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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Same Moon 09화

【다시 없을 에피소드】

호주 멜번 여행기

by 글로

인천에서 가는 멜번 직항은 없다. 시드니까지 가서 2시간 텀을 두고 멜번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 타야 한다. 시드니터미널 1에서 내려 터미널 3으로 갔다. 핸드폰을 찾았다. ‘어머!’ 핸드폰이 아무리 뒤져도 내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 아이라도 잃어버린 듯 세상이 푹 꺼진다. 핸드폰이 없으면 요즘 세상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는 한국도 아니고 호주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고객서비스센터에 가서 상황을 얘기하고 터미널1로 다시 가야 한다고 했다. 세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세 명의 반응은 모두 달랐다. 급박한 상황을 얘기하니 전화를 해보란다. 딸은 유심만 사 갔으니 전화는 안된다. 두 번째 직원은 터미널 1에 전화를 해주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단다. 그리고는 무심히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우리는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남자 직원에게 다시 상황을 얘기했다.

이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더 자세히 설명한 후 콴타스 짐 서비스 센터(baggage clame service center)로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콴타스는 호주 국적기 항공사다. 그러면서 멜번 가는 비행기 시간을 2시간이나 뒤로 미뤄주었다. 바로 항공권을 바꿔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는 터미널 3에서 다시 터미널 1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짐 서비스센터에 갔다.



가보니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연락 전화번호만 있다. 우리는 전화를 할 수 없으니 문을 두드렸다. 남자 직원이 문을 두드려 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한참을 지나 어떤 여직원이 그 문이 아니라 뒤에서 나타났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지금은 휴대폰이 들어온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이용한 항공편명을 알려주니 그 비행기는 일본으로 떠났단다. 분실 후 24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 콴타스 카운터로 가서 다시 물어보았다. 3층에 있는 분실물센터로 가보라고 한다. 3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리 찾아도 콴타스 분실물 센터를 찾을 수 없었다. 허망하게 휴대폰을 분실한 나는 어쩔 도리가 없어 다시 터미널 3으로 돌아왔고 멜번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가 앉은 앞좌석 뒤에 매달린 검은 네트에 휴대폰을 놓고 내린 것이다. 휴대폰케이스가 검은 색이라 전혀 눈에 띄지 않았고 비행기에서 계속 눈을 감고 자거나 먹기만 했다. 딸만 믿고 휴대폰을 한 번도 안 쳐다본 나의 잘못이다. 내려서 버스 탈 때까지 휴대폰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항공권과 여권에만 신경을 썼다. 치명적인 실수는 어이없게 벌어지는 법이다.




10일 내내 엄마가 전부인 어린아이처럼 딸에게 달라붙어 다니던 나는 겨우 여행을 마치고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다시 우리는 휴대폰 찾기에 돌입했다. 혹시나 하며 콴타스 카운터로 가니 자기네가 연락을 해 놓을테니 짐 서비스 센터에 가보란다. 사무장이 나와 있을테니 물어보란다. 조금의 희망을 안고 찾아가 보았다. 사무장은 나와 있지 않았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직원이 있어 물어보고 사무장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어마어마한 속눈썹을 붙인 사무장이 우리를 맞았다. 웃음기 없는 사무적인 말투로 찾아보겠다고 했고 잠시 후 내 것이 아닌 두 개의 휴대폰을 갖고 나왔다.


포기하고 싶은데 포기가 안됐다. 이 사무장은 시드니공항 분실물 센터로 가보라고 했다. 가서 콘시어지에 문의했다. 모니터로 휴대폰의 앞 뒤 모습을 10 여개 보여주었지만 내 것은 없었다. 여차하면 비행기 시간을 놓칠 지경이라 어이없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멜번으로 갈 때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나는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아무 정신이 없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 앞에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아야하는데 쉽지 않았다. 스카이 버스를 타고 밖을 내다보는데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였다. 그렇게 기다리고 보고 싶던 멜번을 22년만에 왔는데 치명적인 실수로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어렵게 찾아간 숙소에서 우리는 제2의 난관에 부딪쳤다. 9박을 해야 하니 3박 정도는 호텔이 아닌 아파트에서 자보자고 딸이 제안했다. 나도 로컬주거지를 체험해보고 싶어 동의했으니 할 말이 없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사이트에서 이런 것까지 체크를 하지 못했다. 일요일은 2시에 사무실이 문을 닫는다. 즉 우리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키를 받지 못했다. 문제는 사무실 유리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음식배달을 온 사람을 붙잡고 매달렸다. 상황 얘기를 했고 전화를 한 번만 해달라고 했다. 그 사람은 바쁠텐데 우리를 도와주었다. 전화는 바로 연결되지 않았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직원과 연락이 되었다. 나의 여권을 찍어서 보내란다. 사진을 보냈고 키를 받는 방법을 알아냈다. 번호를 입력하니 키박스에서 우리 방 번호가 달린 키가 ‘톡!’하고 떨어졌다.

말은 간단하지만 저녁 시간, 피곤에 절여져 도착한 숙소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노숙자가 되는건가? 생각했다. 그때 긴 시간동안 아무 상관없는 우리를 도와준 사람. 물어보니 칠레출신이라고 한다. 그 선하고 고마운 사람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극구 받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제발 받아달라고 애원하며 약 3만원 가량의 호주달러를 쥐어 주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누구를 돕거나 고맙다는 말을 듣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아파트 앞에서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아마 밤을 새웠으리라. 초반에 진을 다 빼버려 여행을 어떻게 하나 걱정했지만 그런 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또 하나 추가되었다. 일본에서 딸을 잃어버린 후 약 15년만이다. 이번에는 호주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려 또 한번의 패닉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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