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어려움 [나의 올드 오크]

Old Oak

by 글로

-켄로치 감독, 데이브 터너 주연 (2024년)

독일은 10년 동안 난민 927만여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만약 우리 동네에 대거로 난민들이 살러 온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스치는 외국인들은 많이 보았지만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다. 국가차원에서 많은 난민이 들어오고 그 사람들을 오래도록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면 결국 세금에서 충당이 되어질테니 나 개인에게도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천지가 개벽해서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야 한다면 어떨까? 나라의 반 이상이 무너지고 부서져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조롱하고 윽박지르며 ‘너희 나라로 가라’고 협박한다면? 무엇으로 그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받아줄 나라는 있을까?


제3자의 입장에서 강자와 약자의 대립, 갈등을 지켜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약자가 나라면 생각이 달라지고 심각해진다. 극적인 상황이 아니라도 실재 생활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역을 바꿔 새 곳으로 가면 반기는 사람과 마뜩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당하는 사람도 괴롭지만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이 더 괴로운 법이다. 그에게도 최소한의 윤리의식은 있으니.


‘나의 올드오크’는 집단이 어떻게 연대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프게 보여주는 영화다. 같은 나라 안에서의 갈등과 다른 나라 사람들과의 연합은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T.J. 발렌타인: 평생 잘 되려고 애썼지만 결국 이 모양이야. 모두 자기 기만이었어.

증오, 거짓, 부패, 배신만 가득해.

∙동네주민: 이 동네에만 이런 사람들을 살게 한다고. 런던부촌에는 절대 이민자를 넣지 않아. 젠장!


2016년 잉글랜드 북부 한 폐광촌 마을, 시리아 이민자들이 마을에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리는 그들을 야유하는 한 무리, 그리고 도와주는 또 다른 사람들. 기부 물품을 이민자 가정에 나눠 준다.


오래된 펍 ‘올드오크’


펍의 사장 T.J.는 이민자를 돕는 편에 서 있다. 반대파는 펍에 와서 죽치고 앉아 자기네 먹을 것까지 다 뺏어 먹는다며 이민자들을 맹비난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펍 한쪽에 버려둔 방을 치우고 공청회라도 열자고 제안하지만 T.J.는 반대한다. 반대파는 앙심을 품고 배관 조인트를 느슨하게 해 결국 방에서 물이 쏟아지게 한다.

시리아에서 이민 온 ‘야라’는 엄마, 동생과 함께 지내며 동네 사진을 찍는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카메라가 인연이 되어 T.J.와 가까워진다. 펍 안쪽 방을 함께 청소하고 온 동네 주민을 불러놓고 화면을 띄워 슬라이드로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주민들과 마을 풍경을 찍은 것이다. 사진을 보며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미용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주민들


동네주민2: 우리 딸은 집밖에 나오지를 않아. 꽤 됐어. 미용실에 상품권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어. 돈으로 주면 어디에 쓸지 모르니...


동네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품어주자는 취지로 펍에서 음식을 제공한다. 오랜만에 마을에는 활기찬 기운이 번진다. 그러던 중 배관이 터지고 전기도 누전되어 대공사가 필요하고 T.J.에게는 그럴 돈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T.J.는 위의 절망적인 푸념을 늘어놓은 것이다. 갑자기 야라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비보를 듣는다. 시리아 정권의 친위민병대에 끌려갔다가 감옥에서 죽은 것이다. 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마을 사람들은 줄을 이어 야라의 집문을 두드린다. 각자 준비해온 꽃과 물건을 야라의 집 앞에 놓아두고 가족을 위로한다.


시리아 말로 고마워는 ‘슈크란’이다.


어느 조직에나 중뿔난 사람은 있다. 청맹과니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무리 속에는 다행히 선한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자들에 기대어 정착하고 살 수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꼭 선한 자가 이기는 것도 아닌 듯 하다. 끝은 언제 결판이 나는 것인지 모르니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남의 아픔을 기꺼이 끌어안는 자인가? 모른 척 하는 중립선인가? 아니면 약자를 괴롭히는 편인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서 있는 땅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난 언제나 강자야’라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오만이다.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


역지사지는 어려운 단어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면 사람들은 사나워진다.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이라는 걸 이 영화를 보며 알게 되었다. 야라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민자지만 동네 사람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멋지게 렌즈에 담아 내놓은 야라의 정성이 통해서일까? 주민들은 시리아 이민자들을 마을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한 발짝을 내민다.


내 것이 없다면 나눌 여유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연다면 함께 더 튼튼해지고 웃을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이미지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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