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여행기
호텔을 예약할 때 방사이즈를 확인한다. 덜커덕 예약했다가 좁은 방에서 숨도 못 쉬고 힘들었던 때가 있다. 방사이즈와 가격은 거의 비례하니 지출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상하이는 달랐다. 그동안 많이 다닌 일본과는 더더욱 말이다. 아! 또 있다. 살인적인 영국의 방, 지하의 좁은 방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상해에서 15만원대 방이라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방문을 열고, 그 안에 또 하나의 문을 연 순간 남편과 마주 보며 놀랐다. ‘아니, 이렇게 큰방을 준다고?’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들어가면 거실이 나온다. 화장실이 있고 소파와 벽난로 공간이 있는데 넓다. 중문을 열면 비로소 나오는 침실. 침대는 킹사이즈다. 재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거대하다. 4명이 자도 될만한 사이즈다. 넓은 집무실에나 어울릴 듯한 책상, 암체어와 테이블, 안쪽으로는 화장실이 또 있다.
우리는 부부지만 한 방에서 잘 수 없다. 남편이 심하게 코를 골아서 함께 잠을 잘 수 없다. 여러 번 시도해보았지만 둘 다 잠을 잘 수 없다. 내가 잠들면 그때 남편이 잠들기를 시도한다. 남편의 심한 코골이 소리로 이번에는 내가 깬다. 그러면 잠결에 소리를 지른다. ‘아! 괴로워’ 남편의 코 고는 소리는 나의 인내심을 뒤흔들어놓는다. 남편이 깨서 방 밖으로 나간다. 다시 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들어온다. 이러다 보면 밖이 환해진다. 아무리 좋은 5성급 호텔이라도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호텔에서 좋은 기억이 없다.
우리는 타협하고 결정했다. 피로하고 공허한 싸움을 그만두었다. ‘각자 다른 방에서 자자!’ 그래야 숙면을 취하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짐도 각자 따로 챙긴다.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각자의 방으로 간다. ‘이게 같이 온 부부의 여행이 맞냐고?’ 어쩔 수 없다. 세상만사가 모두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체크인할 때 프론트에서는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부부 같은데 각자 방을 하나씩 차지한다고 하니 확인을 한다.
첫 번째 호텔에서는 복도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양 옆으로 가장 먼 방을 주었다.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 있는 방이다. 너무 멀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 비상시에도 가고 싶지 않을 만큼 멀었다. 직원에게 방을 조금 가까운 곳으로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내가 선택한 타입의 방은 양 옆으로 하나씩 밖에 없어 방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 방에서 각자 잠을 청했다. 이러한 패턴이 익숙해지다보니 함께 돌아다니다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맥주 한캔이라도 나눠마시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남편은 자기 방으로 간다. 그리고 서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보고 싶은 유트브도 보고 사진도 정리한다. 오히려 이제는 이런 시간들이 편안하다. 아무리 가족이고 부부지만 모든 걸 같이 하는 것이 가끔은 피곤할 때가 있다.
딸이랑 호주 멜번여행을 10일 다녀올 때도 같은 방을 쓰는 것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다 큰 딸이랑 한 방을 쓰려니 불편한 면도 있었다. 집에서 각자의 방을 쓰던 습관이 있는데 호텔방에서 같이 자려니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엄마와 딸인데도 불구하고. 딸은 옅은 취침등이 있어야 하고 나는 암전이 되어야 잘 수 있는 타입이다.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한다. 커튼을 조금 열어놓고 잤다. 내가 양보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나의 이명이다. 잘 때 아주 작게 음악을 틀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명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 딸은 완벽하게 조용해야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나 어쩌랴? 엄마를 배려해야 한다. 작게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잠을 청했다.
이렇듯 여행을 가면 자신이 평소 행하던 루틴을 지킬 수 없다. 한방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남들과 어떻게 여행을 갈 수 있을까? 각자의 수면습관이 있고 생활루틴이 있으니 마냥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할 수만은 없다. 여행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로도는 올라갈 것이다.
남편과 나는 각자의 방에서 푹 쉬고 다음 날을 맞았다. 한방에서 알콩달콩 잔 부부보다 더 생기있고 편안하게 아침을 맞으니 여행이 즐겁다. 두 번째 호텔에서도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한다고 하니 직원이 우리를 쳐다 보았지만 대수가 아니다. 이번에는 바로 옆방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외롭지 않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내 기준으로 이해 못 할 것이 많다. 다들 말할 수 없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 그걸 기어코 파헤쳐서 잘잘못을 따지고 틀에 넣으려고 하면 피로해진다. 받아들이며 절충하는 것이 평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방 2개를 잡아야 하니 아무리 저렴한 방을 구한다고 해도 여행비가 더 들 수밖에 없다. 싸고 좁은 방에서만 잘 수는 없다. 자칫하다가는 여행 기분이 깨질 수 있다. 럭셔리까지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방에서는 자야 한다. 돈을 생각하면 화가 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함께 갈 수 있는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면 여행비가 조금 오버하는 것 정도는 웃으며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에서 자는 우리는 이상한 부부다. 이런 부부가 또 있을까? 궁금하다. 남들이 보면 돈이 많아 편하게 자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지만 웃지 못할 속사정이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고생고생하다가 겨우 찾은 우리의 타협점이다. 이제는 안착이 되어 편안하다. 돈은 이럴 때 쓸려고 버는 것 아닌가? 잠은 편하게 자야 한다. 나이 들어 여행 갔는데 잠 못 자면 그 여행은 돈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