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을 낳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by 글로

클레어 키건, 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2024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 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석탄, 장작을 판매하는 펄롱. 아내, 딸 다섯과 시내에서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 케잌을 만들면서도 지금 여기가 아니라 내일 누구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지 주문받은 물건을 언제 어떻게 배달할지 등 다음날 일에 골몰한다.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거나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은 몸은 집에 있지만 머릿속은 직장, 사무실에 아니면 일하는 현장에 있기 마련이다.


사무실과 집이라는 공간이 혼재되어 집에서도 끊임없이 머리로는 일을 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 나로서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사무실에서는 끊임없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지는 마음.


펄롱은 생각한다. ‘여자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예측하고, 밤에 꿈으로 꾸고, 속마음을 읽었다. 펄롱은 결혼해서 같이 살던 중 아일린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아일린의 기개와 시퍼런 직감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발달된 부분이 다르다. 물론 일반화에는 무리가 있다. 대부분 그런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더 예민하고 영민하여 타인의 깊은 마음 속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넓게 본다. 앞 뒤를 재보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서 생각하는 안목이 뛰어나다. 그래서 함께 생활해야 하나보다.




펄롱의 고민은 끝이 없다. 하루하루 만족하며 평범한 생활을 꾸려가는 것 만으로는 자신의 삶에 무엇인가가 결핍되어있다고 느낀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 또한 평범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지 않을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이룬대로, 싱글은 싱글대로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세월만 흘려 보내고 앞으로 크게 발전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자괴감도 들고 자신의 인생이 의미 없어 보여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더더구나 펄롱은 만만찮은 가족사를 가지고 있다. 엄마가 16세에 임신을 했고 펄롱을 낳았으며 미시즈 윌슨이 돌봐주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어있을까?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성장해서 출생증명서 사본을 발부 받아보니 아버지 난에는 ‘미상’이라고 적혀있다.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알려 줄만한 사람은 없다. 유일하다시피 한 미시즈 윌슨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해있다.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물어볼 상황도 아니다. 미래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야기는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여자 아이가 갇혀있는 것을 발견하지만 원장수녀의 거짓말에 속는다. 강가까지만 데려다 달라는 수녀원 아이들, 안에서 잠겨있는 문, 뭔가 수상하다.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든다.

괴로워하는 펄롱. 아이가 석탄광에 갇힌 것을 알고도 미사를 보러 가는 자신이 위선자처럼 느껴진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다시 용기를 내어 갔을 때 지난 번의 그 아이는 묻는다. “제 아이는 어디 있나요? 누가 젖을 주나요?” 이제 펄롱은 지체하지 않는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데리고 밖으로 나올 때 당당했고 기뻤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는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펄롱의 아비투스를 이루는 데 있어 미시즈 윌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자신의 엄마도 미시즈 윌슨이 구해주지 않았다면 수녀원에서의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자신 또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친절이 생명을 구한 것이다. 미시즈 윌슨과 펄롱 그리고 수녀원의 학대받는 아이는 한 연장선 상에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다.


전반부에 깔려있던 펄롱의 삶에 대한 지루함과 자기 성찰은 타인에 대한 따뜻한 용기와 사랑으로 해소된다. 자기만을 위한 반복적인 안온한 삶은 펄롱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는 펄롱의 의식 속에는 미시즈 윌슨의 사랑이 깔려있다. 어릴 때 각인된 그녀의 친절과 돌봄과 격려가 어른이 된 펄롱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아일랜드에서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정부의 협조하에 수녀원이 운영하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모티브로 한다. 수많은 노동 착취가 있었고 사망한 아기가 수백 명에 이른다. 수녀원은 문을 닫았고 그 이야기는 이제야 세상 속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지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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