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루는 | 단어 드로잉 에세이

by 최소소
모든 것에는 결이 있다.


<'결'의 사전적 정의>

1. 나무,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

2.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3. 못마땅한 것을 참지 못하고 성을 내거나 왈칵 행동하는 성미.


사람을 만나보면 금세 느껴지는 게 있다. 말이 잘 통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눈빛만으로도 이 사람과 나는 비슷한 결이라는 것을 직감하곤 한다. 어떤 결은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손끝으로 나무를 쓸어내릴 때 매끄럽게 이어지는 부분처럼,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관계가 흘러간다. 대화의 속도, 침묵의 성질, 웃음이 터지는 지점까지 묘하게 닮아 있다.

반대로 처음엔 괜찮아 보였는데 가까워질수록 미세하게 어긋나는 관계도 있다. 표면은 매끈한 듯 보이지만, 내부 결이 뒤틀려 있어 결국엔 뾰족한 것이 솟아올라 손끝에 끝내 걸리고야 만다. 말이 비껴가고 작은 농담이 오해로 이어지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묘하게 어색한 기류가 남는다. 노력하면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분명히 닿지 않는 틈이 생긴다.

사실 결이 맞지 않는다는 건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나무마다 자란 방향이 다르듯 사람마다 만들어온 시간과 마음의 결이 다를 뿐이다. 억지로 맞추려 하면 더 큰 균열이 날지도 모르기에 서로를 깎아내어 모양을 맞추기보다는 각자의 결을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 더 단단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사람이 가진 고유한 결을 꽤나 중점적으로 두고 인연을 맺어왔다. 그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 마음만은 쉽게 내주지 않는 편이다. 표면적으로는 이미 너무 친한 관계일지라도 마음 한편으론 여전히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내 마음을 보여주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만큼 그 인연을 오래 유지하려는 편이기도 하다. 곁을 잘 내주지 않는 나의 이런 방식은 꽤 오래 고수되고 있는데 이건 그만큼 내가 사람과 마음에 진심이기 때문일지도. 사람을 잃고 싶지도, 상처받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들이 모여 내 마음에 작은 옹벽을 하나 만들었다. 누구라도 그 벽을 넘어 들어오려면, 우선 우리의 결이 잘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통과의례인 것처럼 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을 적당히 지킨 대신 내 사람이 될 뻔했던, 어쩌면 좋았을 사람들을 많이 흘려보냈다. 그중에는 차츰 결이 맞았을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결을 쌓기까지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듯 사람과의 인연의 결도 충분한 시간이 걸릴 것임을 간과한 것이다.
결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관계를 ‘관리’하는 느낌이 아니라, 이미 잘 다듬어진 두 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 난다. 이런 관계는 힘을 들이지 않아도 견고하게 지탱된다.
삶이라는 것이 때로는 약간의 힘이 필요한 순간도 찾아온다. 그런 때에는 그 반대 방향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반대의 결을 가진 사람이 나에게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닌 걸 최근에 제법 느끼고 있다.

분명 나와는 결이 맞지 않음에도 내 안의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적어도 나는 그 사람처럼 굴지는 말아야지' 하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그것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자극해 성장하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살다 보면 결이 맞는 사람은 오래도록 곁에 남고, 결이 어긋나는 사람은 어느 순간 서서히 거리가 생기지만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 흐름이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각자 가진 결이 스스로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과 긴장감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나의 결 또한 언젠가 변할 것을 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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