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행기
상해에서 숙소는 텐동루에 잡았다. 10호선과 12호선이 지나는 지하철역 부근이다.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섰는데 이상한 사람들이 접근한다. 우리가 안 산다고 ‘No!’를 말해도 계속 따라붙으며 핸드폰에서 물건을 보여준다. 짝퉁을 사라고 종용하는 것이다. 끈질기게 따라와 애를 먹었다. 다음날은 다른 입구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와이탄’으로 향했다. 와이탄은 황푸강가의 지명이다. 외국인 거류지역이었으며 동양의 월스트리트라고 할 만큼 높은 빌딩과 금융 관련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야경이 압권이라 밤이 되면 사람들이 밀려다닌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거대하고 길게 이어질 줄 몰랐다. 와이탄에서 건너다보이는 동방명주의 아름다운 자태는 넋을 놓고 계속 바라보게 만들었다. 강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오고 오가는 사람들의 흥겨움은 우리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Peace hotel’에서의 커피 한잔과 스콘은 상하이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와이탄으로 향하는 난징동루 중심에 있는 이 호텔은 양 옆으로 호텔 건물이 나뉘어져있고 영화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내부는 화려하고 고풍스럽고 고급스럽다. 1층 카페에서 즐긴 차와 디저트는 우리의 피로를 말끔히 가져갔다. 호텔에서 먹는 것은 비싸서 꺼리는 남편도 나의 매서운 눈짓 한 번에 순순히 따라 들어왔다. 커피는 왜 그렇게 달콤하고 맛있던지, 고급스럽기 그지없다.
여행 와서 해 봐야 하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소에 마음 졸이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 번쯤 해보는 것이다. 그러려고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닌가? 평소에 즐겨 입지 않던 화려한 옷, 먹어보지 못했던 다소 고가의 음식, 멍 때리고 오랜 시간 자유를 즐겨보는 것 등등 마음에 훈풍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여행이다.
우리 부부는 만난 지 3개월만에 결혼했다. 9월에 만나 10월에 프로포즈받고 12월에 결혼했다. 보통 4계절을 겪어봐야 한다지만 우리는 급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결혼해 아이 둘을 낳고 키우고 쉼 없이 달려왔다. 심각한 증상도 겪어보고 작은 질병들이 따라 붙었지만 아직 여행을 다닐 정도의 체력은 된다.
여행이 삶의 낙인 나와 한국 떠나는 걸 두려워하는 남편이 팀이 되어 여기저기 다녀본다. 올해는 치앙마이를 다녀온 이후 두 번째 가는 것이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하고 임신해 아이를 낳았으니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재미없는 부부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는 더더욱 자유는 멀어져갔다. 어디 한번 가려면 짐이 한 보따리다.
챙겨야 할 것도, 신경 쓸 것도 많다. 그래도 워낙 여행에 대한 갈망이 크니 가까운 나라를 다녀오기는 했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였다. 부부만 둘이 다니기 시작한 건 불과 2년 전부터다. 둘째 딸이 고1이 되면서부터 남편과 둘이 호젓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재미 없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여행을 떠나면 재미있는 부부가 된다. 남편은 일에 치여 산다. 그러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볼만한 시간이 없다.
미리 찾아보는 역할, 예약하는 것 등을 모두 내가 하다 보니 남편은 몸만 가는 것이지 행선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내가 가라면 가고, 먹으라면 먹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다. 내가 자연스럽게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된다. 평소에도 의견충돌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여행을 가면 더더욱 남편은 나의 의견을 따른다. 내가 가고 싶은 곳, 찾아놓은 맛집으로 간다.
그런 것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따른다. 남편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나 또한 하지 않는다. 언제나 동의를 구하고 좋아하면 실행에 옮긴다. 남편의 취향을 잘 알고 있으니 얼추 맞추어 동선을 짜면 된다.
여행은 빽빽이 무언가 들어찬 마음속에 구멍을 뚫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한 템포 느리게 쉴 수 있게 해주고 다음 스텝을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런 여행을 하기에 남편은 편안하고 재미있는 동반자다.
평화호텔에서 한참을 쉬고 숙소에 들어가니 천국이 따로 없다. 상하이는 밤이 화려한 도시다. ‘예원’도 밤에 가야 예쁜 풍경을 볼 수 있어 저녁 7시경 도착했다. 어스름한 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불빛은 예원을 환하고 아름답게 비춰준다. 여기는 중국이다. 어딜 가나 무엇이든 길고 많고 복잡하고 화려하다. 여기도 볼거리가 많다. 먹거리와 공예품, 건물, 불빛, 그것들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끝이 뾰족이 올라간 처마는 보기에 따라서는 날카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건물에 비가 들이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보니 그 필요성이 이해 되었다. 어디랄 것도 없이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면 모두 작품이다. 명나라 관료 ‘반윤단’이 아버지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20여년에 걸쳐 만든 곳이라고 하니 그 효심에 놀랄 뿐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 단독샷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를 꽉 채워 다니다 보니 3만보를 걸었다. 볼 것이 많은 상하이에 와서 지루할 틈도 없이, 자각할 여유도 없이 많이 걸었다. 쓰러지듯이 잠자리에 누웠다.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둘에게만 오롯이 의지하고 다니는 우리는 아주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삶에 찌들고 여기 저기 아파오는 몸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상하이에서 관계가 회복되었다.
앉아서 잘잘못을 따질 것 없이 여행을 떠나 새로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함께 걷다 보면 부부관계는 저절로 좋아진다. 여행 와서도 의견충돌을 보이며 자신의 취향만 고집한다면 같이 살기 힘들 것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상대방의 호불호를 잘 아니 맞춰주고 함께 하면 여행은 즐겁고 둘 모두에게 이롭다.
상하이는 뜻하지 않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와서 눈으로 보니 상상도 못할 사이즈와 화려함에 많이 놀랐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남편과 나는 어린아이들처럼 신나있었고 서로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