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새로운 언니

by 글로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인가 겨울인가? 우리 집은 셋방을 살고 있었는데 오빠가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귀엽게 생긴 얼굴에 참한 몸가짐. 눈이 크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수줍어서 얼굴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참 숫기가 없다. 우리 식구 외에 누군가 손님이 찾아온 것이 그렇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워할 일인가? 워낙 집안에 다른 이가 오는 일이 잦지 않다보니 어색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초라하기 그지 없는 남자의 집을 보고 결혼을 결심한 여자라니.


오빠가 사귀는 여자란다. 별명이 초롱이라나? 11살이나 차이나는 오빠가 초롱이라고 부르면 그런거지 뭐. 거기에 토 한마디 달 수 없었다. 성장기에 11살 차이나는 오빠는 하늘 같은 존재다. 아빠보다 더 영향력을 떨치던 존재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와 한 가족이 되었고 새언니가 되었으며 조카를 낳았다. 나중에 얘기 중 ‘아직도 오빠랑 기차를 타거나 옆에 앉으면 설레고 가슴이 뛰고 그래’라는 말을 들었다. 농담으로 ‘혹시 심장병 아니에요?’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매일 보는 남편을 보고 심장이 뛴다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알콩달콩 둘은 다정하다.


오빠는 대학에서 조교를 하다 미국으로 떠났다. 지방의 고등학교에서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나에게는 이해 되지 않는 성적을 거두는 사람이었다. 언니가 오빠에게 교수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얘기했단다. 없는 살림에 유학 생활을 하려니 언니도 오빠도 어지간히 고생을 했을 거다. 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박봉에 시골 생활하며 시어머니도 모셨다. 여기서 시어머니란 나의 엄마다. 엄마의 권면으로 언니도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쓰러지고 2년동안 병간호했다.


오빠의 유학 생활 동안 언니는 한국 대학에 있는 교수들에게 때때마다 인사를 갔다. 남편, 미국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사람을 잊지 말아 달라고. 온 우주가 원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어렵사리 공부를 끝내고 온 오빠는 모교의 교수가 되고 우리의 염원은 드디어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언니는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가면 한식 한 상을 거뜬히 차려낸다. 무슨 얘기를 하든 성심으로 들어주고 철없는 나의 행동도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간다. 쌀쌀맞기 그지 없는 큰 아가씨인 나를 친동생 대하듯 한다. 가끔 친정에 들르면 둘이 무슨 문제인가로 갈등을 일으켜 한 명은 나를 붙잡고 다른 한 명은 내 남편을 붙잡고 서로 옳다며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한다. 우리는 웃겨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쳤다며 오빠를 탓하는 언니. 그때는 살 시기가 아니었다고 우기는 오빠.


둘 사이에서 남편과 나는 뭐라 말도 못하고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몰라 허허 웃기만 해댔다. 둘의 싸움도 왜 그렇게 웃기는지 물만 넣은 총을 서로 들이대고 애들처럼 공격하는 듯 느껴졌다. 오빠는 몇 십년째 담배를 핀다. 그것도 집안 베란다에서. 아직도 집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겁 없는 시민이 있다니 적잖이 놀란다. 이때를 틈타 새언니는 은근히 오빠에게 금연을 사정없이 종용해달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오빠, 담배 냄새가 얼마나 멀리 가는데, 집에서 담배를 피워? 밖에서 피워도 냄새가 고층까지 다 올라가” 내가 몇 마디 거들자 새언니는 고소해한다. 오빠의 폐가 걱정인 새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빠는 큰 맘을 먹지 못하고 여전히 식사 후 혼자 사라져 베란다에서 달을 쳐다보며 연기를 내뿜는다.


농작물과 토양의 연관성을 연구해야하는 오빠는 땅을 조금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해마다 고구마가 배달된다. 마트에 가면 통통하고 매끈한 고구마가 많다. 오빠가 농사지은 고구마는 울퉁불퉁 모양이 ‘나 유기농이에요’ 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빠와 새언니가 농사지은 고구마를 정리하며 둘이 고구마 캐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오빠는 어린 시절 여유 없는 형편에서 공부하느라 힘든 표정을 지었는데 지금은 우리 집에서 제일 미소가 가득이다. 항상 웃는 얼굴이고 농담도 잘한다. 결혼 이후 웃는 상으로 바뀌었다. 남편 뜻 잘 받들고 집안을 평화롭게 운영하는 언니가 있어서일까? 갈 때마다 오빠의 아재개그에 우리 두 아가씨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다.

얼마 전 방영한 ‘나의 해방일지’를 보던 오빠는 서울에 사는 막내는 계란 노른자, 경기권에 사는 나는 계란 흰자, 자기는 강원도에 사니 계란 껍질이라고 한다. 비유가 기막혀 한참을 웃었다. 우리 집은 완벽한 계란이다. 영양가 있게 살아보자.


오빠와 막내 여동생은 물경 17살이나 차이가 난다. 그래서 그런지 오빠는 막내동생을 귀여워한다. 자기 인생의 등대란다. 그 사이에 낀 나는 오빠가 어렵고 동생은 말 상대로 어려 존존한 재미없이 외롭게 컸다. 이제 막내도 50이 되고 보니 세 식구가 모이면 대화에서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이때도 새언니는 숭글숭글한 성격으로 관계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말 한마디도 정스럽게 하고 세뱃돈도 넉넉히 주는 능력있는 외숙모다. 피곤한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자기는 원래 늦게 잔다고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커피를 볶은 원두채로 사서 그라인더로 갈아 아침부터 맨 속에 들이붓는 남편, 아직도 담배 피는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언니가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


오빠를 쏙 빼놓고 막내 동생과 셋이서 여자끼리만 대화할 때도 있다. 피도 안 섞인 언니인데 오랜 세월 집안을 일으키고 어린 우리를 잘 보듬어 준 엄마 같은 존재라 그런가? 항상 환하고 밝게 맞아주니 좋다. 오빠는 교수라고 권위 잡는 것 없이 우리보다 더 유치한 농담으로 배꼽을 잡게 만든다. 언제나 새로운 새언니가 있어서 그런가? 유일하게 트레바리 할 거리를 찾는다면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인다는 거다. 마음이 순수해 장난을 치기 어렵다. 흐트러진 말을 항상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늘 베풀고 식당을 가면 어느새 계산을 끝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앉는 사람. 아이들이 좋아 60이 넘은 나이에도 등교하는 학생들 하나 하나를 교문에서 맞아주는 마음 따뜻한 교장선생님, 어떻게 관리하는지 그 나이에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얄미로울 정도로 관리를 잘 하는 사람. 우리 집에는 언제나 초롱한 눈빛을 가진 새언니가 있어 집안이 밝고 환한가보다. 오빠가 최근 그 독하다는 금연에 성공한 덕에 남편을 향한 언니의 눈빛은 더 사랑스러워지고 말았다. 못 말리는 부부다.




*트레바리: 트집잡다

*존존하다: 자잘하다의 제주방언

*물경: 놀랍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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