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밤에만 눕는 여자. 살아 생전 낮에 눕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바삐 움직이시고 삼시 세끼 정성을 다해 음식을 장만하셨다. 없는 살림에 알뜰히도 장을 보시고 상에 놓을 자리가 없도록 반찬을 만들어 자식들을 먹이셨다. 조붓한 방에 큰 이불을 대각선으로 놓으시고 야무진 입술로 실을 입에 물고 바느질을 하던 엄마의 모습은 그리라면 그릴 수도 있을 만큼 선명하다. 비록 남의 집 셋방살이지만 이불은 늘 정갈했고 혹여라도 밟으면 심한 잔소리를 들었다. 사각 사각 소리 나는 푸근한 이불을 덮으면 둥우리에 있는 듯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불쾌한 냄새 한번 맡아본 적 없이 깨끗한 이부자리를 깔고 덮으며 자랐다. 엄마 덕분이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자식을 키우며 엄마에게 배운 생활 속 지혜와 예의 범절을 똑같이 녹음기라도 켠 듯이 말하고 있다. ‘어른이 나갈 때는 현관문에 나와 배웅해라. 어른이 들어오시면 현관문에 나와 눈을 맞추며 맞이해라’. 쉬운 듯 쉽지 않은 생활 속 습관이다.
성실, 그 흔한 단어를 몸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엄마는 많이 배우지도, 내세울 특별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주부였지만 내게는 최고의 위대한 인간상으로 남아있다. 엄마만큼 부지런하고 자식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를 조금 닮아서일까? 나도 밤에 자려고 눕는 것 외에는 바닥에 등을 대지 않는다. 잠깐씩 소파에 앉아있다가도 할 일이 생각나 얼른 일어나곤 한다.
자식 가진 부모로 두려움이 인다. 지금은 표가 나지 않겠지만 자식들이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을 닮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기도 하다. 크게 잘못 한 건 없지만 정신적인 유산으로 남겨줄 만한 것이 있었나 돌아보게 된다. 한 가지 일을 30년 했으니 성실한 편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지 않나? 그러면 딸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장을 보러 나온 딸과 계산대 위에 올려놓은 물건을 보고 있는데 딸이 하는 말 “우리는 음식 만들 재료를 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완제품을 많이 사네” 였다. 다른 사람들 것과 비교해보니 내가 산 물건들은 원재료나 채소, 과일이 많다. 만들어진 음식을 사거나 육류가 많은 사람들의 장보기와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심한 아토피로 고생하는 큰 딸 때문에 오래전부터 야채, 과일을 즐겨 사고 음식을 해 먹는다.
‘하루 한 끼는 밥으로 먹어야한다’가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다. 혹여 인스턴트나 밀가루로 하루 종일 배를 채우고 다닐까 걱정이니 ‘밥 먹어라’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그래도 밥을 대우해주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 속상하고 걱정이 된다. 섭생이 깨끗해야 건강을 지킬텐데 저렇게 디저트 위주의 식사와 밥을 거르는 생활을 많이 하면 나중에 건강을 해칠까 염려스럽다. 사 먹는 것도 여러 번 해 보았지만 금방 질리게 맛이 없다. 로봇이 만들어낸 음식 같고 프라스틱에 담긴 음식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 직접 한 요리는 특별한 맛은 없지만 기본 간만 하고 원래의 맛을 최대한 살려 숭글숭글한 맛이 난다.
경제적 독립은 23살부터 공무원으로 일하며 스스로 벌어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 딸들에게 여러 번 얘기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자신의 살림을 운영할 만큼의 돈을 벌어야 한다고. ‘너희들의 삶은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살 테니’. 이제 운이 나쁘면 120살까지 산다는데 몇십 년을 살게 될지 몰라 얼마가 충분한 금액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몇백억을 쌓아놓은 부자가 아니니 노후에 대한 불안이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수시로 얘기한다. ‘부모에게 의지할 생각은 하지 마라’. 어떤 경우에는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선을 긋는다.
모임을 많이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 중 제일은 독서 모임이다. 회원들과 책을 읽은 후 감상을 나눈다. 등산도 하고 함께 야유회도 간다. 전시회, 국제도서전 관람도 한다. 식탁 위에는 다양한 장르의 책이 쌓여있고 독서대 위에는 현재 읽는 책이 놓여있다. 큰딸이 취업준비로 고투하던 어느 날 중고서점에서 사 왔다며 책 몇 권을 내민다. 어렸을 때 도서관을 데려가 책을 고르라고 하면 엄마가 골라 달라고 하며 흥미를 보이지 않던 아이였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딸이 하는 말, “내 진로에 길이 안 보이니까 책을 읽고 싶더라고. 다른 사람이 해결 해주지도 못하고 답을 몰라서 책을 사 왔어. 책에는 길이 있을 거 같더라구.”
엄마가 책을 가까이 해서라고 남편한테 자화자찬을 하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간접적인 영향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책 읽는 엄마, 책을 쓰는 엄마. 첫 번째 책에는 예술고등학교 미술과를 다니는 막내딸이 삽화를 그려주어 표지에 이름도 넣어주었다. 음악도 좋아해 삼 년 전부터 일 년에 하나씩 싱글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에는 큰딸이 코러스를 함께 해줬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엄마라고 혼자 흐뭇해했다. 딸들도 먼 훗날 책을 쓰고 앨범을 내는 일을 꼭 하라는 건 아니지만 남들이 갖지 못하는 고유한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지게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