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라는 프로에서 배우 백일섭을 통해 알게 된 졸혼. 졸혼? 지금은 다들 알고 있지만 그때는 생소했다. 매일 서로 괴롭히느니 졸혼하자. 서로의 취향이 다르니 따로 살자. 이 나이에 무슨 이혼이야? 졸혼이 좋지. 결혼 관계는 정리하고 아이들의 부모 관계만 유지하며 살자. 졸혼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략 이렇지 않을까? 섣불리 짐작해본다. 27년째를 내달리고 있는 결혼생활을 돌이켜 본다. 앞으로도 생각해본다. 내가 거부할 수도 있고 거부당할 수도 있다. ‘이 남자랑 더는 못 살겠네’ 라고 남편을 밀어낼 수도 있고 남편이 ‘이 여자하고는 같이 못 있겠네’ 하고 떠날 수도 있다. 우리는 혈연관계가 아니므로 도장 찍으면 관계는 쉽게 정리된다. 나의 소중한 인생인데 더 이상 배우자에 눌려 기도 못 펴고 살지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보자. 그렇다고 원수처럼 미운 건 아니니 부부로 남아있자. 서로의 개인 취향을 존중하고 공간도 허락하며 관계를 유지한다면 무어 그리 나쁠까?
이 개념이 막 소개될 당시 이상적인 졸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커플들의 삶이 소개되었다. 아내는 시골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고 남편은 도시에서 살던 대로 일상을 살아간다. 또는 남편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고 아내는 도심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이야기. 사이는 좋고 어쩌다 자식들까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부부가 꼭 붙어있어야하는 건 아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좋은데 취향이 맞지 않아 서로의 공간을 따로 간절히 원할 때 떨어져 살면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만나고 싶을 때 만나는 관계.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추우면 히터 켜고 더우면 끄는 자유.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의 아침을 꼭 챙기지 않아도 되고 내 식성대로 냉장고를 채울 수도 있다.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밤 늦게 들어온다고 잔소리 하는 사람도 없다. 어질러 놓았다고 눈총주는 사람도 없고 TV를 많이 본다고 핀잔을 듣지 않아도 된다. 서로에게 성적인 매력이 떨어져 만져도 내살인지 니살인지 모를 정도이고 혼자 있는게 더 편하다. 그러나 이혼할 정도로 밉거나 싫지는 않다. 각자의 영역을 정해놓고 교집합을 만들어 가끔 만나고 소식을 공유하자. 졸혼에 대한 생각이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결혼에는 정답이 없다. 서로에게 맞는 패턴을 찾아갈 뿐.
졸혼이 좋다 나쁘다로 단정지을 수 없다. 하물며 이혼에 대한 것도 좋다 나쁘다 얘기할 수 없는데 졸혼에 대한 생각이야 오죽할까? 다만 졸혼은 둘이 붙어 있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관계도 헐거워졌으니 둘의 합의와 만족도가 우선되어야할 것이다. 공간을 분리하여 각자의 시간과 취향을 충분히 존중해준다면 부딪힐 일이 없어 오히려 관계가 개선될 수도 있다. 손님처럼 가끔 만나면 서로의 존재가 애틋하고 고맙고 그렇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인간은 옆에 사람이 있길 원하지만 또 혼자이길 원한다. 혼자이길 바라지만 가끔은 누군가가 그립다. 계속 같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양보도 해야 하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혼자 있으면 옆에 누가 있길 바란다. 아무리 혼밥, 혼술, 혼영이 유행이라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혼자는 살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1인가구가 40%를 육박하고 결혼도 출산도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은 어차피 솔로다. 그러나 타인과의 깊은 관계맺기도 그만큼 중요하니 그 숙명을 어떻게 잘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완성시킬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