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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Sep 08. 2022

대오각성 大悟覺醒

힌남노





  혀 짧은 소리를 내는 훈장에 관한 우화가 있다. 혀가 짧다 보니 발음이 제대로 안 돼 애를 먹었는데, 글을 배우는 아이들이 자신의 발음을 따라 할 때는 더욱 그랬다. 그럴 때면 훈장은 더 큰소리로 외쳤다.

  “바 담 풍!”

  또다시 아이들은 목청껏 또박또박 쫓아서 한다.

  “바 담 풍!”

  그러면 훈장은 화가 치밀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바담 풍 하면 너희들은 바람풍 해라”라고,


  이 세상에 자신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정작 부도덕이 판을 치고 있다.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도덕관이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어딘가에 숨어있는 “바담”, 그것을 찾아 바로 잡을 때 우리 사회는 더 밝아지지 않을까?


  불과 이십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다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경제적인 풍요와 함께 절실한 것이 정신적인 풍요였다.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윤리와 도덕을 회복해 나가는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했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모든 국민이 선진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나 자신부터 솔선하여 윤리와 도덕을 실천할 때 우리 사회는 제모습을 찾지 않을까?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경제력도 아니고, 국토의 크기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 에너지다.”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랑케’의 명언이다.

  국토가 넓다고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소련의 국토는 남한의 225배, 캐나다는 99배, 중국은 95배, 브라질은 85배, 인도는 35배다. 국토가 협소한 것보다는 커다란 것이 좋다.

인구가 많다고 반드시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매한가지다. 그렇다고 역사가 길다고 뛰어난 나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가 길기로 말하면 아마도 에티오피아가 으뜸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위대한 나라가 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훌륭한 도덕과 뛰어난 문화와 탁월한 국민 성격 性格을 가진 나라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이나, 구토의 크기가 반드시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 갖는 도덕적 에너지가 국가의 가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덴마크의 위대한 지도자 중에 국민 고등학교를 창설하여 덴마크를 융성하게 일으킨 니콜라이 프레데릭 세베린 그룬트비(NIKOLAJ FREDRIK SEVERIN GRUNDTVIG)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덴마크 사람들은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 성격에 의해서 다시 한번 위대해집시다.”

  기원전 8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유럽의 서북부를 야만인처럼 약탈했던 북구 해적 바이킹은 덴마크 사람들의 조상이다. 옛날 덴마크는 바이킹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제 덴마크 사람들은 바이킹과 같은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뛰어난 국민 성격에 의해서  다시 한번 유럽에서 위대해져야 한다고 그는 외쳤다.

  그룬트비는 삼애 사상을 덴마크 국민의 가슴속에 심어, 덴마크를 유럽의 뛰어난 모범 국가로 만들었다.


  “국가의 가치는 필경 국가를 조직하는 국민의 가치다. 긴 눈으로 보면 국가의 가치는 결국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말은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자유론自由論의 말미에 나온 말이다.

새 나라를 만들려면 새 정신을 일으켜야 하고, 새 정신을 만들려면 새 도덕을 일으켜야 한다.


  새 나라, 새사람, 새 정신, 새 도덕, 국가 건설의 원리는 집 짓는 원리와 비슷하다.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하나하나의 벽돌이 튼튼하고 모든 재목이 견고해야 한다. 약한 벽돌과 썩은 재목으로 견고한 가옥을 건설할 수 없다. 한나라의 가치는 결국 그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 개개인의 가치에 의하여 결정된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국민의 도덕적 에너지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국민은 뼈아픈 경험을 하고 있다. 공산주의 체제 붕괴 후, 다시 사회주의 사망론, 이데올로기 종언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체제가 존속되고 있고, 공산주의 사상을 따르는 반체제 세력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미, 서유럽에서조차 신자유주의와 사회복지 위주의 정책 노선이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이러한 상황은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여전히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야 한다.


  이데올로기 종전론은 타당하지 못한 것이었음이 확인되었고, 탈이데올로기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생각도 착각에 불과했다. 특히 한반도 남한에서는 이데올로기 대립이 전개되고 있고, 남한 사회에는 ‘사회주의; 혁명 세력;, ’NLPDR 세력‘, ’ 민족해방 민중 민주주의 혁명‘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대오각성 大悟覺醒을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내가 먼저 각성함으로써 우리는 개선되어야 한다. 오늘의 위기를 입증하는 사실들이 계속 터져 나오고 심각하게 울리는 경계경보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막아야 한다.

  나는 얼마나 도덕적으로 성숙한 국민인가. 저마다 준엄한 자아 성찰 自我 省察과 과감한 자기 혁신 革新을 결행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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