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를 발행하고 ‘헤엄출판사’를 운영하는 작가의 일상이 소설이 되어 나오니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모를 정도지만 어림짐작으로 ‘아마 이건 사실일거야, 이건 소설적인 내용이지’ 하고 감을 잡는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부모가 아니라 모부라 불리우는 작가의 엄마와 아빠가 중심인물이다. 복희와 웅이. 실제 모부의 이름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딸은 사장, 모부는 직원이다. 집과 사무실이 혼재되어있고 사무실에 오는 이들에게 엄마인 직원이 밥을 차려준다. 작가의 친구는 연인과 헤어지든, 집안에 수리할 것이 생기든 슬아 아빠를 찾아온다. 정리하자면 이들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부이다.
모부는 서점에서 들어온 도서 주문을 확인하고 발주를 넣는다. 재고도 파악하고 파본도 회수하고 독자 문의 메일에 답장도 쓰고 장부도 적는다.
집안은 슬아 중심의 가녀장 체재로 재배치되었다. 오늘날 복희와 웅이는 슬아 밑에서 일한다.
셋이 운영하는 출판사에는 복지 차원으로 여러 가지 명목의 특별휴가비가 지급된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복희가 엄마(슬아의 외할머니)에게 가서 함께 해오는 된장과 김치다. 된장 담글 때와 김장할 때 복희는 특별 휴가비를 받는다. 복희 어머니의 이름은 ‘존자’이다. 특이하고 귀한 이름이다.
복희(슬아모)는 여러 가지로 매력을 발산한다. 복희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의 일환으로 믹스커피를 즐기는데 특별한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다.
커피믹스 한 봉/ 끓인 물 반 잔/ 위스키 반 잔
한편 복희의 살림에 대한 피로도가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주부로서 깊은 공감에 울컥했다.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역시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책은 한번 쓰면 몇천 부 찍을 수 있잖아”
“밥은 책처럼 복사가 안 돼. 매번 다 차려야지. 아점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저녁 차릴 시간이야.”
‘그렇지만 복희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다만 자신의 수고가 바람처럼 날아가는 것 같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식사는 언제나 휘리릭 끝나버리고 만다. 하루 이틀만 지나도 오늘 차린 밥상 같은 건 슬아나 웅이나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뭘 굳이 기억하고 앉아 있나. 삶은 앞으로만 흐르고 끼니때는 금방 다가올 텐데.’
밥을 차려놓고 재촉하는 엄마와 글을 쓰느라 재빨리 식탁에 앉지 못하는 사장 슬아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미안해하기보다는 재촉하는 엄마를 신경증적인 환자로 몰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주부의 애환이 느껴진다. 살림 한번 해본 적 없는 딸들은 ‘먹어준다. 식탁에 앉아준다’는 거만한 공주 행세를 할 때도 있다. 이때 작가의 한 문장으로 자식들의 존재가 정리된다.
‘딸내미의 자아란 받고 또 받으면서도 투덜대는 자식의 자아다.’
슬아는 매우 진보적이고 생각의 틀을 깨는 것 같지만 가족의 원형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빠,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고 그들과 조화롭게 공존한다. 그녀의 실제 생활이 그렇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대목들이 곳곳에서 목격된다.
슬아는 필요한 형태의 책꽂이 설계도를 미리 그려놓았다. 웅이에게 보여주며 괜찮은 설계인지를 묻는다. 그가 구상하는 사람이라면 웅이는 구현하는 사람이다.
이런 시대에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활동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때때로 복희는 슬아에 관한 악플을 읽는다. 그럼 꼭 자기 일처럼 동공이 흔들리고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작가의 가족에게는 흔한 일이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악플을 해석하는 쿨한 슬아의 반응은 명쾌하다.
“엄마, 오해는 필연이야. 괜찮아.”
오해는 필연이란 말에 가슴이 막히기도, 한편 가슴이 뚫리기도 한다. 아! 오해는 피할 수 없는 거구나. 100% 내 마음을 전달할 수도 타인의 마음을 알 수도 없다. 실타래를 풀어보겠다고 무리하게 노력하다가 실타래를 잘라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슬아는 글쓰기 수업도 한다. 글쓰기 수업 도중 한 아이가 “선생님, 월화수목금토일은 왜 있어요?”라고 묻자 처음 들은 질문에 당황하고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나중에 대답하고 싶어진 말은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다시 잘해보기 위해서라고. 다시 잘해볼 기회를 주려고 월요일이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라고. 그러느라 복희는 창틀을 닦고, 웅이는 바닥을 밀고, 슬아는 썼던 글을 고치고 또 새 글을 쓴다고.’
음양오행, 우주의 신비, 진리까지 깨우쳐준다. 별 생각 없이 맞이한 월요일. 끝이라고 생각한 일요일, 그러나 반복되는 7일의 비밀을 슬아 작가는 단칼에 정리해준다. 그래, 끊임없는 기회가 내 앞에 있다. 월요일만 되면 다시 주어지는 기회. 도전은 시작되고 실패는 계속 되지만 다음 주가 있으니 그때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을 수도 없이 가지며 세월이 흘러간다. 제대로 된 ‘월화수목금토일’을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