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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Jan 19. 2022

골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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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은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 했던가. 먹장어는 몸이 길어 슬프고, 하노이는 습한 골목길이 슬프다. 하노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목 안에 산다. 사슴처럼 순하고, 먹장어처럼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살아온 두려움으로 목이 길어진 사슴처럼, 살아갈 몸부림으로 몸이 길어진 먹장어처럼 그냥 산다.


  나만 슬프다고 너무 울지 마라. 알고 보면 하노이 골목은 더 슬프다. 대로(Duong)에 서 소로(Ngo)를 따라 생의 실핏줄 같은 골목(Nhach)에 가면 막상 슬픔이란 두 글자는 오간 데 없다. 대낮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눅진한 습기, 칠 벗겨진 문틀, 낡은 거미줄, 자물쇠의 침묵, 빨랫줄에 걸린 누군가의 내의에 이따금 찾아오는 햇살, 바람이 분다. 삶의 처절함 그대로 그 발레르의 시만 있을 뿐이다. 


  하노이의 새벽 골목은 바다로 향하는 강의 하구 같다. 하노이 겨울 추운 밤 어디에서 도사리다 나왔을까. 

  골목마다 인산인해다.

  헐어버린 군복같이 아무렇게나 구겨진 골목이 하품하는 대낮, 골목은 말 그대로 고장 난 벽시계 같다. 빈집을 지키는 자물쇠도 졸고 있다. 해 질 녘 연꽃 송이 같은 여자와 마주친다. 그녀 손에는 한 번도 타보지 않았을 아시아나항공 낡은 쇼핑백 그 속에는 한 끼의 양식거리 


  묵은 옥수수 알처럼 촘촘히 골목 안에 박혀있는 성냥갑 같은 집들, 성냥 알만한 세간 속, 성냥개비 같은 이들이 혹 불면 꺼질 것 같은, 성냥 불만한 불씨를 생의 온기로 감싸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기침과 가난과 사랑을 숨겨주는 어둠을 이불 삼아 낮은 배게, 내일 꿈으로 높게 베고 또 종점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가난이 굳이 가난을 모르고, 슬픔이 녹슬어 슬픔을 모르는 사람들의 별 볼 일 없는 일박을 별만이 지켜주는 하노이 골목의 밤. 


  호안끼엠 호수를 제단처럼 둘러싸고 있던 구 하노이시는 전쟁이 종식되던 1976년 무렵부터 남서쪽으로 넓혀 나간다. 1986년 도이머이 선언 후 대로변에는 오늘날의 4m 폭의 상가가 조성되면서 정부 주도의 배급제는 박물관으로 가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본주의 강물을 따라 인근 지방 사람들이 하노이로 흘러 들어왔다. 


  2009년 하노이 인구 6,448,000명 너무 일찍 너무 멀리 고향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굳이 고향을 말하지 않아 원래 하노이 사람들이 몇 명인지는 알 수가 없단다. 

  시골 출신들이 골목에 많이 산다. 대로변이나 큰 골목에 살면 중산층이다. 쇠창살 틈으로 고급 소파와 벽걸이 티브이 그리고 자가용이 보이는 부자 골목을 지나 골목 깊이 들어가면 집세는 가파르게 내려간다. 골목 입구에 손바닥만 한 채소 가게는 월세 500만 동, 골목 끝에 가면 쪽방 하나에 월세 50만 동이다. 


  건물주는 이곳에서 부자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은 4, 5층 집이 우리 돈으로 3~4억이나 된다. 저렴한 서민 주거 환경 조성은 하노이시의 다급한 현안이다. 자가에서 사는 경우 월 최저 생활비는 3인 기준 500만 동이다. 최근에 가계소비 중 교육비가 급하게 늘고 있다. 교육열은 우리만큼 뜨겁다고 할까? 


  골목 끝 쪽방에 가면 암담 아니 난감하다. 그런 방에서 서너 명 많게는 대여섯 명까지 같이 칼잠을 잔다고 한다. 개인 화장실은 상상도 못 하고, 샴푸나 비누도 바로 없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조건 일회용 개인 소지용 샴푸나 화장지가 인기란다. 사소한 옷가지와 소지품이 분실되기 쉬운 곳이지만 사고나 병마 또 실직으로 기댈 곳 없는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방을 내어 주고, 밥을 사주고, 직장을 소개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일상에는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다가 도 큰일이나 명분 있는 일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베트남인의 정서가 이 골목 안에 녹아 있는 것이다. 


  달랑 불알 두 쪽 달고 5년 전 상경했던 보조요리사 Tan(떤)은 이불 한 채 없는 쪽방에서 첫 하노이 겨울을 견뎠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시골 여동생, 남동생을 하노이로 데려와 한 방에 이 층을 만들어 살고 있단다. 당연히 동생들도 돈 벌러 나간다. 떤 이 지금의 꿈은 중고 오토바이 한 대 장만이다. 물가는 5년 전과 비교해 두 배가 올랐단다. 골목을 벗어나는 것은 아마도 꿈을 두어 번 넘어야 하지 않겠나. 


  골목에 들어서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여자들은 얼굴을 가렸고, 남자들은 활짝 웃었다. 어떤 젊은이는 Can you speaks English 하며 말을 걸었다. 장사치들은 마른 수건처럼 건조하고 쌀쌀맞았다. 골목 안은 또 하나의 작은 하노이 도시다. 생필품부터, 옷 수선, 카페, 미장원, PC방, 전파 수리사, 금은방까지 있을 건 다 있다.


  한국의 화개장터다. 또 특화된 골목도 있다, 먹자골목, 전당포 골목, 미장원 골목, 전당포 골목, 여관 골목, 마사지 골목 등 그런데 문화적 골목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은 재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역사 현장과 골목이 사라졌다. 돌아보면 지역적으로 이기적이고, 문화적으로 단세포적이고. 역사적으로 근시안적인 조치였으리라 .


   베트남 하노이에도 재개발, 재건축 붐이 분다고 한다. 세상은 늘 문화 논리보다 경제 논리가 앞서간다. 여기에는 시대의 역설이 있다. 생활의 불편을 해소하면 마음의 불편이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다. 질투, 시기, 반목이 전에 없던 불편이다. 문화적 안목 없는 재발은 재앙이라고 생각된다. 뒤늦게 문화공간, 역사 공간, 환경공간을 조성한다고. 난리를 치기도 한다. 나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가끔 심금을 웃기기도 한다.

 

  생의 무한 고속 질주를 꿈꾸는 이들에게 골목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인정과 신분 상승과 주가의 고공 행진을 꿈꾸는 이들에게 골목이란 단어조차 시답잖다. 이들은 골목을 도시의 오지로 방관하거나 도시의 변소 정도로 무시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정작 골목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골목은 도시에 기생하거나 결코 도시를 기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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