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보기보다 아이의 눈물에 약하다.
특히 서러움에 북받쳐 울음을 참으려고 입 삐죽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 울음을 볼 때면 마음이 쓰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어제는 첫째 아이의 눈물과 둘째의 웃음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어제 둘째는 턱의 봉합실을 제거했다.
어린이집에서 나와서부터 병원에 안 갈 거라고 엉엉 우는 아이를차에 억지로 태워 병원에 도착했다
첫째는 동생을 어른다며 ‘실밥 다 뽑으면 형아가 다이소가서 장난감 사줄게’ 라며 공수표를 날렸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던 둘째는 진료 침대에 눕히자마자 발버둥을 쳐 아빠에게는 다리를
엄마에게는 머리를 붙잡힌 채 실밥 뽑힘을 당했다.
생각보다 실이 가늘고 살에 묻혀있어 그걸 들어서 자르느라 아이가 아파 아파 소리를 좀 질렀지만
그래도 수월하게 마무리했다.
씩씩하게 봉합사를 제거한 둘째는 ‘다이소가서 장난감사자’ 라며 첫째의 심장을 벌렁 이게 만들었다.
짐짓 모른 척하던 첫째는 그래도 자기가 한 약속은 지켜야겠던지 장난감 가게가 있는 바로 아래층
버튼을 눌렀다.
'자식... 그래도 모르는 척 안 하고 장난감 사러가네' 라며 마음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둘째가 형 속도 모르고 10만 원이 넘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
첫째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그건 너무 비싸!! 이건 어때? 우와 이것 봐~!' 하며 둘째 눈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형의 조바심을 느꼈는지 그래도 둘째가 적당한 가격의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장난감 가게에서 동생에게 장난감을 사준 (비록 내 카드로 결제했지만) 아니... 정확하게는 그 마음이 기특해 아이 아빠가 첫째에게 장난감을 사주기로 하고 훈훈하게 하루가 마무리되는듯했다.
나간 김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꼬치로 저녁배를 채우고 집에 돌아와 일이 터졌다.
낮에 만들어 놓았던 첫째의 매일일과목록을 보여주며 학교 다녀와서 먼저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줬다.
대부분은 잘해왔던 것들이지만 아이가 최근 들어 영상에 더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아 자기 조절능력을 키우자는 차원에서 목록표를 만든 거라 아이도 거부감 없이 흔쾌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나씩 체크했는데 미쳐 시간조절을 하지 못해 9시까지 일과를 다 완료하지 못했다.
9시 반이면 자야 할 시간이라 아빠로부터 지금 샤워해도 게임은 못한다는 말에 첫째는 당혹함과 서러움으로 입을 삐죽이며 닭똥 같든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효… 이를 어쩌나…9시까지 이은 걸 설명을 못했네….
첫째는 내 품에 안겨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연우야… 열심히 다 했는데 안된다고 하니까 속상한 거지? 엄마도 그 마음 알아…‘라는 순간 억눌렸던
설움이 폭발한다.
그걸 본 아이 아빠가 한소리 하려고 하길래 내가 먼저 잽싸게 선수를 쳤다.
’속상한 마음은 알지만 이건 시간을 잘 활용하라고 하는 거라 운다고 게임을 시켜 줄순 없어 ‘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설명해 본다.
그래도 쉬이 설움이 가라앉지 않나 보다.
’ 그래 알아… 울고 싶으면 더 울어도 돼. 내 계획대로 내 생각대로 안 되는 건 너무 화나는 일이야‘
그래도 눈물이 뚝뚝이라 ‘울음뚝!’이라고 말하고 게임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굴의 의지로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들을 삼켰다.
‘이건 연우에게도 필요한 자조능력이지만, 이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도 인내심을 키우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해. 아이도 눈물로 충분히 감정을 표현하고 설움을 비워내야 엄마아빠의 훈육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머릿속으로 계속 되새기며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아이의 눈물이 잦아들 때쯤 ‘우리 샤워하면서 얘기할까?’ 제안했더니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욕실로 향했다.
아이의 눈물바람의 시간이 한 시간은 지났을 것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시계를 보니 고작 10여분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샤워를 하며 연우는 기분이 풀렸는지 예전처럼 웃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으며 서러웠던 감정을 떨 추려는 아이를 보며
‘아!! 이렇게 감정을 비워내고 추스를 시간을 주면 아이는 금방 회복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뭘 그런 걸로 울고 그래!‘,‘그러니까 빨리빨리 했어야지’, ‘그만 울라고 했다~?‘ 비난하고 탓하고 겁박하는 단어로 울음을 그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고 설명해 주니 감정의 찌꺼기 없이 웃으며 스스로를 다독 일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다 같이 자리에 누워 ‘지원이 오늘 너무 씩씩했어 고마워’,‘연우야 오늘 동생한테 장난감도 사주고, 서러웠을 텐데 엄마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마워 ‘ 자기 전 인사를 하니둘째는 어깨를 으쓱하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첫째는 부끄러운 듯 머쓱한 미소 지으며 안긴다.
그렇게 모두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를 했다.
아이 아빠는 내가 아이들을 너무 오냐오냐 한다고 남자아이들은 그러면 연약해지고 학교 다니면서 맞고 다닌다고 불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난 무서운 표정, 고압적인 목소리와 태도가 아이를 단단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남의 것도 인정할 있는 것처럼 내 마음을 알고 위로받아야 스스로를 안정시킬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한 안정감과 믿음이 밑바탕이 되어야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곱디고운 흙이 비에 젖고 마르고 또 그 위에 고운 흙이 덮이고 또 비에 젖고 그렇게 수많은 세월을 겪은 후에 단단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고운 마음들이 눈물에 젖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힘든 일이 있어도 잠시 울다 다시 일어나고, 다른 사람의 눈물에 공감하고 위로해 주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함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