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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 Dec 15. 2024

설명할 수 없는 사랑【아사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카라타 에리카 주연 (2019년)     


아사코가 ‘고쵸 시게오 사진전’에서 그림을 둘러본다. 나오다가 우연히 비현실적으로 바쿠를 만난다. 앞에 걸어가던 바쿠가 돌아서서 아사코에게 딥키스를 한 것이다. 그렇게 둘이 사귀게 된다. 바쿠는 빵을 사러 갔다가 아무 연락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날 돌아와서는 미안하다고 한다. 그랬던 바쿠는 결국 신발을 사러 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2년이 흐르고 아사코는 마루코 료헤이를 만난다. 카페에서 일하는 아사코는 근처 사무실에 회의 때마다 커피를 가져다준다. 스쳐 지나던 료헤이와 아사코. 사진전에 친구 때문에 늦어 못 들어가는 아사코 대신 료헤이가 애원해 들어가게 된다. 전시회가 끝나고 셋은 전시회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료헤이가 친구 쿠시하시를 데리고 아사코와 마야의 집에 초대받아간다. 마야의 연기를 영상으로 본 쿠시하시는 ‘칭찬받기 위해 하는 어설픈 연기’라고 신랄한 비판을 한다. 체홉의 작품은 그렇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며. 잠자코 듣고 있던 아사코는 친구편을 든다. 친구를 존경한다고, 마야는 열심히 하고 있다며 이번에는 쿠시하시를 민망하게 만든다.     


어색한 순간이 흐르지만 분위기가 전환되어 넷은 친한 친구가 된다. 료헤이가 사랑 고백을 하자 아사코는 갑자기 결별을 선언하고 카페도 그만둔다. 그러나 둘은 5년 후에 같이 살게 된다.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 아사코는 겁이 났던 걸까? 바쿠처럼 료헤이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까 염려되었을 것이다. 료헤이는 바쿠를 많이 닮았다. 아니 똑같이 생겼다. 한 명의 배우가 1인 2역을 했다. 료헤이를 볼 때마다 바쿠가 생각났을 것이다.      




연기자, 모델이 된 바쿠.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료헤이. 바쿠가 어느 날 갑자기 아사코 앞에 나타나 데리러 왔다고 한다. 아사코는 미련 없이 바쿠를 따라 나선다. 미련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순간 바쿠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겼을 것이다. 그만큼 바쿠와의 사랑이 강렬했으므로.    

  

제대로 사랑해보지도 못한 사람이 떠나버렸으니 원망 대신 아쉬움과 아련함이 많이 남았으리라. 료헤이가 있는 앞에서 손을 잡고 바쿠를 따라간다. 둘은 어디론가 향하고 바쿠는 홋카이도에 비어있는 부모님 댁에 가자고 한다.     


한참을 달리다 잠시 쉬어가려 세운 차 안에서 아사코는 미안하다고 말한다. 더 갈 수 없다고, 료헤이에게 돌아가겠다고 한다. 당황한 기색도 별로 없는 바쿠는 쿨하게 ‘안녕!’하며 돌아간다. 힘들게 집으로 다시 온 아사코.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하는 아사코와 바쿠를 보며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젊은 날의 사랑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충실하다고 설명하면 설득력이 있을까? 중간에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게 되는 료헤이. 


료헤이에게 사과하지만 돌아가라고 말한다.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바쿠를 닮아 아사코가 자기를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바쿠가 나타나고 둘이 눈앞에서 사라지니 배신감이 컸을 것이다.      

“넌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행동을 했어. 난 항상 이런 일이 생길까 봐 불안했어. 널 평생 믿지 못할 거야.” 료헤이는 절규한다.    

 

그러나 애원하는 아사코를 마지못해 집으로 다시 받아들인다. 둘은 발코니에서 강을 바라보며 말한다. 료헤이는 강을 보며 ‘더러운 강’이라 말하고 아사코는 ‘아름다워’라고 한다.     

꼭 강에 대한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심리상태를 드러낸 것일까? 료헤이는 왜 강이 더럽게 느껴질까? 바쿠를 사랑하지만 다시 자신을 선택해 돌아온 아사코의 마음이 더럽다고 한 것은 아닐까? 아사코는 바쿠와 료헤이 사이에서 방황하지만 자신의 둘을 향한 마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강에 빗대어 고백하는 둘의 마음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아사코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표현한다고 해도 강하지 않게 간결하게 전달한다. 그런 아사코는 바쿠가 아무 말 없이 사라졌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립던 사람이 눈앞에 너무나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료헤이를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쿠에 대한 미련이 남아 갑자기 나타난 바쿠를 친구들과 료헤이가 보는 앞에서 따라갔을 것이다. 아사코를 비난할 수 있을까? 바쿠를 비난할 수 있을까? 바쿠의 행동은 정상적이지 않다.   

    



최악의 피해자는 료헤이로 보이지만 아사코도 아무 잘못이 없다. 내면의 소리에 충실했을 뿐이다. 두려움에 료헤이와의 만남을 거부했던 아사코. 잘살고 있는데 마음속에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바쿠가 나타났으니 마음의 소리를 거부하지 못했던 거다. 아사코는 누구를 사랑하는 것일까? 바쿠? 료헤이? 둘 다? 사람의 기호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새로운 사랑을 만나도 비슷한 사람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성 없는 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뒤흔드는 건 가식 없는 그들의 행동 때문일까?      


마음대로 할 수 없이 현실에 묶여 일상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사랑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중대한 선택에 따라오는 결과는 많은 차이를 가져오기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한다. 그 부작용으로 따라오는 괴로움을 버텨낼 자신이 없으니 어떨 때는 아무 선택도 하지 못하고 하릴없이 시간만 보낸다. 

     

이 사람을 만나면 나의 삶이 바뀔까? 이 사람을 만나면 즐거울까? 이 사람과 결혼생활을 하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이 사람의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건 어떤 걸까? 이 사람과 오랜 세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현실 속 질문들은 리스크가 크기에 오늘도 잠 못 드는 밤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쉽게 하는 사랑, 쉽지 않은 이별. 우리의 선택은 아사코처럼 순간적이고 강렬해질 수 있을까?  


이미지출처: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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