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아기가 예쁜 짓을 하니 남편도 웃음을 되찾았다. 어느 날인가 베란다에서 아기를 모로 세우고 어르며 웃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딸인 걸 알고 실망하더니 그래도 자기 새끼라고 예쁘긴 한가보다. 뒤통수에 꿀밤이라도 한 대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출산 때 남편이 어떻게 하는가는 오랫동안 부부싸움의 주제로 등장한다. 당장의 갈등만 얘기하면 좋겠지만 꼭 출산 때 서운하게 했던 얘기까지 나온다. 그러면 눈물 바람을 하게 되고 눈물을 싫어하는 남편은 언성을 높이며 얘기한다. 좋을 게 없다. 잊을 건 잊어야 하는데 왜 잊히질 않는지. 아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적군인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거다.
출산을 제외하고 병원에 오래 입원한 적이 있다. 급성신우염이었다.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게 아팠다. 동네 아주머니가 죽을 사다 주셔서 겨우 먹었다. 입원해 있는데 남편은 신문을 보고 있다. 물론 계속 와이프 옆에 앉아 있으려니 딱히 할 것이 없었을 거다.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신문을 봤겠지만 그 모습이 미웠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자기는 태평하게 신문이나 보고 있다니. 뭘 하라는 게 아니고 상황이 이러한데 그 앞에서 세상 돌아가는 내용을 읽고 있는 남편이 못마땅했다.
지금도 생각난다. 어릴 적 아프다고 하면 얼른 약국에 가서 약을 사오시던 아빠. 따뜻한 아랫목에 눕혀놓고 계속 나를 지켜보던 엄마의 얼굴. 사과를 숟가락으로 갈아서 먹여주시던 정성스러운 모습. 남들도 그렇게 크는 줄 알았다. 나의 성장 과정을 남편에게 얘기하니 놀란다. 자기는 어렸을 때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단다. 두 분이 농사짓느라 바쁘셔서 그런 극진한 간호는 받아 본적이 없단다. 어렸을 때 어떻게 컸는지는 중요하다. 아프면 옆에 붙어서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고 뭐가 필요한지 살펴보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