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 Jun 29. 2024

남편이 제일 미울 때 2

나는 직장 일에, 임신한 상태의 몸에 많이 힘든데 기분까지 좋지가 않았다. 다정하게 굴던 남편이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본다. 웃으며 이것저것 얘기하던 남편이 말이 없다. 힘들고 우울하고 외로웠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남편은 자신이 힘들어 나의 감정까지는 돌보지 못했던 거다. 얼마나 아들을 갈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짐작은 했지만 눈으로 확인하고 체감하니 견디기 어려웠다. 삼 형제 중 막내인데 큰댁에 딸 둘, 작은댁에 아들과 딸 우리가 딸 하나. 이렇게 아들이 귀했다. 남편은 자기 인생에 아들이 없다는 걸 상상해보지 않았단다.    

  

  첫애를 제왕절개 했지만 둘째는 자연분만으로 낳고 싶었다. 큰딸이 아토피가 심한 것도 수술하고 모유를 먹이지 못한 탓인 거 같았다. 당시 유행하던 수중분만도 알아보았다. 마지막 달에 남산 만한 배를 안고 안양에서 성남까지 가는 좌석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었다. 상담은 했지만 수중분만은 겁이 나서 하지 않기로 했다. 다니던 병원에서는 제왕절개를 권했다. 노산이고 키가 작아서 자연분만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포기가 되지 않아서 자연분만을 많이 하는 산본의 한 산부인과로 갔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자연분만을 권했다.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거다. 이래서 병원은 여러 군데를 가봐야 하나 보다. 통증이 와서 남편에게 연락을 하고 나는 병원에 가 있었다. 남편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또 딸이구나’ 하는 실망만이 묻어있는 얼굴이었다.     

 

  그때의 배신감과 절망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다. 본인의 소망이 무너진다고 생각해서 그랬겠지만 분만을 앞둔 아내 앞에서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통증이 심해지고 호흡밖에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이 아플 때 분만실로 갔다. 절대 안 될 거라는 다른 병원의 말이 무색하게 세 시간만에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았다. 물론 아무리 힘을 줘도 아직도 멀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간호사의 표정을 볼 때 절망스럽기는 했다. 그런 자세로 힘을 주는 경험을 살면서 처음 해 보았으니 말이다. 나는 온 힘을 다 했는데 아직 아니라니... 그러나 끝이 보였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때의 감동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나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큰일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대견함으로 가슴이 뻐근했다. 알아서 나와 준 아기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그 순간 제일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였다. 갓 태어난 아기가 배 위에 있을 때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낳았구나. 죽을 것같이 힘들게 낳아 키우셨구나’ 하염없는 기쁨과 그리움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남편의 태도 때문인지 엄마가 더욱 그립기만 했다. 살아 계신다면 나를 많이 도와 주셨을 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