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와 함께 가기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by 글로

응급실로 달려간다. 다행히 집 앞에서 병원이 보일 정도로 가깝다. 6살짜리 여자아이가 요구르트를 먹고 기도가 붓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눈두덩도 부었다. 속이 탄다. 둘째 딸이 갓난아기 때 무슨 연유에서 인지 얼굴이 새까매질 정도로 울다가 숨이 넘어갈 듯할 때 느낀 공포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는 큰 딸이다. 무력감을 느낀다. 초조하게 아이를 지켜보며 가라앉기만을 기다린다. 조치를 취하고 한참만에 딸은 안정을 되찾고 서서히 피부가 가라앉는다.

최악의 경우는 응급실이고 생활 자체가 준 응급상황이다. 하루하루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 친구들이랑 잘 지냈는지, 다른 여타의 활동에 성장이 있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오늘은 긁지 않았는지, 밤에 가렵지 않고 조금이라도 잘 수 있는지 여부가 염려스럽다.


생후 15개월부터 태열인 줄로만 알았던 피부 트러블이 아토피였다. 유명하다는 종합병원도 여러차례 가보고 좋다더라 하는 것도 많이 시도해보았다. 도시에서 살다가 갑자기 시골로 갈 수 없으니 최대한 숲과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했다. 수시로 산에 데려가고 산속 옹달샘 같은 곳이 보이면 서슴없이 물도 끼얹으며 물속에서 놀게 했다. 태반을 갈아서 기름에 개어 바르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천연소금에 목욕을 시키면 가려움이 해소된다고 하여 시도해보았다. 아이의 괴로움만 커졌을 뿐 그렇다 할 효과는 볼 수 없었다. 플라즈마요법이 획기적이라고 하여 거금을 들여 받았지만 다소의 효과를 보았을 뿐 근본적인 회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울고 긁고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며 애간장이 끓는다는 말을 처음으로 체험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내가 아닌 내 새끼가 아플 때 느끼는 처절하고도 슬픈 감정. 대신해 줄 수 없고 지켜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남편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기는 하는 건지 신기하게도 별 감정의 동요를 표출하지 않았다. 묵묵히 아이를 업고 깊은 밤 달빛을 받으며 아파트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픈 아이 앞에서 부모는 초인이 된다.


아이는 순하고 착하고 조용했다. 몸이 가려우니 재미있는 것이 있어도 집중할 수 없었다. 수학,과학같은 어려운 과목은 더더욱 그랬으리라. 고통을 토해내듯 울음으로 표현한 적도 없다. 조용히 담담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러면서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교복을 입어야 할 때 치마 안에 얇은 거즈를 대고 의자에 앉는다. 그러지 않으면 진물이 치마에 붙어 일어날 수 없는 거다.

얼굴이 군데군데 빨개서 사람들이 쳐다볼 때 시선이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직진할 때의 마음. 알 수 없다. 안 보이는 부분이 그런 것도 힘든데, 하물며 젊은 여자아이의 얼굴이 그러니 맘 놓고 화장을 할 수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나갈 수도 없다.

먹는 것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피자,치킨,케잌 등 달디단 디저트류는 최악의 먹거리다. 먹으며 피부가 바로 반응한다. 극도로 피부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밥,안 매운 김치, 고구마,감자,과일 등만 먹을 수 있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 말하는 고백.


