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친숙한 유연석이 연기하는 ‘헤드윅’을 감상했다. 135분의 열연을 보고 나오는 나는 피로했다. 왜일까? 내가 연기를 한 것도 아닌데 몰입도가 높아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동독에서 미군인 아버지, 독일인 어머니와 살던 가난한 한셀은 자유를 얻고자 미국으로 떠난다. 방법은 자신의 성을 바꿔 여자가 되어 루터와 결혼하는 것. 그러나 불법수술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루터는 바람을 피며 한셀을 떠난다. 방황하던 한셀은 엄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음악의 길을 선택한다. 생계를 위해 일하던 중 어린 토미를 만나 음악을 가르쳐주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헤드윅의 정체를 알게 된 토미는 떠나고 둘의 관계는 파국을 맞게 된다. 그 후 헤드윅이 절규하며 부르는 노래. 사랑에 대한 기갈로 평생 힘들어 하는 인간들. 사랑의 기원. 결국 토미는 나중에 헤드윅을 생각하고 숭배하며 노래를 부른다. ‘당신은 신이 계획할 수 있는 여자나 남자 그 이상의 훨씬 큰 존재'라고.
용기를 내보았다. 좋아하는 장르의 내용이 아니라 망설여졌지만 주인공 배우의 연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여러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되어져 예매를 하고 잠실까지 갔다.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등장하는 주연배우는 관객과의 소통과 본래의 스토리로 긴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이어갔다. 울다가 웃다가 슬퍼하다 기뻐하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감정선을 아슬아슬 넘나들며 연기하는 모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대한 대사를 소화하고 중간중간 삽입곡을 부르는 장면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무대가 다른 대형 뮤지컬 장소와 비교해 작은 편이기는 했지만 관객을 압도하는 충분한 매력과 파워가 있었다.
주목할 것은 주연배우와 함께 나오는 현재의 남편역을 맡은 남장 여자배우 장은아의 실력이다. 고음을 허공에 실 뽑아내듯 부르는 노래 실력은 함께 노래를 부르는듯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주인공 헤드윅과 이츠학의 듀엣곡은 콜라보의 시너지를 제대로 뿜어냈다. 두 남자의 배신으로 삶에 대한 의욕마저 잃을 지경에 이른 헤드윅이 절규하며 가발을 벗어던지고 여장 의상도 모두 벗고 오로지 짧은 속옷 하나만 걸치고 무대를 오가며 연기하는 모습은 대사를 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나타내는 듯 느껴졌다.
반쪽을 찾아 헤매지만 찾기 쉽지 않고 찾는다 해도 그 사랑을 이어가기는 더욱 어렵다. 신은 왜 두 성을 만들었을까? 똑같은 사람인데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을 하게 되는 과정은 신비롭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신의 영역. 사랑.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으로 이 세상이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유지되고 그 사랑을 이어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예술의 기초가 되며 우리 삶의 이유이기도 한 사랑. 사랑으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며 아프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둘이 마음이 맞아 영원한 사랑을 하면 얼마나 삶이 쉬울까? 나의 사랑을 받아 줄 만한 내가 사랑할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에서 비극은 시작된다. 사랑이 변하기까지 하니 더 복잡한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잘못한 걸까?
나도 스물아홉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까지 반쪽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남들은 모두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는데 나만 외톨이인 거 같아 그 외로움이 더해졌다. 그러나 내 눈물을 모아 강을 이루는 것처럼, 수많은 빌딩 숲 사이에서 집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사람을 만날 기회는 많았지만 나도 그도 서로에게 호감 그 이상의 감정을 느껴야 짝이 되고 우리의 관계가 완성되어 한몸이 되는데 그 반쪽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다행히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 잘 살고 있으니 주인공 헤드윅의 처절한 고통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천적으로 갖고 있는 이질감. 한 몸이지만 두 몸인 것같은 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서로의 감정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다른 행성에서 온 듯 이성이 이상하게 보인다.
헤드윅이 그렇게 찾고 싶어했던 그 반쪽, 다른 몸, 원래는 내 몸이었지만 갈라진 몸, 그렇게 믿었던 상대는 진정한 반쪽이었을까? 사랑했을 때만 완전한 하나의 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갈라지는 마음과 몸. 우리는 영원히 반쪽인 채로 불완전하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합일을 보지 못하고 같이 있어도 등을 돌린 채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채 시간을 보내야 하나?
버려진 고통은 쓰라리다. 헤드윅은 성공한 토미의 콘서트를 바로 길 건너편에서 들으며 가슴아파한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헤드윅. 토미에게서 인정을 받았지만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 자신의 처지. 성이 바뀌고 여장을 해야만 하는 자신의 슬픈 처지를 받아들이고 고통을 승화시켜 노래로 부른다. 온몸으로 부르는 노래.
여러 뮤지컬에서 배우들은 열연을 펼친다. 저렇게 부르다 목이 상하거나 몸이 많이 아프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혼자 두 시간여를 이끄는 뮤지컬은 처음 보는 것이라 주인공 배우에 대한 존경과 걱정이 앞섰다. 단 한번만 공연을 하는 거라면 모를까, 여러 번의 공연을 저렇게 해낸다는 것이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얼마나 자기와의 싸움인지, 관객에 대한 열심인지를 알게 한다.
스토리가 특이하고 분장도 남다르며 무대 또한 멋스럽지만 역시나 주인공 배우에 대한 관심과 포커스가 몇 배인 뮤지컬 헤드윅. 숙제를 하듯이 이 작품을 보았다. 쉬이 보아지지 않는, 봐야하는데 보기가 부담스러워 미뤄왔던 그 작품을 보았다. 감기가 낫지 않듯이 여운이 오래 갈 듯 하다. 사랑에 대한 기원에 대해. 그리고 배우의 열정적인 무대에 대해 생각하며.
타오른 불꽃 벼락되어 내리치며 번뜩이는 칼날 되어 함께 붙은 몸 가운데를 잘라내 버렸지
해님, 달님, 땅님 아이들
어떤 인디언 신 토막난 몸을 꿰매고 매듭을 배꼽 만들어 우리 죄 다시 생각게 해
나는 기억해 두 개로 갈라진 후
너는 나를 보고 나는 너를 봤어. 널 알 것 같은 그 모습, 왜 기억할 수 없을까?
피묻은 얼굴 때문에 아니면 다른 이율까?
하지만 난 알아. 니 영혼 끝없이 서린 그 슬픔, 그것은 바로 나의 슬픔, 그건 고통
심장이 저려오는 애절한 고통, 그건 사랑
그래 우린 다시 한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해
오랜 옛날 춥고 어두운 어느 밤, 신들이 내린 잔인한 운명
그건 슬픈 얘기, 반쪽 되어 외로워진 우리 그 얘기
<‘The origin of Love’ 헤드윅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