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2

by 글로


이제 재수 없으면 120살을 산다고 한다. 인간은 외로우니 결혼을 한다. 아이도 낳는다. 처음에 호감을 느끼고 사귀며 사랑하게 되어 하는 결혼이지만 곧 알게 된다. 같이 지낸다는 것은 도 닦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배우자는 밉지만 인간의 몸 속에 흐르는 호르몬은 자식을 보호하도록 흐른다. 아무리 관계가 좋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 그렇게 살다 둘은 병이 든다. 고민한다. 아이들도 크고 더 이상 엄마,아빠를 돈이 필요할 때 외에는 찾지 않을 때 생각한다.


굳이 함께 있어야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이혼은 하고 싶지 않다. 대안은 뭘까? 별거? 별거가 이혼된다는 말이 있으니 별거도 하면 안 될 거 같다. 별거와 졸혼은 엄연히 다르다. 별거는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는 관계개선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는 거다. 최악으로 치달으면 이혼이라는 절벽을 만난다. 졸혼은 배우자가 싫어서가 아니다. 동그라미 안에 구멍을 만든다. 그곳으로 바람이 드나든다. 동그라미는 부패하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 부부가 졸혼을 하며 결혼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인간은 지구상에 아니 우주상에 단 한명도 없다. 더군다나 남성과 여성이 만나 모든 것을 공유해야 하는 상황에서 니 맘이 내 맘같고 모든 것이 알아서 척척 굴러가는 아름다눈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아내가 늘 남편 생각을 하며 남편은 아내가 보고싶어 미칠 것 같은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 아름다운 꽃은 바람도 맞고 비도 맞으며 시들고 꺽인다. 찬란한 빛으로 남고 싶지만 어느 새 뿌리만 땅에 붙어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다음에 다시 필 날을 기다리며 뽑힐 때까지 굳건히 버텨본다.


맞지 않는다고 바로 헤어지는 것이 옳을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거리를 두어 숨쉬게 해준다면? 바꾸려 하지 않고 인정하고 소통한다면 어떨까? 집보다는 각자의 공간과 작업실을 두고 오가며 때로는 친구처럼 혹은 연인처럼 지낸다면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유지 될 수 있다. 불편한 점이 해소되고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처럼 지낸다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음의 기본적인 외로움은 해소되고 언제든 불러도 되는 편하면서 부담을 주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면 금상첨화다.

나이 들수록 마음 한 구석이 휑하니 구멍 뚫린 듯 허전하다. 오랜 세월 가족으로 살았던 배우자만큼 의지가 되는 사람은 없다. 관계를 무 자르듯이 자른다고 속이 후련한 건 아니다. 시원섭섭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감정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 갑자기 추억이 미화되고 아쉬움도 남을 수 있다.

50이 넘어가고 60을 바라보는 나이, 이성이 아닌 친구 같은 존재로 지내면 좋겠다. 여자는 혼자 가기 무서운 곳을 갈 때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는 섬세한 작업이나 감정이 필요할 때 여자를 찾게 된다. 서로 보완할 점이 많다. 서로의 배우자가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막 사귀기 시작한 이성에게 어떻게 그 자리를 채워달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해야할 역할을 그 누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급할 때 배우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아플 때, 큰일을 당했을 때, 공유해야 할 사건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생각나지 않는다. 헤어지면 아쉽다. 겨우 그것 하나 때문에 갈라서 버리면 그럼으로 해서 생기는 문제가 더 많을 것이다. 절대로 용납 못할 것 같은 치명적인 잘못이 아니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분리해보는 방법도 좋다. 서로의 공간을 인정하고 O.K.해주며 내 것도 요구한다. 둘의 또 다른 공간이 생긴다. 그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차도 마시며 좋은 얘기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처럼 세상 사는 얘기, 아픈 얘기,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 얘기, 친구 얘기 등을 하다보면 늘 보며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만나면 웃음이 많아지고 다독여주며 돈독한 관계가 된다. 서로의 집을 오간다고 하자. 일주일에 겨우 하루, 한 달에 며칠 못 참아주겠는가? 나머지는 자유다. 내 맘대로 살아본다. 나이 들어 못할 게 무어란 말인가? 나에게는 남편이 있다. 나에게는 아내가 있다. 보이지 않는 튼튼한 끈으로 묶여있으니 외롭지도 않다. 가족 행사, 큰일 치루기는 당연히 함께 한다. 만나고 싶을 때 만난다. 경제 사정은 집집마다 다르니 조율해서 운영하면 될 일이다. 아마도 각자 관리하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을 거 같지만 이것만큼 쉬운 것도 없을 거 같다.

중요한 포인트는 서로의 마음이다. 가족 공동체로서, 아이들의 부모로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할 수 있다. 동시에 자유롭고 싶다는 감정이 있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진저리치며 사사건건 트집 잡고 간섭하며 옥죄느니 분리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편리하게 생각한다면 주말부부를 연상해보자. 어떤 이유에서든 떨어져 있다가 한 달에 한번,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부부들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졸혼은 그렇게 멀리 있는 개념이 아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가 문제랄까? 둘 사이에 마음의 중정 하나 두어 그곳에서 만나는 거다. 바람이 잘 통하고 꽃도 피는 공간을 둘이서 가꿔간다면 200년을 산들 얼마나 애틋할까? 오히려 그리울 거다. 오늘 밤 번개가 치는데 잘 자고 있나? 장마가 심한데 어디 곰팡이 핀 곳은 없나? 이쯤 전화가 한번 와야 하는데 왜 조용하지? 이번에 만나면 내가 지난번 친구들과 만났던 맛있는 집에 가자고 해볼까?

세상만사 쉬운일은 없다. 졸혼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이혼하자는 줄 알고 쌍심지 켜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이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졸혼했다고 선언하고 다니지 않는다. 이혼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한집에 잘 살던 부부가 갑자기 따로 산다고 하면 의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남들은 우리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아이들도 크면 저 살기 바빠 엄마 아빠가 치고받고 싸워 병원에 실려 가지 않는 한 오지 않을 것이다. 남들의 시선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와 평생 말동무 해주고 사소한 일상에 연락을 주고받을 단 한 명. 그 배우자와의 오랜 관계유지가 필요한 것이다.

모두 다 졸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관계형태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수명에 길어지는 결혼생활. 졸혼도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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