔을 오래도록 남겼다.

아픈 현실도 버거운데 아이는 매일 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썼고, 나는 스스로 3일이란 선을 내 마음에 새겼다. 3일만 버티자. 3일이면 집에 갈 수 있어. 3일째 병실생활을 이어가던 중,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 퇴원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심장이 덜컹했다.

나에게 주어진 에너지는 여기까지인데 어쩌지.


식판의 밥을 깨작거리며 먹는 아이를 보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짜증 섞인 화를 3일 만에 처음으로 내던지고서야 엉엉 울고 싶어졌다. 눈물이 차오를 힘도 없어 그저 창밖을 텅 빈 눈으로 응시했다.

그렇게 4일의 시간을 꾸역꾸역 더 채웠다.


나는 아직도 병실에서 바라보던 네모난 창이, 그 바깥 풍경이 예뻤던 것들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얗고 차갑고 무겁게 가라앉은 병실과는 대비되게 바깥은 단풍으로 알록달록했고, 하교하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래서 더 슬펐다.

창문 하나로 그곳과 우리의 삶이 분리된 것만 같아서. 영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어릴 때 엄마랑 병원에서 둘이 잔 거 너무 행복했어!"

며칠 전 학원을 마친 아이를 태워 집에 돌아오는 길, 아이가 뒷좌석에서 불쑥 건넨 말이었다.

행복했다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정확히는 대견했다. 그렇게 말해준 아이와 그 시간을 견뎌준 우리가.


아이는 모두 행복한 추억이라고 했다.

엄마와 단둘이 잔 것도, 마주 보며 병원 밥을 먹은 것도, 용감하게 링거를 맞고 채혈을 해낸 것도, 매일 편의점에서 장난감을 산 것도, 자다가 엄마를 깨우면 자기를 안아 화장실에 데려다준 것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픈 아이가 빨리 기운을 차려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했다.눈 마주치면 애써 웃으며, 온갖 달콤한 말로 아이를 달랬다. 그 틈에 바늘을 찔렀고, 보상으로 매일같이 편의점에 들러 돈 만원은 우습게 쏟아부었다. 열도 수시로 치솟아 30분에 한 번씩 선잠에서 깨 간호사보다 더 자주 열체크를 했다. 설상가상 항생제 부작용으로 약도 4번이나 바꿨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고, 밤새 가려워해서 얼음찜질도 해야 했다. 그러다 잠깐 잠에 들라치면 아이가 쉬 마렵다고 나를 불러 깨웠다. 그 시간들을 힘겹게 버텨낸 3년 전의 우리를, 아이가 행복하게 추억하고 있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것을 남길 지
당시엔 알 수 없다.


그저 순간의 감정으로만 짐작할 뿐. 제 아무리 슬프다한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삶에 꼭 필요했던 한 조각일 수 있고, 눈물 나게 기뻤다한들 잠시 스쳐가는 아주 작은 조각일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조각들은 삶에 상처를 입히고

훈장과도 같은 무늬를 새긴다. 때론 연하고 진하게 어떤 형태로든 자리 잡는다. 그 무늬들이 켜켜이 쌓여 나무의 나이테처럼 삶을 이루고 단단하게 지탱한다.


우리는 삶의 필요한 순간마다 추억을 꺼내 볼 것이다. 너는 이렇게 단단해졌다고 그러니

앞으로 더 나아가도 된다고 스스로 확인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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