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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Jul 20. 2023

부활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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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나는 완벽주의와 예민함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온 신경이 곤두선 칼날 위를 걷는 기분으로 지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며 숙제하는 삶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때 학업을 마치고 제때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세상의 시간과는 점점 멀어져 있는 삶이었다. 생에 대한 거듭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타의에 의한 경주에서 자의적인 낙오를 맛보며 잦은 실패와 좌절은 끝없는 자기 숙고를 쏟아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에 대한 고찰은 이내 기도가 되었다. 기도가 끝나면 나의 마음은 평온한 상태로 전환됐다. 그렇게 사회적 관습과 왜곡된 인식들에 조급하게 밀려났던 나의 인식에서 잠시 ’휴식 시간‘의 자유를 얻는다.


 어느새 사춘기 시절 철없이 모든 것을 열고 흡수하던 지금과는 다른 맹랑하던 그 시기를 떠올렸다. 그 시절의 나는 걱정 없이 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걱정의 눈은 질끈 감고 즐거움의 눈만 뜨고 살았어. 친구를 가려 사귀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귀띔에도 없이 나쁜 친구 좋은 친구 이상한 친구와 어울리며 밤거리를 떠돌았거든.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좋은 짓 나쁜 짓 세상 모든 짓들을 시도해 보고 느껴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모든 세상이 나를 향해 도는 것 같았고 내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을 때 세상은 언제나 짜릿한 작은 성공들을 주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지성이 정점에 달하는 시기에 나는 내 인생 모든 것이 나로 인해 이루었다는 자만이 움트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 지니의 램프라도 가진 냥 간절한 소망과 수고스러운 노력 따위도 필요 없었다. 그저 마음만 품으면 자연스레 만족할 결과는 따라왔다. 독수리 날개 치듯 자신감으로 큰 대가 없이 작은 산을 가뿐히 넘을 때마다 으스대며 온전히 내 힘 덕분이라 믿었다. 나의 타고난 젊음과 지성과 아름다움 덕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새 마주한 더 큰 산맥 앞에서 나는 내가 넘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의심이 들자 그때부터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오르기에 끝이 없고 돌아가도 만리길인 큰 산 앞에서 아등바등하는 나 자신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스스로를 자책했다. 대체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냐고 다그치며 이렇게 허망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에 좌절하고 말았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을 돌고 돌아 나는 결국 죽음의 목전에서 그 큰 산 앞에 두 손 두 발 들고 항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헛된 노력을 내려놓았을 때  거기 작디작게 움츠러든 내가 있었다. 폭풍우가 잠시 지나고 잠잠해진 후에야 그를 향해 손을 뻗을 수 있었다. 그는 마치 건드리면 터질듯한 오래 전의 사춘기 시절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희망의 싹 하나를 움켜쥐고 온 세상을 비웃던 그때와는 달랐다.


 나의 품에는 시든 꽃을 들고 지금을 버틸 간절한 기도만 있었다. 시선을 올려 위를 보았을 때 그제야 나는 누가 나에게 손을 뻗었는지 알았다. 그 큰 산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지난날 그의 모든 시간 모든 사건 모든 선택들을 아는 더 큰 자신이었다. 그는 넘을 이유도 넘어야 할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내 안도에 시간이 찾아왔고 나의 귓전에 평온한 속삭임이 귀에 울렸다. ”네가 간신히 들고 있는 그 시든 꽃은 꽃이 아니라 날개란다. 열매를 맺기 위한 어머니의 자궁처럼 말이야 “ 그렇게 나는 죽음도 절망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알았다. “자유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시간이야 자랑스럽게 너를 안고 영원의 빛으로 인도할게” 그 큰 산은 손을 뻗어 나를 다시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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