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가 떠나고 언니 오빠도 집을 나간다. 함께 살던 어느 날 아빠도 집에서 사라진다. 늪지대에 있는 집에서 홀로 홍합을 따며 생계를 이어간다. 학교도 어쩔 수 없이 갈 때가 있지만 맨발로 온 소녀를 좋아해줄 친구는 없다. 다시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온다. 유일한 위로는 주변에 있는 고양이, 습지의 다양한 나무,풀과의 교감, 한없이 넓은 바다. 성장한 그녀에게 이웃 청년 체이스가 다가온다.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결국 결혼 약속으로 이어지지만 남자의 엄마는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운타운에 물건을 사러 갔다 약혼녀와 있는 체이스를 발견한 카야는 배신감에 흥분하며 집으로 달려온다. 변명을 하러 찾아온 체이스를 강하게 밀어내는 카야. 그러자 체이스는 성폭행과 폭력을 시도하고 그녀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
카야는 습지주변에 있는 온갖 새와 풀들을 그린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친구로 친하게 지낸 테이트에게 글 읽는 것을 배운 후 생물학 책을 독학한다. 평화롭게 지내던 카야에게 체이스는 위협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그러던 어느날 체이스가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 시간 카야는 출판관계로 다른 지역에 있었다.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않아 무죄로 판명난다. 그렇게 처리된 채 카야는 다시 돌아온 테이트와 결혼해 행복한 생활을 하다 사망한다. 그런 후 우연히 테이트는 책 속 깊이 파여 있는 부분에 놓여 있는 목걸이를 발견한다. 그 목걸이는 카야가 만들어 체이스에게 주었던 목걸이다. 카야가 체이스를 높은 망루에서 밀어 추락시켰다. 자신을 위협하는 남자를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게 했다. 재판을 받았고 죄를 지었지만 벌을 받지 않았다. 배신감이 느껴진다. 카야는 사람을 죽여놓고 태연히 자신의 삶을 살았구나. 그녀의 감정이 극중에 드러나진 않았다. 그 삶은 또 어땠을까? 사건을 누군가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면? 범인이 카야라는 것을 밝혀낸다면? 다시 재판정에 선다면?
이 책은 동물학자 ‘델리아 오언스’의 처녀작이다.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품으로 스토리가 독특하여 책으로 읽고 영화도 보았다. 영화가 책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상상력을 구체화시켜주었다. 고민되는 포인트는 한가지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가? 죄를 지은 배경을 참작하여 벌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카야는 자기 방어를 한 것이다. 혼자 아무도 없는 습지에서 여자 혼자 있을 때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남자친구를 당해낼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죽이기까지 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방을 죽였지만 그것은 죄가 아닌가? 객관적으로 죄 자체만 놓고 보면 살인이다. 용서될 수 있는 살인이 있는가?
카야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을 없애는 것이다. 카야는 왜 이런 위험에 놓이게 되었을까? 그녀를 담당한 변호사는 항변한다. 우리가 카야를 저렇게 만들었다고. 어린 여자 아이가 혼자 늪에서 살도록 내버려둔 거라고. 아무도 그녀를 보호하지 않았고 사회속으로 끌어들여 편안히 살도록 품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지키는 건 그녀 자신뿐. 안으로 다지고 강해진 사람에게 위험에 처했을 때 내릴 수 있는 판단도 자신의 몫. 그녀의 행동을 암시하는 얘기도 나온다. 카야는 자신이 쓴 책을 설명하며 곤충들 중에는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듯한 이야기다. 카야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죄를 지었으니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살인의 배후를 따지고 죄인의 내적 갈등과 성장배경까지 파악하여 무죄로 처리할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죄를 짓기까지의 과정은 모두 무시한 채 죄 자체로만 벌을 받는 것은 최선의 결정인가? 죄를 짓고도 은폐한 채 뻔뻔하게 살아간다고 비난을 퍼부어야할까? 저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거라며 카야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해줄 것인가? 배경,성장과정,심리까지 다 헤아려 참작하고 벌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죄인들은 너도 나도 이유가 있다고, 자신은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를 방어할 것이다.
문학작품이지만 현실에서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타살이 자살로 둔갑한 경우가 분명히 있으리라. 누구를 탓해야할까? 법적용의 한계로 돌리기에는 피해자도 억울하고 가해자도 억울하다. 결말이 질문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작품. 무거운 주제지만 도처에 자리한 사건들로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으니 생각해 볼만하다.
이 주제로 얘기를 하다 보면 다양한 의견들을 마주할 수 있다.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과 다른 관점을 통해 타인을, 사건을, 사회를 다각도로 이해하는 힘이 생긴다.
재미도 있지만 개인이, 사회가 생각해 보아야할 숙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자연만큼 이 사회가 아름답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테이트와 카야가 보트를 타고 데이트하며 호젓한 집에서 함께 생물학책을 보며 얘기 나누던 때처럼 따뜻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테이트는 자신의 길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카야는 돌아온다는 약속만 가슴에 품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오랜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는 테이트. 미세한 소리만 나도 혹시나 옛 연인이 돌아온 건 아닐까? 창밖을 내다보고 체념하고 포기해버리는 카야. 기다림에 지쳐 사랑은 미움이 된다. 한참 후에 돌아온 테이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카야. 그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자유의 몸이 된 카야는 테이트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런 보상도 없다면 카야의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참담한가?
습지에 어린 시절부터 혼자 버려져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소녀. 기댈 곳 없어 바다로 가 하염없이 파도에게 말을 걸어야 했던 어린 아이. 그 소녀가 바라보는 세상, 파도, 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음 속에 깊은 우물 하나 품고 있지 않았을까? 퍼내도 마르지 않는 슬픔의 우물. 두려움은 안으로 웅숭깊은 우물을 만들고 그 누구도 살지 못하게 할 것이다. 체이스를 받아들이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를 일이다. 검사,변호사의 변론, 자료들을 모아 최종적으로 배심원과 판사가 판단하지만 사각지대처럼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안에서 카야는 겨우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사회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그녀는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감정적인 면에서 보면 구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체이스가 카야를 계속 괴롭힌다면 평생을 약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카야는 어떨까?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카야는 피폐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카야가 바라 본 밤은, 외로움과 침묵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두려움, 공포, 슬픔, 외로움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우주에 혼자 떠다니는 느낌, 모든 문이 닫히고 깊은 함정에 빠져 헤어나올수 없는 느낌. 심연에 빠져 호흡할 수 없는 숨막힘. 무거운 어둠에 제압당해 신음하는 카야를 어떻게 범죄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내내 체이스에 대한 분노로 화가 났다. 여자가 피해자로 나오는 상황도,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되는 장면도, 자기 아들이 죽었다며 카야를 용의자로 지목한 체이스의 부모에게도 카야 대신 화가 났다.
판결은 무죄, 카야는 풀려나고 예전의 생활을 되찾아 테이트와 잘 살아가지만 마지막 장면. 카야가 죽은 뒤 일기장을 보던 테이트가 발견한 체이스의 목걸이. 늘 불안하고 쫓기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 하늘에 떠 있는 달만이 알고 있을 장면. 살기 위해 괴롭히는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처절하고 비참한 생명체의 몸부림. 악행으로 인해 죽임까지 당해야했던 체이스의 추락. 숨탄 것들은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온몸의 힘을 다한다. 살기 위해 그랬다면 카야의 죄는 용서될 수 있을까? 아름다운 동시에 처절한 이야기. 단순한 소설로 생각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야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