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밤'을 읽고

by 글로

‘해방의 밤’을 읽고

‘은유’ 작가의 책은 화려하게 잘 차려진 뷔페와 같다. 돌잔치가 아니라 말잔치에 다녀온 기분이다. 제목은 식상한 느낌이 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필두로 마치 해방이 화두인 듯 여기 저기 눈에 띄어 ‘왜 제목에 이 단어를 넣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읽고 나니 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나 알게 되었다. 우리의 못난 마음, 다친 마음, 다른 마음을 언어로 치유하고 자유하게 만든다. 충분히 해방이라고 단어를 붙일만하다. 화려한 말들과 따뜻한 묘사로 어려움을 어루만져 주고 위무한다. 다양한 처지와 문제에 놓인 문우들을 위로하고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작가의 말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미소로 바뀌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게 한다.

젖먹이를 안고 수업을 듣는 젊은 엄마들에게 용기를 준다. 연애를 개시했다는 학인의 문자를 받고 사랑에 관한 소설을 접목하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소식이 끊긴 지인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다. 글쓰기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사람에게는 자신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해거리를 할 수도 있다고 다독인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으며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이 스며드는 고운 흙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얘기한다. 마음이 뜨끔하다. 독서모임을 통해 타인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문장을 대하자 허울뿐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된다.




큰 사건을 겪은 K에게 마음에 ‘시’를 들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다. 예기치 못한 일을 그저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는 건 잔인한 일 같다. 고통의 시간은 또 얼마나 지겹고 더디니. 그래서 나는 백세시대라는 말이 호랑이보다 무서워. 그러니 누구나 불행에 대비해 하루를 ‘빨리 감기’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아. 후다닥 지나가는 하루만이 위안이니까. 하루를 빨리 감기하는 비법이 나에겐 독서거든. 책에 얼굴 파묻기’


자신의 연명장치는 책 읽기라는 것을 고백한다.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독서가 쉬운 취미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다. 나에게도 삶에 있어 독서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삶의 잔인성에 맞설 수 있는 연명장치이자 무기는 독서다.

‘폭력은 글쓰기가 피해 갈 수 없는 주제입니다. 글쓰기 수업에 온 이들은 몸에 새겨진 ‘멍’부터 글로 빼내려 애쓰죠’


답답해서 글쓰기를 시작한 내게 이보다 적확한 표현은 찾기 힘들다. ‘마음에 든 시퍼런 멍, 그거였구나’. 작가는 내 마음과 상황을 들여다본 듯 하다.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놀라고 외로운 마음을 대신 표현해 준다. 쓴다는 것은 멍을 어루만지고 온전히 피부가 제 색깔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작업이구나를 알게 해준다.

부딛쳐 다치지 않았다면 멍이 들지 않았으리라. 멍이 들었다면 아픈 부위를 문지르고 신경쓰고 치료해주어야한다. 보호해주고 알아주어야 하리라. 글로 마음을 위로하고 알아주고 나를 기쁘게 해주는 일, 그것이 글쓰기였구나를 알게 해 준다. 진정한 해방은 독립이다. 세상을 살면서 사건이나 갈등은 어디에나 있고 항상 생길 수 있다. 타인과의 불통, 마음대로 펼쳐지지 않는 일들의 전개, 건강, 일, 가족과의 갈등. 편한 날이 하루도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하고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타인에게 위로받는다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진실이고 어떤 면에서는 거짓이다. 나의 참담한 내면을 드러내 굳이 밝히는 이유는 공감하고 알아달라는 몸짓이다. 추운 겨울 얼음 위에 알몸으로 서 있듯 마음의 고갱을 드러내는 건 어른이 되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그건 너를 신뢰하고 나를 다 보여줘도 될 만큼 믿는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딛고 있는 얼음보다 더 차가운 시선이다. 따뜻한 외투를 걸쳐주거나 안아주거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위로는 어디에도 없다.

해방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니 서로 어기어 기대는 건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내 힘으로 바로 서야 하는 것이다. 정체성 없이 나의 불편과 불행을 남에게 전시하는 건 서로 힘든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다. 진정한 해방은 타인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그래야 조금의 도움이나 위로, 돌봄도 고맙게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를 나로부터 해방시켜야한다. 그래야 참된 자유가 내게 돌아온다. 나의 연명장치는 결국 나의 의지이자 자아뿐임을 아프게 깨달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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