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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테가베네핏 Jun 13. 2024

셰프로 가는 여정

이제부터 7첩 반상이다

맛없는 건 두 번 다시 찾지 않는 깐깐한 내 입맛은 식도락 아버지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언제든지 계량은 물론이겠거니와 내가 원하기만 하면 집안의 요리사로 등극할 거라고. 그런데 완전한 착오였다. 요리라는 것은 해봐야 늘게 되는 거고 재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런 부분은 완전히 결여되었었다.


맛없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굉장히 기분나빠하지도 않고 밍숭밍숭한 음식도 대충 넘기고 심심한 음식을 즐기는 편이었던 거다.


아! 물론 우리 집의 대들보 엄마의 역할도 컸다고 생각한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필요가 없다고 하시기도 하고 나중에 다 하게 돼~ 라면서 하나뿐인 딸을 공주대접 해주셨다. 덕분에 똥손이 된 거라고 괜히 부모님 탓을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를 다양한 곳에 변명의 거리로 사용하고 있다. (불효자식)


이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아서 쿠킹클래스가 한창 유행일 때 호기롭게 등록을 딱 했는데 정말 나와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파워 E 성향의 나의 요리선생님은 나를 굉장히 궁금해했던 기억이 나고 아쉬웠던 점은 그때의 내가 새로운 관계를 원하지 않아서 그렇지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되게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고맙고 오가는 마음이 참 좋았던 클래스와 선생님이었다.


나의 요리 선생님은 나의 수준을 보고 이 과정의 목표를 설정하셨는데 “뭐라도 먹고살기”라는 정도의 테마였다. 왜냐면 칼질, 가위질 심지어 비닐 뜯기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게 왜 문제인지 몰랐는데 좀 빠릿빠릿 야무져야 보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주나 보다. 하긴 음식이기 때문에 불안하고 어딘가 떨어뜨리고 깨뜨리는 거보다는 맛깔스러운 손놀림이 입맛도 돌게 하는 거 같다.


처음 도전한 과제는 된장찌개 만들기였는데 재료는 선생님이 준비하고 나는 깨끗하고 단정하게 준비된 몸만 가져가면 된다.


감자를 씻고, 야채를 씻고, 다진 마늘이 아닌 생 마늘을 칼의 한쪽면을 이용해서 다진 마늘처럼 만들어보고 재밌었다. 재료를 목차별로 투여하고 끓이고 기다리고 틈틈이 치우기까지 하면 금세 완성이 되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무언가 슥슥 되는 느낌


대부분의 요리클래스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리를 완성하고 나서 그 요리를 맛보고 간다고 했다. 하긴 버릴 순 없으니까 도움 받아 만든 내돈내산 요리로 저녁까지 해결한다니 약간의 떨림과 설렘이 함께 주는 순간이었다. 리액션을 어떻게 나 자신에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갸우뚱했었다.


된장찌개와 더불어 보너스로 된장크림볶음밥까지 만들었고 아 이렇게 핫플메뉴를? 굉장히 잘 어울리고 된장이라는 클래식한 메뉴에 크림볶음밥이라는 단어자체가 이미 나는 저기 프랑스 어디 식당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정도였다.

만들어진 음식과 선생님과의 수업 후기를 식사와 함께 대면으로 주고받으면서 그 후로 여러 번 다른 음식을 만들어봤는데 신기한 것은 뭐라도 먹고 살기의메뉴의 소스는 들어가는 재료와 순서가 비슷했다. 이것만 알아도 한 달을 먹고살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에 빠질정도 였다.


한 번에 3시간 정도 수업을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만들어진 음식을 먹어보는 시간이었고 아까 그쌩 감자가 쌩 마늘과 된장이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인 건지 음식 잘하는 분들이 들으면 피싯 웃겠지만 나에겐 새로운 도전과제를 클리어했고 언제든지 다시 열어서 만들어볼 수 있는 레시피북이 생겼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클래스는 길지 않게 끝을 냈지만 기쁨을 얻었고 도전하는 내가 아름답고 기특하고 우리 인간의 나눔에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진짜 살만한 세상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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