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자아를 형상화해서 보여준다. 할머니의 자아가 세 명의 남자가 되어 돌아다닌다. 내 마음 속 여러 가지 갈래의 생각을 각각 얘기한다. 세 명의 나는 악기도 연주하며 나를 위로해준다. 아침에 나타나는 나는 속삭인다.
‘더 자! 일어나봤자 좋은 일도 없잖아. 어차피 어제랑 똑같은걸’
여기서 나는 히다카. 태고의 동물들과 지구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어릴 때 외롭고 눈이 안 좋은 할머니를 놀린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히다카 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난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 눈에 보인다.
히다카는 ‘나만 불안한 거 아니죠?’라고 할머니에게 묻는다.
‘나만 이런 게 아니야, 어떻게든 될거야’ 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혼자 쓸쓸히 집에 있으면서 노을 진 하늘이나 바라보고 있다’라며 자신의 처지를 처량히 여기는 날도 있다.
히다카는 젊은 시절 자신이 새 시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맞선을 본 후 결혼 성사 직전에 도망친다. 식당에서 일하며 친구와 기거하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할거라고 다짐한다. 젊은 날의 이름은 모모코다.
어느 날, 허리에 파스를 4장 붙인 후 도시락을 싸고 등산화를 신는다.
등산하며 자신과 대화한다.
“아무 말이나 해봐. 말 안 하면 입 다물고 있는 게 버릇이 된다고”
“말할 필요가 없으니 상관없지 않아?”
“뭐든지 좋아, 게을러지지 말자.”
“그건 허리가 아파서 그런 거지.”
“남편은 일찍 죽고 자식들은 소원하고 이렇게 쓸쓸한 가을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나는 어떤 열매를 맺은 걸까? 아무것도 없어. 난 잘 살아온 걸까?
혼자 살아보고 싶었어. 남편이 죽었을 때 조금 기뻤지. 그것이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나의 해석이야.”
얼마나 남편이 보고 싶고 일찍 죽은 것이 안타까우면 이런 해석을 할까? 왜 일찍 저 세상으로 가 나를 외롭게 하냐고 원망할 법도 한데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양 얘기한다. 자신이 남편이 죽길 바란 것처럼. 남편이 있을 때는 자유롭지 않았고 얽매여 있었지만 남편이 죽고 마치 자신의 진짜 세계를 살 수 있게 된 사람처럼.
히다카씨는 영화 ‘괴물’에서 교장선생님 역할을 했던 ‘다나카 유코’가 맡아 낯이 익었다. 제일 막막해보이는 순간은 눈이 많이 온 날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혼자 앉아 TV를 보는 장면이다. 만날 사람도 없고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고립되고 외로운 상태다. 누구도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런 날이 지속되면 얼마나 무료하고 슬플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먼 미래에 혼자 남아 TV만 보아야 하는 날이 닥쳐온다면 그날들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오지 않은 현실을 상상하며 한숨을 짓게 된다.
히다카씨는 도서관과 병원 두 군데 외에 외출하는 일이 별로 없다. 도서관 사서는 히다카씨에게 여러 가지 동아리 모임을 추천하지만 항상 거절한다. 왜 거절하는지 알 수 없다. 아직은 혼자여도 괜찮은 걸까? 영화 말미에서 히다카는 도서관에 갔을 때 사서가 탁구를 제안하자 허락해버리고 만다. 더 이상 혼자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걸까?
‘노인의 삶은 이럴 거야’라고 막연히 생각해오던 나에게 생생한 노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준비할 수 있는 마음도 덤으로 생겼다. 속수무책으로 맞이하게 되는 질병과 외로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인생을 정리하고 완성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괴로움 속에서 노년을 한탄과 탄식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고,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하며 보내는 사람도 있다.
우선 건강을 챙겨야겠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둘째로 마음을 돌봐야겠다. 아무도 원망하고 기다리지 않고 감정처리는 셀프로 한다.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놓아야 마음이 편안하다.
셋째 타인과의 유대를 잘 관리해야한다. 사람 만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혼자 있는 것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대화를 이어나가야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고 대부분의 대화는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생명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위급한 상황에서 연락할 사람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원만한 관계를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할까? 싫으면 안 만나는 것이 상책이라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던 입장에서 선회해 왠만하면 보고 사는 것으로 태도를 바꿔야한다.
영화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초조하게 만들다니 놀랍다. 앞으로 나에게도 다가올 수 있는 미래의 청사진이라고 생각하니 장면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눈에 와서 박혔다. 능청스런 다나카 유코의 연기가 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