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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Same Moon 12화

【화려한 상해의 밤】

상하이 여행기

by 글로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되었다. 아침부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인천공항이 안개로 뒤덥혀 가시거리가 코앞뿐이다. 상하이로 떠나는 날 아침부터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돌아와 집에 있는 지금, 그 두려움은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지구 전체가 상하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거대하고 넓었다.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서울의 10배라고 하는데 체감은 그 이상이다.

첫 날, 늦은 체크인을 하고 호텔 근처에서 가까운 와이탄으로 갔다. 거대하고 엄청난 인파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예전에 여의도에 세계불꽃놀이를 보러 갔을 때 놀란 이후로 처음이다. 밀려다닌다는 말이 맞다. 옆에 사람이 없는 사진을 찍기는 불가능하다. 황푸강 너머로 보이는 동방명주는 그 어느 높은 건물이 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고 도도했다. 시시각각 칼라를 바꾸어가며 자태를 뽐내 우리의 정신을 사로잡고 말았다. 제 아무리 높은 건물들이 위용을 자랑한다지만 동방명주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하나만 보아도 충분히 야경을 감상하는데 의미가 있다. 온 사방이 모두 구경거리다. 와이탄 또한 밤에 내뿜는 세련된 조명으로 인해 여기가 중국인지 유럽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멋있었다. 꼭 밤에 보아야 한다. 넋을 잃고 건물을 바라보았다. 앞에 강이 흐르니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고 사람들로 넘쳐나니 흥겨운 기분이 들었다.


상하이에 오길 잘했다. 사람이 많고 넓고 크다는 말만 들었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인도도 넓고 거리가 멀어 이동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타러 가는 곳, 출구로 나가기까지의 거리가 어마어마해서 많이 걷게 된다.

예원도 야경이 멋있다고 해서 밤에 도착했다. 석양과 더불어 시작되는 예원의 아름다움은 이름에 걸맞게 봐도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또 강렬했다. 온통 붉은 색이다. 상가도 하나의 큰 볼거리다. 양옆으로 다양한 것을 팔고 있는데 먹거리부터 공예품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상가와 사람들의 물결, 푸른 불빛을 쏘는 연못과 구곡교, 붉은 예원 건물은 극적으로 대비를 이루어 이곳이 지상인지 천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난징시루역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세계 어딜 가나 흔히 보이는 카페인 스타벅스는 이제 현대인에게는 참새방앗간이 되었다. 어딜 가나 안심할 수 있는 휴식처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곳은 얘기가 다르다. 규모가 일반 매장의 몇 배는 되어 보이고 실내 인테리어도 멋스러웠다. 문을 여는 순간 사이즈와 사람들의 움직임과 커피향과 달콤한 베이커리의 유혹에 압도당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바(Bar)도 운영하고 있다. 칵테일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브런치부터 다양한 베이커리까지 눈길을 끄는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평소에 먹지 않던 메뉴를 용기 있게 주문해본다. 오트밀크림라떼. 오렌지향을 느낄 수 있는 향긋하고 매혹적인 맛이 느껴졌다. 블루베리 머핀과 먹으니 조화롭다.

‘단순한 카페인 줄 알고 안 왔으면 후회 했겠구나.’ 이곳은 근사한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넘쳐나고 커피볶는 기계, 원두를 팩킹하는 라인은 계속 돌아간다.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여행지에서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행동을 과감히 실행에 옮긴다. 여행 책자를 보니 추천하는 장소가 있었다. 리츠칼튼 호텔 루프탑바(rooftop bar)에 들러보라는 것이다. 루자주이 지하철역에서 내려 등을 돌리면 바로 나온다는 그곳, 과연 그럴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상하이 중심가에는 건물이 많다는 것에 함정이 있다. 바로 나온다는 그 호텔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덕지도를 참고해 한참을 뱅뱅 돌고 헤매다 겨우 찾아냈다. 이름이 크게 건물에 써 있는 것도 아니어서 힘들게 발견했다. 58층으로 올라가니 이미 자리는 거의 만석이었다. 한 두자리가 남아 있었다. 예약 안 하고 들어갔는데 자리를 안내받으니 감동스러웠다. 좋아보이는 창가 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안쪽에 있는 2인석 좁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기본안주가 나온다. 나쵸칩, 땅콩구성의 간단한 안주다. 평소에 호텔바를 다닐 일이 없는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상하이에서 남편과 고층의 루프탑 바에 들어오니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분이 붕 떴다. 주문을 해야 하는데 아는 메뉴가 없다. 재료를 보고 무난한 두 가지 목테일을 시켰다. 칵테일이 아니고 목테일이라고 써 있는데 무엇인지 몰랐다. 논알콜을 달라고 하니 추천해주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Mock와 Cocktail의 합성어였다. ‘칵테일을 흉내내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대부분 무알콜이라고 한다. 맛은 자연에 가까운 오묘한 맛이었다.

처음에 배정받은 자리에 앉아 그럭저럭 바를 즐기고 있던 나는 다른 자리들이 궁금해졌다. 밖으로 통하는 문으로 슬쩍 나가 보았다.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와이탄과 황푸강의 야경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다. 화려하고 아찔한 야경이다. ‘그래서 이 루프탑바를 추천해준 거였구나!’ 멀리서 보던 동방명주 건물이 눈앞 가까이에서 반짝이고 있다. 반대편에서 보던 와이탄의 우아한 건물들이 멀리서 고혹적으로 빛을 발한다. 상하이의 화려한 야경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남편은 왜 이런 비싼 곳에 오냐는 눈빛을 보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끌고 온 보람이 있다. 안주는 그래 봐야 감자튀김 하나. 목테일 두 잔과 안주 합해서 약 6만원 가량을 계산했다. 물가가 싸니 저렴한 가격에 멋진 야경을 감상하고 주변 젊은이들의 흥겨운 에너지를 덤으로 얻었다. 그 분주함과 생동감과 멋스러움으로 인해 또 한 번 생각한다. 상하이에 오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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