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by 글로

켄 로치 감독, 크리스 히친 주연 (2019년)


팍팍하고 쉴 틈 없이 조여오는 삶이라도 가장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분투하는 리키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돈을 번다는 것, 누구를 부양한다는 것,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나를 버리고 남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아프지만 아프다 말할 수 없고 개인사정 따위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하는 냉혹하고 차가운 일이다.


∙리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애비: 그러게.....


택배노동자의 삶을 선택하는 리키. 아내 애비는 방문요양보호사다. 고객에게 가기 위해 차가 꼭 필요하다. 리키는 돈을 융통할 곳이 없어 아내가 타던 차를 팔아 밴을 산다. 쉽지 않은 택배배달. 차도 막히고 배달 간 건물 엘리베이터는 빈번히 고장 나 있다. 창고에 넣어두라고 해서 가보면 커다란 개가 으르렁거리고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고객은 물건이나 빨리 달라며 화를 낸다.




아내 애비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여러 집의 독거인들을 돌본다. 아침 챙겨 먹이고 씻기며 부모 돌보듯 한다.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하소연하고 자신이 한심하고 수치스럽다고 얘기하는 환자들의 푸념을 잘 받아준다.


아들은 아빠처럼 살기 싫다며 불만을 토하고 학교에 빠지고 그래피티를 하며 부모의 속을 썩인다. 월세로 사는 것이 싫어 내 집 마련을 위해 일주일에 6일, 하루 14시간을 일해야 하는 리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동료가 빈 페트병을 건네며 오줌통이라고 할 때 소중함을 몰랐다.


아들은 아빠에게 계속 반항하고 학교에서 정학을 맞는다. 화난 리키는 아들의 핸드폰을 뺏고, 아들은 집을 나가버린다. 밤중에 몰래 들어와 가족 사진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X라 쓰고 나간다. 그 와중에 밴의 열쇠가 없어진다. 집으로 들어온 아들을 의심하며 싸움은 커지고 결국 리키는 아들의 얼굴을 때리고 만다. ‘폭력만은 절대 안된다’는 아내의 말을 순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갱무리들이 리키를 때리고 택배물건을 빼앗는다. 리키를 때려눕히고 오줌을 얼굴에 붓는다. 눈이 퉁퉁 붓고 부상 당하는 것으로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일하러 간다는 아빠를 가족들이 차를 막아서며 말려보지만 리키는 한쪽 눈만 보이는 위급한 상황인데도 일터로 향한다. 운전하며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느 나라나 보통 사람들의 삶은 비슷하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고달프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누가 신나서 매일 꼭두새벽 버스를 타고 일터로 갈 것이며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지하철에 몸을 싣겠는가? 3시간 넘게 걸리는 통근을 감내하며, 아침도 굶어가며 일터에 늦지 않으려 노력한다. 스치기만 하는 월급에, 오르는 물가에 아직 많이 남은 할부에, 왜 이렇게 아픈 곳은 많은지... 조퇴라도 하고 싶지만 쌓인 서류를 보면 차라리 죽더라도 처리하는 게 마음 편하다.




일과 삶은 냉혹하다. 공무원이었던 나를 안정적인 직장인이라고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나는 대낮부터 카페에 앉아 브런치 먹으며 커피 마시는 여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날씨 좋은 날 여행가고 싶었고 평일 날 여유 있게 전시회도 가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발길을 돌려 어느 한적한 산책길에서 나무와 꽃만 실컷 보며 걷고 싶었다.


지금은 퇴임해서 독서모임도 하고 카페에 갈 시간도 넘쳐난다. 모임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서 육아만 하던 어느 경력단절녀의 얘기다. 너무 일이 하고 싶고 자기의 경력이 멈추는 것이 죽기보다 싫고 남편한테 돈 받아 쓰는 것이 치욕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얘기한다. 알 수 없었던 남들의 상황과 마음 속 얘기를 들으니 몇 십년 묵은 억울함이 해소되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하게 사는 줄 알았다.




경찰서에 아들을 데리러 온 아빠를 앉혀두고 경찰은 리키의 아들에게 일장연설을 한다. 너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지 정하라고. 계속 이렇게 살 건지, 아니면 마음을 고쳐먹고 제대로 살 건지. 적어도 너를 데리러 오는 가족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행복한 줄 알라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행복은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함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가진 것에는 눈길이 가지 않는지. 경찰서에서 돌아온 아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일을 하면 안 하는 사람이 부럽고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이 부럽다. 그렇다고 일이라는 것이 쉬고 싶다고 마냥 쉴 수도 없고, 하고 싶다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 거대한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나를 맞추는 수밖에 없다. ‘삶은 비루하다’라고 말하는 대신 차라리 ‘노동은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동시에 필요한 일을 했다. 종합예술이 아니고 종합노동이라고 해야 하나?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은 없었고 월급날 반짝, 연휴 때 잠깐 행복했다. 1년은 쉬는 날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올해의 계획은 올해가 무사히 지나가는 거였다.


그렇게 30년을 일하고 얻은 건 남들이 모르는 병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일로 쳐주지 않는 세상이다. 그럼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혼자 살지 왜 결혼해서 부양가족을 만들어 스스로 힘든 궁지에 밀어 넣었어? 자문해본다. 세상이 그리 간단한가? 혼자 살기는 외롭고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리키와 애비처럼. 인간은 얼마나 순수한가? 기름을 들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다니.


따뜻함을 찾아 일을 시작했지만 따뜻함을 담을 그릇이 깨져버리면 이제 그 따뜻함은 어디에 담아야하나?

우리를 비추는 아픈 거울 같은 영화, ‘미안해요.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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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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