“엄마, 나 먹고 토한 적 많아. 너무 먹고 싶은데 먹으면 안 되니까 토했어. 오래됐어”


안으로 울었다.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래도 어디 안 부러지고 장애인 아닌 것이 어디냐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당치 않은 위로다. 우리는 각자의 아픔이 있다. 자신의 아픔이 제일 아리고 크다. 남의 아픔은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다. 자신의 아픔은 직설적이고 현실이다.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내가 풀어야 할,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루키즘(외모지상주의)이 심하다. 성형을 불사해서라도 취직을 해야 하는 위험한 사회. 생긴대로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정을 해서 기준대로 맞추고야마는 무서운 사회. 그렇지 않으면 장내로 들어갈 수 없는 잔인한 사회. 그런 사회에서 피부가 좋지 않은 딸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호텔제과제빵을 전공해서 피부와 크게 상관 없을 줄 알았던 생각은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9개월 제과점에서 일했다. 대부분의 요식업 종사자들이 얇은 장갑을 낀다. 그 과정에서 딸의 손등에 심한 트러블이 생겼다. 손등이 퉁퉁 부어오르고 얇은 피부가 찢어지고, 마치 시베리아 극지방의 동상입은 사람의 손등처럼 터지고 부어오르고 빨갛게 변해버린 피부 앞에서 나는 또 속으로 울었다. 엄마가 울면 딸이 더 힘들까봐 그러지 못했다. 마음 한구석에 통증이 느껴진다.

신을 원망하는 사람이 많다. 왜 이런 시련을 내리는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몰라 신은 없다고 단언해버리는 사람들, 때때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사건 앞에서 그런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원망한들 무엇하나? 내 안의 괴물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다. 그럴수록 차라리 감사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딸은 직장을 여러 번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치료를 받고 물이 닿는 일을 하지 않는 곳으로 일을 구했다.

의류 판매점에서 일하는 것이 그나마 물이 닿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얼굴에 트러블이 생길 때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화장을 해야하는 일, 물을 쓰는 일은 할 수 없다보니 할 일이 없었다. 온라인판매업이나 본인이 CEO가 되지 않는 한 누구에게 고용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딸은 나에게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어준다. 아픔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다 가지고도 찌푸린 얼굴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딸은 잘 웃는다. 재밌는 영상을 많이 본다. 방안에 웃음소리가 난다. 어느 날 물어봤다.

“가렵고 괴로울 때어떻게 극복했어? 울지도 화 내지도 않고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어?”

“나를 분리했어. 객관화시킨거지.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 아프다. 고통의 객관화. 신의 경지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나이대로 여무는 것이 아니다.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사람. 어른인데 아이 같은 사람의 경우를 많이 본다.


엄마인 나는 임신 중에 뭘 잘못해서 딸이 이런 증상이 있는 건 아닌지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래서 더 매달리고 어떻게든 아이의 피부를 나아지게 하려 노력했다. 우리는 모른다. 어떤 일이 태중에 벌어지고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그저 바라고 바랄 뿐이다. 고통 없는 날을. 아니면 고통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달라고.

그러면서 가사를 썼다.

그리고 애절하게 불러본다. 딸아,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피부도 깨끗해지고 환해져서 세상을 비추렴. 환한 미소와 너의 예쁜 마음으로 다른 아픈 사람의 마음도 어루만질 수 있는 빛러럼 어둠을 물리치는 환한 빛이 되렴.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이제 니가 내 가장 빛날 때의 나이가 되었어

너에게서 내가 보일까 조바심이 난다

넌 다르길 바라지


운동회날 무용하는 널 보며 왜 눈물이 날까

교회발표회 날 어색해하던 너의 모습에 나의 맘이 조여 온다

자꾸 내 맘이 앞서 욕심에 널 힘들게 했다

절벽 앞에 서야 날 수 있다며 움츠린 널 밀어내듯 말했지

고개 숙인 널 보며 등 돌려 눈물 흘리곤 했어

나보다는 훨훨 날아줘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그리고 먼훗날 여기에서 만나 우리 안아주자

조금 아프지만 멀리에 있어도

언제나 나의 딸이 되어줘

이 세상 어느 침묵 어느 암흑에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너

사랑이란 말로는 부족한 마음 담아 널 부른다

나보다는 훨훨 날아줘 나보다는 빛나게 살아줘

그리고 너와 나 여기에서 만나 서로 바라보자

조금 다르지만 닮은 모습으로

언제나 나의 딸이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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