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d'
‘아무르’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아무르’에서 조르주가 아내를 질식시킨 이후 연결되는 이야기. 프랑스 칼레 지역의 부르주아 ‘로랑’가문
열 세 살 에브는 엄마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입원하자 아빠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할아버지, 고모, 고모의 아들, 그리고 아빠의 새 부인과 함께. 전학 후 첫 등교하는 날 학교에 온 아빠, 갑자기 에브가 운다. 아빠는 자신이 아빠 역할이 서툴다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딸은 괜찮다고 응수한다.
조르주가 잠옷을 입은 채로 밤에 차를 몰고 나가 나무를 들이받는다. 다리를 다치고 휠체어에 앉는 신세가 된다. 고모의 아들 피에르는 자신이 사업을 이어받을 능력이 없다고 자책한다. 조르주는 85세 생일에 손님을 초대해 에브가 한 식구 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 조르주는 이발사를 집으로 불러들여 머리 손질을 받으며 얘기한다.
에브는 어느 날 다량의 약을 먹는다. 아빠는 왜 그랬냐고 추궁하며 묻는다. 에브는 아빠가 다른 여자랑 메시지 주고받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성인들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뚤린 성적 내용이다.
엄마와 헤어지고 아나이스와 결혼해 아기를 낳은 아빠가 또 다른 여자와 수위 높은 성적 대화를 하는 것에 우울해진 에브는 13살의 나이에 자살을 시도한다. 아빠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할아버지의 서재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에브. 할아버지 조르주는 묻는다.
“왜 약을 먹었니?”
“모르겠어요”
고모는 약혼식을 하고 손님을 초대해 바닷가 앞 식당에서 피로연을 한다. 호화롭기 이를 데 없다. 모두 뒤를 돌아보는 포스터의 장면이 여기에서 나온다. 갑자기 피에르가 나타나 주목을 끈다. 흑인 친구 대여섯 명을 데리고 와 소개하며 이목을 끌고 사람들은 수런거린다. 엄마의 약혼자가 말리지만 피에르는 그를 심하게 밀친다. 엄마가 나서서 사태를 가라앉히고 사과한다. 그사이 조르주는 이 상황에 피로함을 느껴 에브에게 자신을 밖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경사진 길에서 앞으로 휠체어를 밀어 바다 앞으로 간다. 조르주는 에브에게 더 밀어달라고, 너는 이제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한다. 뒤로 물러나는 에브, 바다속으로 휠체어를 밀고 나가는 조르주.
휠체어에서 손을 떼고 저만치서 에브는 할아버지가 거의 잠긴 상황을 핸드폰으로 찍는다.
때마침 조르주의 아들과 딸이 상황을 파악하고 놀라 뛰어온다. “아빠!”
자막이 올라간다.
어린 에브가 본 세상. 엄마와 헤어지고 새 여자를 만나 아기까지 낳았는데 또 다른 여자와 비뚤어진 사랑을 나누는 아빠. 약물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한 엄마.
약자에 가려진 약자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이혼은 어느 날 부모 한 명이 증발하는 일이고, 남은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고도의 정신노동이 부과되는 삶이며, ‘너라도 잘 커야’하는 장기 채무가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말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생생한 아픔을 겪는 한 존재가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애들은 몰라도 되는 어른 문제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살 시도를 하는 할아버지. 약혼식 파티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나이든 사촌. 온통 백인들만 앉아 있는 파티장에 나타난 흑인들. 어린아이와 노인의 자살 시도. 유능한 사업가 엄마 안과 무능한 아들 피에르. 가난한 자와 부유한 집안.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에서 잔인함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평화롭게 호수 위를 떠다니는 것 같지만 물 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백조처럼 불안은 평온해 보이는 모습 속에 내재되어 있다. 왜 죽고 싶은지, 왜 자꾸 바람을 피는지, 왜 약물중독인지 말하지 않는다.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궁금하게 만든다.
부유한 이들의 내면과 생활, 부조리와 불안한 상태를 가감없이 보여주니 섬뜩하다. 잘 차려진 식탁 위에서 아들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는 엄마, 치매 걸린 듯 손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물어보는 할아버지. 누구 하나 소리를 지르거나 격하게 싸움을 벌이지 않지만 누구 하나 행복한 사람은 없다.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이상하고도 끔찍한 성도착증적 대화를 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딸은 어떻게 해도 자신이 따뜻한 엄마, 아빠를 가질 수 없다는 것에 좌절한 걸까? 조용히 엄마의 약을 먹고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아이의 절망은 자로 재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조르주는 계속되는 자살 시도로 늘어나는 수명의 불행한 미래를 보여준다.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어지지 않는 인간의 암울한 현실을 말해주고 싶은 것일까? 자연은 그렇게 조용히 잔인하다. 품어줄 때도 있지만 넘지 못할 벽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어린 에브의 눈물이 처연하다. 아이가 자신의 내면을 자세히 표현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집, 낯선 학교에서 받았을 정신적 충격과 외로움이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에 의해 고통받는 어린 영혼의 방황이 못내 안타깝다.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생에 미련이 없는 한 노인의 자살 시도 앞에서는 ‘많은 돈이 아무런 쓸모가 없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어른들과 미디어가 망가뜨린 아이가 우리 옆에 서 있다. ‘에브는 어떻게 길러질까?’ 물 속으로 잠겨 가는 할아버지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조르주는 어떻게 여생을 살아갈까?’ 궁금해진다. 행복한 가정은 그렇게 이루기 힘든 것일까?
* 출처: 다가오는 말들, 은유, 어크로스, 2019
* 이미지출처: D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