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놀람증으로 고생할 때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다. 익숙하지 않은 증상으로 혼자 괴로울 때 남편에게 얘기했다.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고 내 아픔을 공감해 달라는 호소였다. 집에서는 심각한 얘기를 할 수 없어 차에서 얘기를 했다. 나는 괴로운데 남편의 반응은 싸늘했다. 아픈 것이 다 엄마에게 잘못해서 그런 거 같다고 내가 말했다. 엄마가 아플 때 돌봐드리지 못해서 벌을 받은 거 같다고. 그랬더니 남편이 업보라고 생각하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막상 그렇게 얘기하니 많이 서운했다.
강이람은 ‘아무튼 반려병’에서 ‘또 아파?’의 반응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고 얘기한다.
제1의도: (너는 자기 관리를 얼마나 못 하면) “또 아파?”라는 질타
제2의도: (걱정도 되고 안쓰러워서) “또 아파?” 라고 하는 연민
제3의도: (지난주에 아팠는데 어떻게 다시) 또 아플 수 있지? 라고 묻는 놀람
제4의도: (그 정도 아픔에 너무 엄살 부리는 건 아닐까 싶어)정말 아픈 건지 확인해보는 의심
내가 아프다고 할 때 분명 남편은 속으로 ‘또 아파?’라고 할 것이다.
위 스펙트럼중 제1의도와 제4의도가 섞여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관리를 하지 못해서 아픈 거야. 그리고 그 정도 아픔에 너무 엄살 부리는 거 아니야?’ 라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남편의 속마음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여자의 놀라운 초능력으로 간파할 수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따뜻한 말 한마디로 아내의 기분을 어루만져주면 좋으련만 어쩜 그리도 냉정한지. 아무리 응석을 부려도 남편은 단호했다. 서운해하지 말라며. 인간은 어차피 혼자니 자신의 증상은 자신이 알아서 관리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남편이 냉정한 사람인줄은 알았지만 그날은 칼로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마음이 시리고 추웠다. 추운 벌판에 벌거벗고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외롭고 막막했다. 혼자인 거 다 알고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옆 사람한테 얘기해서 위로를 받고 싶은 거다.
남편은 그런 걸 잘하지 못한다. 아니면 너무 가까운 사람이 아프니 본인도 겁이 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책임감? 그래도 일단 아픈 사람에게 위로를 먼저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럴 거면 같이 살 이유가 무엇일까? 힘들고 외로울 때 힘이 되어주기 위해 가정을 꾸린 거 아닌가? 특히 아플 때 돌봐주기 위해 한 집에서 사는 거 아닌가? 남편의 단호한 태도에 상처를 받은 나는 꿋꿋해지기로 했다.
병원도 항상 혼자 다닌다. 남편도 혼자 병원에 간다. 자기가 그러니까 남들도 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별 것 아닌 일에 호들갑 떠는 건 질색한다. 사실 나는 조그만 일에도 마음을 졸이는 성격이긴 하다. 그래서 지금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이 50이 넘어서 몸이 안 좋은 건 당연하다. 매일 아픈 걸 티내다 보면 나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없다. 잠을 못 자도, 컨디션이 안 좋아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 한다. 드러내 보이다 보면 한도 끝도 없고 매일 인상을 써야 한다. 증상이 갑자기 좋아질 수도 없지 않은가?
조금씩 나아지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스스로 마음을 다독여본다. ‘미운 남편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몸도 노력하면 증상이 완화되겠지? 남편에게 위로받기 보다는 스스로 노력해서 내 몸을 좋게 만들어보자’ 생각한다. 그래도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지 않는 남편이 미운 건 어쩔 수 없다. 미운 점이 많았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다. ‘내가 만약 어떤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괴롭히는 대상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